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내는 예술의 방법

책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 - 마이클 페피엇

by Hoho
창작은 삶의 격랑에 맞서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유명한 예술가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예술 작품에서 그를 창작한 인물의 삶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저자는 27명의 예술가들의 삶을 찾아 기록으로 남겼다. 창작은 삶의 격랑에 맞서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라는 표지 문구에 혹해 읽어보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예술에 관심은 있다고 하지만 책에 나온 대부분의 예술가들을 알지 못했다.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아는 유명한 반 고흐와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 정도만 알았지, 정말 생소한 이름들이 많아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작품을 계속 찾아봐야 했다.


짧고 굵게 살다 간 오브리 비어즐리부터 일생을 고통 속에 살다 간 반 고흐, 삶의 통증과 우울을 그리며 자신만의 표현 기법을 탄생시킨 프랜시스 베이컨까지, 이 책을 보면서 여느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보다 더 깊이 있게 예술가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전시회에서는 사실 작품을 보며 짧은 오디오 가이드 정도만 들으니, 예술가들이 창작할 때 일렁였던 심경의 변화같은 것들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달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 전 예술가들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삶의 민낯을 마주하고 이를 예술작품으로 표현한 여러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가장 힘든 시기를 겪어냈던 이들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기억에 가장 남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읽다가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지만 읽을 수 밖에 없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의 무게만큼 무거웠지만 덮었다가도 다시 펼칠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고통의 본질을 찾아서


1. 조란 무시치


a5f8f7c3-894c-4538-a1ce-ce6ba29afa66_570.Jpeg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 | Venezia, Piazza San Marco - 조란 무시치 | Zoran Mušič


조란 무시치는 2차 세계대전 하에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인간이 당하는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그렸다. 1942년, 전쟁을 피해 그는 베네치아에서 지내면서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배와 바다, 산 마르코 광장들의 이미지를 몽환적으로 그려내던 그는 1943년, 정치적 성향을 의심받아 강제 수용소에 이송되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그의 작품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계기였다.


이상한 형태의 한 산맥이 눈길을 끌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산들은 모든 초목이 제거된 듯했고, 햇빛에 거의 흰색으로 보였다. 산의 측면에는 작은 시내가 만들어져 어두운 줄무늬가 생겼는데, 꼭 나란히 놓인 갈비뼈 같았다. 순간 무시치는 강렬하고 깊은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 산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그것이 다하우에서 매일 마주한 풍경이었던, 몇 미터 높이로 쌓인 시체 더미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을.

p.292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보았던 죽어가는 사람들, 비현실적인 시체 더미, 철제 양동이에 모아진 금니들. 그것들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수용소에서 나온 후에도 그의 기억을 지배하는 어떤 이미지들이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리려고 해도 자꾸만 비집고 나오려고 하는 트라우마적 기억. 결국 그는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형상들을 그렸다.


04ea253e-7147-4734-944f-4b40773bc7ca_570.Jpeg 우리는 마지막이 아니다 | Wir sind nicht die Letzten - 조란 무시치 | Zoran Mušič


'우리는 마지막이 아니다'라는 제목에서 읽히는 섬뜩한 경고. 시리즈로 그려진 이 작품은 현재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의 공포와 대량학살의 잔혹함과 겹쳐졌다. 전쟁 반대에 대한 담론은 활발하다. 그러나 무자비하게 일어나는 대량 가축 살처분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은 소름 끼칠 정도로 크다. 이는 계속해서 싼 값에 고기를 먹으려는 인간의 탐욕이다. 모든 인간적인 것은 자본의 효율성 아래 무너진다.


우울하고 섬뜩한 그림은 인기가 없다. 조란 무시치도 그렇다. 흔히 예술을 '향유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하지만 영어로 'enjoy'라고도 표현한다. 향유하는 예술에 그로테스크한 그림은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술의 역할은 인간 본질의 어두운 면모를 드러냄도 있다. 우리네 삶은 고통스럽다. 가려진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예술도 중요하다면, 가려진 어두운 모습을 드러내는 예술 또한 중요하다.


60110114103738(3).JPG?type=w860 구제역 농가 돼지 살처분 현장 (출처 : 프레시안 뉴스)



2. 프랜시스 베이컨


프랜시스 베이컨의 격정적인 삶을 읽어내려갈 때는 나의 심장도 빠르게 뛰다가 숨이 막힐 지경에 이르렀다. 단 몇 페이지의 책에 담느라 압축되었을 그의 불안정한 삶은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나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글을 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렸을 적 허약 체질이었던 베이컨을 교육시키기 위해 아버지는 동료 마부에게 베이컨을 채찍으로 다스리길 주문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고통에 절규하던 베이컨은 맞으면 맞을수록 느껴지는 이상한 황홀감에 휩싸였고, 끝내 고통을 즐기는 성도착증에 빠진 마조히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뜨겁게 사랑을 나누다가도 살벌하게 싸우기를 반복한 동성 연인 피터 레이시와의 시간, '인생은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간다'는 말에서 드러나는 삶의 허무함과 무의미함, 2번에 걸친 전쟁에서 본 고통스러워하는 국민들. 그는 혼돈과 무질서에 사로잡혔다.


격동적인 그의 삶을 보고있자니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그의 기괴한 작품들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했는지 알게 되니 나도 덩달아 고통스러워졌다. 나는 삶에서 고통을 목격하면 목격할수록 그 트라우마는 점점 강해지고 나의 몸에 새겨져 일부가 된다. 고통스러워하는 존재들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자각할 때면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보길 원하고 고통은 지워지길 바란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 자본이 고통을 감추는 방법이 딱 그러하다. 아름다움으로 고통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는 그 감춰진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지 못한 채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아간다.


나 또한 베이컨처럼 고통을 드러내고 싶지만 나는 사실 고통에 괴로워한다. 고통을 다루는 방법을 잘 모른다. 고통에 사로잡힌 프랜시스 베이컨같은 사람만이 고통을 고통스럽게 그리고 표현할 수 있다. 그의 삶에 경외감을 느꼈다.


고통을 마주하는 나와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하는 나. 모순적인 두 인격 모두 나를 구성하는 모습이다. 시시때때로 왔다갔다한다. 책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 속의 두 인물, 조란 무시치와 프랜시스 베이컨은 내가 앞으로 인생을 대하는 하나의 방향키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 그림 출처 : https://www.mutual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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