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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hn Mun Jun 23. 2020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트라우마에 대한 현대의 고전

#몸은기억한다 #베셀반데어콜크 [평점 8.9 / 10.0 ]


저자인 벤셀 반 데어 콜크는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30년 이상 연구한 의사이자 권위자이다. 국내 전문가들의 서평을 보면 이 책을 ‘가히 트라우마에 대한 현대의 고전’이라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30년의 연구결과가 담긴 책으로 트라우마의 사례와 의학적 지식, 그리고 역사가 담겨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일종의 심리서나 정신 의학서라고 보면 된다. 트라우마가 발생되는 뇌의 원리와 신체적 구조, 그에 따른 약물 치료의 효과나 한계점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현재 미국의 학계가 바라보는 트라우마에 대한 시선과 저자의 의견을 뚜렷이 전달하고 있어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꽤 집중하며 읽어야 할 책이다.


트라우마의 정식 명칭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최근에 생겨난 용어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에게서 관찰되는 공통적인 병리적 경험을 통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공식 명칭이 만들어졌다. 그 전에는 오늘날 트라우마라고 정의되는 환자들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고, 그에 따라 치료도 중구난방으로 이뤄졌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이 만들어졌지만 아직은 다소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아동 시기의 후유증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성인의 트라우마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큰 범주에 속해 있어 별도로 구분되지 않고 있다.


아동 시절의 불편한 경험으로 인한 환자가 적지 않음에도 그들을 진단할 수 있는 별도의 진단명이 없어 치료법의 발전도 더딘 상태이다. 소아시절의 성착취, 폭력에 대한 노출, 충격적인 경험 등은 기억에서 잊힐 수는 있어도 몸은 그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동 시기의 불편함 경험을 트라우마로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거나 유사한 상황을 상상하게 되면 신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비정상적인 신체 시스템이 작동하게 된다.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외부와 자신이 차단되어 집중이 어렵고, 합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장기화되면 외부 세상과 본인을 단절하기 위해 자위나 자해 등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이런 행동은 사회와 본인을 더욱 단절시킴으로써 환자를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


꽤나 불편하고 마음 아픈 이야기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 결국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낳게 되는 불가항력적인 질병이다. 저자는 이런 트라우마를 치료법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실질적인 요법, 약물적인 방법에서부터 동양적이라고 분류할 수도 있는 요가나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한 연극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이러한 치료방법들이 정말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개인 스스로가 혼자 노력해서 되는 치료가 아니라 공동체가 감싸주고 보살펴야 한다는 점, 특히 아동 시기의 후유증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성인 이전에 발생된 일이라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다.  의학적 지식을 떠나 더 나은 사회와 소외된 계층을 위해 꼭 읽어봐 야할 도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P49. 어떤 면에서는 그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 준 사건이 곧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원천이기도 했다. 트라우마가 된 과거의 일을 다시 떠올릴 때만 온전히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낀 것이다.
P128. 트라우마 치료에서는 과거의 사건에 대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경험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머릿속에 트라우마 기억이 우세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P144. 이 시스템이 망가지면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다.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가해자가 그 간곡한 청을 무시할 때, 어린아이가 침대에 누워서 잔뜩 겁에 질린 채 엄마가 남자 친구에게 맞으며 질러 대는 비명 소리를 들을 때, 친구가 쇳조각에 까려 꼼짝 못 하는데 도와주고 싶지만 도저히 들어 올리지 못할 때, 자신을 추행하는 목사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벌을 받을까 봐 걱정될 때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P170. 트라우마 희생자들은 자기 몸의 감각에 익숙해지고 주의를 기욱이지 않는 한 회복될 수 없다. 깜짝 놀란 상태로 산다는 건 늘 경계 태세에 있는 몸으로 살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P191. 대부분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 동떨어진 상태로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중략)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무관함, 소원함이 주는 지독한 우울함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P255. 트라우마가 된 사건 자체는 종료될 수 있지만,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기억과 재편성된 신경계에서 그 사건은 반복해서 재현된다.
P324.  과잉 흥분 상태든 세상과 차단된 상태든 그러한 상태에서는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가까스로 통제력을 유지한다 해도 지나치게 경직되어 융통성이 없고 고집 세고 우울한 모습을 보인다. 트라우마 회복을 위해서는 실행 기능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감과 명랑함, 창의력을 회복할 수 있다.
P557.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남들과 함께 있을 때 안심할 수 있어야 정신도 건강하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안전한 유대 관계는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형성하는 기본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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