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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hn Mun Dec 07. 2019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의 지난 단편 소설

총 6편의 소설을 묶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이다. 단편소설을 읽고 싶었다거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고 싶어서 고른 건 아니었다. 단순히 책장에 꽂혀있는 낯선 책을 집어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반딧불이’, ‘헛간을 태우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춤추는 난쟁이’, ‘세 가지의 독일 환상’, ‘비 오는 날의 여자’ 총 6편의 소설은 왜 이제야 이 책을 집어 들었을까 후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다 보면 특유의 괴기한 묘사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묘사를 머릿속에서 상상하다 보면 어딘가 조금 부족하거나 유치하게 그려진다. 현실세계에서 보고 느끼는 2차원의 영상으로만 그의 괴기한 묘사를 상상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한계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하루키의 괴기한 묘사는 책 속에서 글로 존재할 때 더 신선하고 더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들이다.

 

‘춤추는 난쟁이’ 중
그녀의 얼굴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처음에는 콧구멍에서 통통하게 살찐 하얀 무언가가 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구더기였다. 이제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구더기였다. (…중략…) 코의 피부가 주르륵 벗겨지자 그 안의 녹아 흐물흐물 해진 살덩이가 주위로 흘러내리더니, 결국엔 어두운 구멍 두 개 만이 남았다.
‘비 오는 날의 여자’ 중
연기는 냄새를 피우며 하늘로 올라가 공기를 좀먹었다. 공기는 전부 뱀이 되더니 내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중략…) 냉동고 안에는 다람쥐 사체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모두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나는 쫓아오는 뱀을 향해 그 다람쥐 사체를 던졌다. 다람쥐는 뱀까지 가 닿기도 전에 곰팡이 같은 포자로 분해되어 공중에 흩날렸다.

 

역시나 상상해서 머릿속에서 투영하면 괴기하기 짝이 없다. 글로써 남아있을 때 하루키의 괴기함은 때론 좀 더 예술적이고 유의미해 보이는 것 같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빌리면 6편의 단편소설 중 하나인 ‘반딧불이’는 하루키가 이 소설을 처음 쓴 뒤 4년이 지난 후 장편으로 개작했다고 한다. 또한 이 작은 이야기가 대장편이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훗날 발표되는 장편은 ‘노르웨이의 숲’이다. 이 유명한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분이라면 이 단편에도 흥미가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나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춤추는 난쟁이’가 확대되어 ‘1Q84’가 된 건 아닐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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