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 세계관을 나누자면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계와 자아는 분리되어있고, 자아, 즉 '내'가 죽어도 세계는 계속 존재한다는 이론인 이원론과 세계와 자아는 하나라는 일원론적 사상.
보편적으로 서구사회에 영향을 받은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일원론의 사상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세계와 자아(나의 의식)이 어떻게 하나인 것 인가? 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소이론을 말하며 세계를 물질로 이해하려했다. 그런 현대과학의 기초가 되는 사상과 기독교적인 사상이 합쳐져 현재에는 '세계와 자아(나의 의식)은 분리되어 있고, 우리는 죽어서 없어지든, 천국을 가든, 어떻게 된다'라는 인식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혀있다.
그렇기에 일원론을 이해하기란 쉽지않다. 일원론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칸트의 관념론을 살펴봐야한다.
보통 생각하는 우리가 앞에 있는 빨간 사과를 인식하는 과정은 이러하다. (실재론)
1.사과가 존재한다.
2. 햇빛이 사과를 비추면 반사된 입자가 눈의 망막세포로 전달된다.
3. 전달된 입자는 전기적인 신호를 통해 뇌로 전달되며
4. 뇌에서는 이를 해석하여 '본다'라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칸트의 관념론은 다르다.
사과는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미 인식 주체(나)의 내면에 있다.
'즉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외부 세계는 내 바깥에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이미 나의 인식과정을 통해 내면에 그려진 현상 세계다.' - 지대넓얇 제로 461p
말이 너무 어려우니 내가 이해한대로 설명을 해보자면,
눈 앞의 사물은 인식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즉 우리는 보기 전까지는 물자체가 어떤 물자체인지 모른다.
하지만 자아가 물자체를 이리저리 색깔을 입히고 다듬고 정리해서 시공간이라는 무대위에 올려놓는다.
이 결과물이 눈 앞에 펼쳐진 현상 세계의 실체다.
즉 자아가 사라지면 현상 세계도 사라진다는 것이 일원론적 사고 방식이다.
이는 상식적인 사고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오래전에는 당연한 패러다임이였다고 한다.
'소외'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산업화가 진행될 수록 세부적으로 분업화가 되고, 분업을 하는 작업자들은 전체적은 결과물을 보지못한다는 것에 유래되어 '소외'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서구 사회의 이원론적 사고방식은 자연, 세계를 탐구해야하는, 혹은 연구 활용해야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원론적 사고방식은 빠른 산업화와 풍요로운 물질을 인류에게 제공했지만,
인간들에게 '소외'를 주었다.
내가 죽어도 세계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이는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외'라는 말이 나오게된 산업화의 분업화도 인류를 허무주의에 빠트릴 수 있다.
일원론은 범아일여, 일체유심조, 관념론등으로 거대 사상들이 설명하는데,
일원론적으로 사고한다면, 자신의 내면을 좀 더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직도 일원론이란 이론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이 있고 현재 내가 일원론적을 이해하여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할 듯하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해 각자의 색안경(자아)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은 각기 다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