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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hn Mun Dec 20. 2018

늦은 네팔 여행기

네팔병에 걸린 환자의 추억팔이(18.1월에 쓴 글)

네팔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다. 네팔에서 돌아온 후유증, 예를 들면 길거리에 많은 차들이 보기 싫다든지, 출근길 9호선만 보면 짜증이 난다든지, 아침에 머리를 정리하며 거추장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는지.. 등등은 이제 없지만, 네팔의 느낌과 향기는 여전히 가득하다. 네팔은 그렇게 내가 누군지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꼭 다시 가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

어느 여행지를 가는 여행자에게 모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시간은 언제나 기대되는 순간이다. 카트만두로 향하는 나도 역시 그랬다. 그리고 여행을 가는 나라의 현지인들을 처음으로 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카트만두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도 많은 네팔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인도사람인지 네팔사람인지 구분은 못하지만,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이기에 네팔사람일 것이라 믿었다. 그들을 보면 왠지 나도 모르게 먼저 미소를 짓게 되고, 다정하게 ‘나마스떼’하며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기내 화장실을 기다릴 때, 네팔 소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인도소녀인지 네팔소녀인지 모르겠다. 그 소녀의 정수리는 겨우 내 무릎에 닿을 정도로, 무척이나 키가 작았던 소녀였다. 아래서 신기한 모습을 보듯, 있는 힘껏 고개를 치켜들어 나를 쳐다봤다. 눈망울이 똘망똘망한게 무척이나 순수해 보였다. 네팔의 첫 느낌이었다. 비로소 여행을 시작했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도착한 카트만두는 사실 내가 생각한 네팔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먼지가 많고 교통은 복잡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숨쉬기도 불편할 정도로 먼지가 많았다.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아등바등 하는 치열함이 느껴졌다. 동남아의 어느 대도시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길거리는 군데군데 패여 있고, 잦은 공사로 뿌연 먼지가 길거리에 자욱했다. 하루빨리 포카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는 경비행기이다. 30명이 겨우 타는 작은 비행기이다. 그만큼 바람에 약했다. 선체는 몹시도 흔들렸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손에 땀이 가득한 채로 30분을 보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흔들림이었다. 사실 난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호치민을 여행할 때였는데, 그때 비행기는 포카라행 비행기보다 훨씬 큰 비행기였다. 하지만 선내의 베트남 사람들이 소리를 지를 정도로 흔들렸었다. 당시에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경험을 다시는 하지 않을거라고… 네팔에서 다시 만날줄은 몰랐다.


20분정도 비행을 하면 네팔의 고산들이 보인다.비행기는 항로를 비행하고, 그 선로는 7천미터가 넘는 고산들 옆에 있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면 자연스럽게 고산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봤던 수많은 고산들과 산맥들의 이름을 알 지 못한다. 하지만 그 중에 에베레스트가 있을 것이고 그것들은 히말라야였다. 눈 덮인 산들은 장엄했다.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앞섰고 드디어 네팔에 왔다는 느낌을 주었다.



롯지에서의 첫날밤


첫 날 도착한 롯지까지는 그렇게 많이 걷지는 않았다. 한 4시간 정도? 이끼 가득한 샤워실은 겨우 따뜻한 물이 나왔고, 습한 매트리스는 선뜻 잠을 청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군대도 다녀왔고 더럽고 지저분한 생활에는 다소 자신(?)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열악했다. 이미 자본주의의 참맛에 완벽적응 된 몸이라 처음엔 적응이 필요했다(하지만 이것도 첫날에만 느꼈다. 그 이후엔 피곤에 절어 골아 떨어졌다!).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안나푸르나를 만났다. 저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는 감격스러웠다. 감격과 숙소의 공포, 그리고 앞으로의 두려움으로 만감이 교차했지만 안나푸르나를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다는 기대감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네팔 롯지의 분위기는 이국적임을 떠나 많은 생각을 준다. 히말라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타르초와 롯지 지붕에 매달린 종소리는 원래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악기와 악보 같았다. 새벽에 화장실을 들르기 위해 잠깐 깼던 순간, 나는 히말라야의 바람이 연주하는 음악을 만났다. 잠깐 동안 멍하니 음악을 감상했다. 주변을 돌아봤을 땐 어둠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나 혼자 이 광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이 행복했다. 역시 네팔은 네팔이었다.

 

시누아 언덕을 넘으며


Upper Sinuwa까지 가기 위해 800m가 넘는 언덕을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800m를 오르고 내렸지만 산 하나도 오르지 못했다. 네팔에서는 7천미터가 넘지 않으면 그 어느 언덕도 산이 되지 못한다. 맵스미(고산 지대까지 잘 표현되어 있는 지도 어플)의 Sinuwa는 현지인들이 말하는 Upper Sinuwa였다. 우리의 목적지이기도 한 이 곳은 해발 2,360m였다. 한국의 그 어떤 땅보다 높은 땅이지만 네팔에서는 그냥 언덕에 불가하다.


Sinuwa에서는 네팔인이 만들어주는 김치볶음밥을 먹을 수 있었다. 최근 들어 김치볶음밥을 팔기 시작했다는 롯지의 사장님은 김치도 직접 담근다고 했다. 몇 달 전 ABC를 등반하던 한 한국인이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간 이 롯지에 묶게 되었고, 그 기간 동안 김치 담그는 법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 나와 일행 중 그 어느 누구도 김치 담그는 법을 몰랐는데, 김치를 담글 줄 아는 한국인이 이 롯지에 우연히 일주일간 아파서 묶게 될 줄이야.. 그리고 난 그 김치로 만든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을 줄이야...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김치볶음밥 맛은 별로였지만! 잊기 힘든 김치볶음밥이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


산을 오르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이다. 포터에게 짐을 맡기고 산을 오르는 등반인, 등반인의 짐을 옮기고 있는 포터, 자신의 짐을 직접 옮기고 있는 나 같은 사람. 나와 이 사람들은 등반 길에 수 없이 지나쳤다. 그리고 나마스떼하며 인사했다. 지나가며 누구에게나 서로 말하는 인사말이지만, ‘너도 힘들지? 나도 힘낼 테니 너도 힘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세 부류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인생의 어깨의 부담을 타인에게 맡길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바닥에서부터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결국 “잘 살자”라는 목표로 자신의 삶을 살아 가고 있다. 그리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들다. 오르고 내림에 숨이 차고, 고산병 때문에 두통이 찾아오며, 적당한 거리를 오르고 쉬었다 다시 오른다. 환경과 조건은 다르지만 모두 힘들다. 마치 누구에게도 쉬운 삶은 없는 것과 같다. ‘잘 살자’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네 삶과 내 삶이 다르고, 네 환경과 조건이 나의 그것과 다르듯 잘 산다는 의미도 다를 것이다. 결국 누구에게나 살아갈 가치가 있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부대끼는 타르초


네팔 어디를 가든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같은 천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사각모양의 천에는 경전이 새겨져 있다. 이것들은 타르초이다. 경전의 의미가 바람에 날려 전 세계에 퍼져나가길 기원한다는 뜻이다. 경전의 의미가 무엇이든, 그 진리가 무엇이든 네팔에 가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동행들과 그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을 경험했다. 마치 타르초를 타고 흐르는 경전들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처럼 깨달음을 느낀 것 만 같다. 한없이 티끌 같은 생각이지만서도…


나는 그 동안 부적적인 사람이었다. 산을 오를 때 한발한발 계단과 언덕을 오르기가 힘들어 매 순간 후회하기도 했고, 산을 내릴 때 무릎을 다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속도를 조절했고, 추운 밤에 눈을 붙일 땐 혹시 내일 못 일어 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묵묵히 한발한발 내딛고 오늘 하루에 감사하면 조금 더 밝은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안나푸르나의 절경


고산병이 찾아왔다. 가파른 지형을 오르지 않고 평지만 걸었다. 두 걸음에 잠깐씩 멈춰서 호흡을 골라야 했다. 머리는 멍했고, 숨이 찼다. 땅이 흔들리기도 했다. 멈추면 다시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앉을 수는 없었다. 눈 앞에 ABC가 보였고, 저 곳까지 꼭 가고 싶었다. 천천히 한발한발 걸었고 도착한 안나푸르나는 감격스러웠다.

사실 안나푸르나의 절경이 오는 길의 모든 절경을 뒤덮어 버린다. 너무나 아름답다. 카메라가 없어 핸드폰으로만 찍은 나의 사진도 너무 아름답다. 이 풍경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아쉽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와보고 싶다(사실 이 날에는 절대 다시오기 싫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그립다).


안나푸르나로 가는길에 만나는 마차푼차레는 인간을 한없는 미물로 만든다. 내가 위치한 장소도4,000미터가 넘는 곳이지만 7천미터가 넘는 두 산은 그 위로 한없이 솟아 올라 있다. 그곳을 오르는 모습만 상상해도 아찔하다. 수많은 인간이 목숨을 버려가며 왜 정상에 도전하는지 작게나마 이해가 됐다. 인간이 오르지 못한 대자연 앞에 한 없이 겸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포카라에서의 휴식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포카라는 천국이다. 피곤한 몸을 녹이기에 포근한 날씨와 콸콸나오는 온수가 반겨준다(고산 위험과 낮은 수압 때문에 포카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샤워를 할 수 없다). 호수근처를 천천히 돌아보다 보면,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는 음식과 음악들을 즐길 수 있다. 마치 안나푸르나를 정복하고 내려온 사람처럼, 사실 베이스캠프까지 겨우 올라갔지만, 당당하게 포카라를 즐기면 그 행복감은 말로 다하기 어렵다.


포카라는 크지 않은 도시다. 주요 여행지 및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 하루면 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이고 더 묶을 수 있는 도시이다. 네팔이 주는 편안함,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잔, 적당히 느낄 수 있는 자본주의의 단맛 등 휴양지로서 빠질 것 없는 훌륭한 도시이다.


포카라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 중에 하나는 히말라야의 천둥과 번개이다. 높은 산맥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있고, 내가 있는 낮은 포카라에서는 악사가 기타를 치고 있다. 나는 맥주를 마시며 두 모습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번쩍거리는 번개와 천둥소리 때문에 신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네팔 사람들은 너무나 평온했다.


글을 마치며,


네팔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네팔병이란 네팔을 한번 다녀온 사람들이 걸리는 병으로 다시 네팔에 가고 싶어하는 병이란다. 사실 열심히 등반을 할 때에는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는 거지? 이렇게 힘든데?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지배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현실을 살고 있다 보니 네팔이 그립다.


자신을 꾸밀 필요가 없는 자유, 새로운 만남이 있는 순간들, 경이로운 자연 경관, 고행과 휴식 그리고 자신을 위한 진실된 시간 등 어느 것 하나 그립지 않은 순간이 없다. 기회가 된다면 인생을 함께할 내 동반자와 다시 한번 오르고 싶다(이미 정해진 내 동반자의 성격과 기질상 매우 낮은 확률이다). 내가 느꼈던 경험과 생각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오르며 같이 나누는 순간을 언젠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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