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퇴사자의 변(辨)

인생의 무게를 조금 덜어볼 수 있을까

by Hoho

여느 회사원이 그렇듯 퇴사할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정말이지 당장 내일 퇴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습관처럼 달고 살았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처음 생긴 지 2년 정도 지났을까, 정말 퇴사를 해버렸다. 뭘로 벌어먹고 살지 뚜렷한 대책이 없는 와중에 내버린 사직서였다. 회사 밖은 시베리아라던데, 추운 나라를 좋아했던 나는 시베리아에 발을 내디뎠다. 안정감이 사라졌고, 소속감이 사라졌다. 매일 함께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던 회사 동료들이 없어졌다.




모든 인생의 무게가 나에게만 있는 것 같은 취준생 시절, 어떤 회사를 지원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일단 꼰대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한국 회사도 싫었고, 생활비만 겨우 댈 수 있는 수준의 월급을 주면서 밤새 부려먹는 디자인 회사도 싫었고, 당장에 내 사업을 하자니 패기도, 건덕지도 없었다. 진심이 아닌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면서 서류 탈락을 반복하던 와중, 친구가 알려준 외국계 기업 디자인팀 채용 공고는 하나의 빛줄기 같았다. 그렇게 나에게 온 기회를 붙잡고 들어간 회사에서 나는 나름 '열심히' 일했다. 요령을 피울 줄도 몰랐고, 성격상 상사한테 친한 척을 할 줄도 몰랐다. 그저 내 성격대로 묵묵히, 꾸준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3개월, 1년, 3년이 고비라고 하는데, 나름 오래 버틴다 싶을 즈음인 3년째에 첫 슬럼프가 왔을 때부터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과 이 회사에서 버텨야 하는 이유들에 대해서.

회사를 다닌 지 3년 차쯤 되니 사람 때문에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니 일이 점점 고되져서 힘들었다.

하지만 첫 직장인 데다가 외국계 기업이니 이건 결코 힘든 게 아니라고, 친구들을 만나 또라이 상사 이야기를 들을 때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정신 차리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이만한 회사는 없다고, 나는 이 안에서 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며 어떤 커리어 패스를 만들면 좋을지 억지로 고민해야 했다.


마침 그즈음, 키우던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나는 환경 덕질을 시작했는데(전편 참고), 그것이 내 인생의 길을 만들어 줄 줄 누가 알았을까. 기후 변화의 심각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뉴스 기사, 다큐, 책들을 조금 더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환경 문제가 나의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멸종과 자연재해 이야기가 더 이상 먼 일 같지 않았다. 참 신기하다. 이전에도 자연과 시골을 좋아하고 멋진 자연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는데, 고작 1년 반 정도 키우던 고양이가 죽고 나니 이 생태계 파괴의 사이클 안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피부를 지나 뼛속까지 느껴진다니. 무언가 연결된 느낌이었다. 고장 난 usb선을 새로이 바꿔 끼운 느낌이었다. 입력값은 계속 있었지만 내가 제대로 읽지 못하던 것을 이제는 너무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나는 슬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불타는 숲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이 지르는 비명과 베어지는 나무들이 흘리는 눈물이 느껴졌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그저 내 개인적인 상상력에 그치는 것일까? 세상에는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의 첫 반려고양이 하몽이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더 이상 이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렇게 안일하게 내 몸만 사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본능적으로 몸이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고, 마음이 불편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자연 속에서의 삶을 살자, 주체적인 삶을 살자 다짐하기를 몇 개월. 줄곧 도시에서만 살던 내가 갑자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살려고 하니 막막하다.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하는 것보다 더 막막한 일이 아닐까 싶다. 도시에서만 살던 나는 내 먹거리 하나 키우는 법도 모르고, 어느 채소가 언제 나는지도 모르고, 요리를 잘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시골집이 고장 나면 수리를 해야 하는데, 목공도 배관도 전기도 아무것도 모르는 생존능력 0의 서울 촌뜨기이다. 도시인들이 정글에 버려지면 한 이틀은 버틸 수 있을까? 이렇게 점점 더 자연에서 고립되는 도시의 삶을 살다가 나중에 지구를 다 파괴하고 화성으로 도망가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면 장땡일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문화생활도 할 수 없는 깡시골에 들어가서 살고 싶은 것일까?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예쁜 잔디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이웃집이 적당한 거리로 듬성듬성 위치한 그런 럭셔리한 시골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일까? 농부가 되고 싶진 않은데, 내 먹을 것 정도만 키우면서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디자인 회사가 있는 지방도시로 가야 할까?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온갖 고민과 딜레마가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유치원 시절을 생각해보면, 온갖 힘듦과 서러움은 나에게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소식에 편식쟁이인 나에게 억지로 밥을 먹게 하는 분위기도 너무 싫었다. 학교를 들어가니 파워 I인 내성적인 내가 친구들과 사회생활을 잘 해내야 하는 것이 최대 고민거리였다. 친구 관계 하나에 울고 웃고, 마음이 들떴다가 가라앉았다가를 반복했다. 고3 수험생이 되니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랴, 미술학원 다니랴 예민이 극에 달해있었고, 대학생 때는 너무 많은 과제가 나한테만 쏟아지는 것 같은 무게에 짓눌려 살았다. 취준생이 되니 세상 모든 서러움과 억울함이 나에게만 있는 것 같았고, 회사원이 되니 앞으로의 인생의 목표가 보이지 않아 자욱하게 안개 낀 길처럼 막막하고 불안했다. 매 순간 짊어진 인생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다. 내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니 어른의 인생의 무게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느꼈던 무게는 워밍업이었다. 이제부터 드는 무게가 본 게임이었다.


하지만 항상 궁금했다. 유럽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나라의 어른들을 만나면 왜 이렇게 온몸에서 여유로움이 넘쳐흐를까?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어른들을 만나면 그 생활이 참 불편해 보이는데 왜 이렇게 얼굴에서 행복함이 묻어나올까? 서울에 사는 어른들은 항상 왜 이렇게 급하고 쫓기듯이 살고 있을까?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이야기한다. 성장이 우선시 되는 사회는 업무 효율성이 가장 중요하고, 사람을 마치 기계 부품처럼 여기니 죽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심지어는 밥을 거르면서 일을 한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아파트, 좋은 차를 갖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피를 빨아먹는 회사에서 마치 본인이 열정을 바쳐 일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모든 피를 다 내준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좋은 아파트를 사고, 집값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에 생사가 왔다 갔다 한다. 경차에서 소형차, 중형차, 세단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뼈 빠지게 돈을 벌고 그렇게 얻은 재산에 만족하지 못해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미처 돌보지 못해 병든 몸을 고쳐줄 수 있는 명의사가 있는 병원 근처의 아파트에서 노후를 보낸다.


인생의 목표가 돈/재물이 된 사람들이 짊어진 무게란 어마어마하다. 자그마한 금전이 한두 푼 모여 커다란 금속덩어리가 되어 등을 짓누르고 있는 모양이다. 자산이 많아지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불안하고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힘든 길을 거치고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사회는 자꾸 다음 목표를 가지라고 채찍질하는 것 같았다. 결혼을 하면 아이가 생길 테니 돈을 열심히 모아 방 세 개정도 있는 집으로 가야 하고, 괜찮은 차도 사야 하고, 가끔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따며 기념일을 축하할 줄도 알아야 하고, 아이들 교육은 좀 괜찮은 학군에서 시켜야 하고.. 사회가 정한 기준들이 나에게는 너무 벅차고 무엇보다 의미없는 목표였다. 일단 그렇게 자란 아이가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들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시적인 행복은 쾌락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길에서 주류에 휩쓸려 걷던 나는 항상 불안했다. 이러다가 내가 꿈꾸던 삶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는 것이 아닐까? 회사에 머물면 나만의 길을 개척하지 못한 공허함에 불안하고, 퇴사를 하면 다시 한솥도시락을 먹던 지갑 빠듯한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야 해서 불안하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싶었다. 전자는 겉보기엔 안정적이지만 마음이 공허한 불안감이라면, 후자는 마음이 꿈으로 충만한 행복한 불안감이다. 그저 기계 부품이 될 것이면, 이 시스템에서 최선을 다해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모든 인생의 단계가 사회가 던지는 수많은 과제를 짊어지며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삶은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나를 되찾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삶, 보람된 삶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내 삶을 돌아보면서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먹을 것을 내가 키우고, 직접 요리해서 차린 식탁은 얼마나 호화로운가. 내가 자는 공간을 단정히 하고, 내가 입는 옷들을 직접 빨아서 좋은 볕에 널고 난 후에 느끼는 여유는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오래된 집을 고쳐서 내 입맛대로 페인트칠하고 벽에 부담없이 못질을 해서 사진을 걸 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숲 속에서 뛰어놀고 벌레들을 관찰하고 탐험가가 되는 상상을 하며 자란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유럽 어른들의 여유가 갖고 싶었다. 인생의 무게를 조금 덜고 그 순간을 즐기며 울고 웃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갖고 싶었다. 그런 삶이 결국엔 나의 몸과 마음에 건강하고, 자연에도 건강한 상생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내 인생의 목표를 말해보라면 예나 지금이나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해 좋은 회사를 가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짧은 과정에서 ‘진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서울의 아파트나 차나 비싼 레스토랑이 내 행복을 채우지 못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텃밭채소로 만든 채식요리. 순서대로 루꼴라피자, 딜페스토파스타, 콩고기쌈밥, 가지덮밥과 햇완두콩깍지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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