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FJ남편과 INTJ아내를 소개합니다
나는 완벽주의자에 원칙주의자이다. 느리고 꾸준하지만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하는 생각들이 너무 많아 행동력이 부족하다. 각이 안 나온다 싶으면 도전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영혼이고자 하지만 은근히 규율을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고, 법이 허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법대로 하고 싶어 한다. 고집이 세고, 내 기준에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기 싫어한다. 나는 말주변이 좋지 않아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생각은 많지만 언어로 정리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철학적인 사유를 좋아하고, 유머감각이 없다. 독일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지만 스스로를 독일과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주로 듣는 편이다. 말주변도 없는데 말을 많이 해서 스스로의 약점을 노출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제는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지만 내 인생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비관적인 기질이 있다. 대학생이 된 후부터 스스로를 주입식 한국 교육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개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을 죽이고 그저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성공과 행복이 보장되어 있다는 선전에 현혹되어 쓸데없이 모범생이었다. 사회, 과학은 못해도 국영수만 잘하면 성공가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다른 과목들은 등한시했다. 그 와중에 틀에 박힌 입시미술을 준비하며 디자인학과에 들어가니, 정말 세상에는 별 돌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물 안에서 살고 있었고, 세상은 넓었다. 나를 알아가고, 나를 표현하고, 틀을 깨는 연습을 많이 했다. 원칙주의자인 나에게 어려웠지만 내 안의 개성을 끌어내 보려 애썼다. 돌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나는 어떤 종류의 돌아이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나는 눈에 띄진 않지만 진득한 덕후 기질이 있다. 다섯 살 때 작은 고모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짱구 인형을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애착 인형으로 모시고 있다. 짱구는 못 말려 만화책을 다 보고, 극장판을 다 챙겨보고, 여전히 본가에 놀러 가면 투니버스를 틀고 짱구는 못 말려를 재밌게 본다. 중학교 때 데스노트를 읽고 류크라는 캐릭터가 귀여워서 친구와 양재에서 열리는 서울코믹월드에 놀러 갔다. 온 진심을 다해 코스프레하는 사람들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슈퍼주니어에 빠져 필통 안쪽에 슈퍼주니어 멤버들의 사진이 출력된 시간표를 붙이고 다녔다. 콘서트에 갈 돈도 배짱도 없으면서 쉬는 시간에 친구랑 야광 플랜카드를 만든다고 호들갑이었다. 중학교 때 지뢰찾기 게임의 원리를 배우고부터 지뢰찾기에 빠져 대학교 때 과제하기 싫은 조용한 새벽시간 내내 지뢰찾기 게임을 했다. 지뢰찾기의 원리는 알고 나면 매우 단순해서 게임에 익숙해지고 나니 내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복잡할 때 손이 심심하지 않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정말 신기한 게임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투애니원과 포미닛이 유행시킨 레깅스에 빠져 화려한 색감의 레깅스를 모았다. 제품 디자인 수업 때 콘크리트라는 재료로 만드는 제품들에 매력을 느껴 4년 내내 콘크리트를 만졌고, 브랜딩까지 했다. 언젠가는 핀버튼을 수집하는데 빠지고, 빈티지 컵을 모으고, 예쁜 포스터를 모으고, 캔들을 사고, 화병을 사들였다. 대학교 때 사진동아리에서 DSLR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 어언 12년째이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여태껏 내 인생에서 크고 작은 덕질들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그러던 내가 이번에는 환경 덕질을 시작했다. 이건 좀 큰일이었다. 그저 단순한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닌 내 가치관과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버린 덕질이 시작된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방향일까 하는 철학적인 고민에 한창이던 2018년 즈음이었다. 어른들이 성공가도라고 말했던 괜찮은 대학과 괜찮은 회사에 취직하고 3년 정도 지나니 마음 한 구석이 비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이 볼 땐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불안했다. 좋은 회사라고 잘 포장된 외국계 기업에서 외국인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니, 그토록 싫어하던 한국 꼰대 회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하면서도 이 일에서 인생의 목표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칼퇴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가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그 해에는 3주 휴가를 내고 마침 친구가 공부하고 있는 아일랜드로 놀러 갔다. 아일랜드를 돌고 런던에서 10일 정도 있다가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런던에 가기 3일 전쯤,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내가 키우던 페르시안 고양이 하몽이를 부모님 댁에 맡겼었는데, 갑자기 하몽이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패닉이 되어 그날 일정을 취소하고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심장병이라고 병원에서 응급처치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내주지 않는 것이 의심스러웠지만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혹시나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을 들을까 봐 궁금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런던 일정을 취소하고 한국에 돌아가니 역시나, 하몽이는 이미 하늘나라로 떠난 후였다.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사랑하는 존재들과 나 자신조차 언젠가는 한 줌의 흙이 되고, 지구의 일부가 되어 새 생명을 틔우는데 일조하는 순환적인 생태계가 나의 인지체계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삶과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시간이 없다. 보통 사람들처럼 그저 바쁘게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부랴부랴 집에 오면 스트레스를 푸느라 유투브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친구랑 쇼핑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루하루 미루고 중요한 가치를 찾는 것에 소홀했다. 내가 삶과 죽음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였는데, 하몽이가 죽었을 때는 뭐랄까 감정적인 연결이 조금 더 짙었던 것 같다. 하몽이가 나를 보며 애타게 야옹거리던 눈빛과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내 발목을 붙잡는 애교가 자꾸 떠올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몽이를 케어해 줄 사람이 나 하나라는 것이, 하몽이가 아팠던 것도 내 케어의 부족함이라는 뜻이 되어버려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 이후부터는 이 보잘것없는 인류를 포용하는 지구에 자꾸 생채기를 내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큰 죄책감으로 느껴졌다. 내가 사는 동안만큼이라도,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우고 가자는 생각으로 환경 덕질을 시작했다. 환경 관련 기사와 서적, 다큐멘터리를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하고, 개인 차원에서의 실천을 꾸준히 했다. 제로 웨이스트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거의 비건이 되었고, 땅을 살리는 생태 농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본격적인 덕질은 내 인생의 목표를 찾아주었고, 지금의 나는 말주변이 없어 글을 쓰고 있는, 디자인밖에 할 줄 모르는 환경운동가이다.
내가 본 내 남편은 솔직하고 털털한데 사람들에게 매우 호의적인 원칙주의자이다.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그대로 겉으로 드러난다. 말주변이 좋아 끊임없이 말을 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동시에 상대방의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 그냥 잘 들어주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질문 공세로 이어져 상대방이 신나서 자기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연락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축구를 열심히 하고 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싹 풀린다고 한다. 원래도 에너지가 넘치는데 축구를 꾸준히 하니 체력이 매우 좋다. 언뜻 보면 가벼운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데, 자기가 세운 원칙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 바른생활 사나이다. 아침마다 꼭 신문을 읽고 뉴스 기사를 보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한다. 매일 밤 일기를 쓰며 그날 하루를 되돌아본다. 약속시간에 늦느니 기다리는 게 낫다고 꼭 일찍 나간다. 부모님과 소통을 잘하는 아들이 되고 싶어, 한동안은 일부러 조기축구팀에 들어가서 아버지 세대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관찰했다고 한다. 건망증이 어찌나 심한지, 나랑 썸 탈 때 내가 알려준 맛집을 나에게 거꾸로 알려주어 한동안 놀림을 당했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몰라 축구만 열심히 하다가 성적에 맞춰서 일단 대학교를 들어가고, 나중에 편입 공부를 해서 무역학과에 들어갔다. 특유의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대학교 대외활동을 열심히 해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은행원이 되어 30년 넘게 근속한 후 정년 퇴임하신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사는 인생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뭘 좋아하고 뭘 해야 할지 잘 몰라 방황기를 거쳤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친(구)딸이 이케아에 다닌다더라~'라는 어머님의 지나가는 한 마디에 그럼 이케아에 지원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했다. 평상시 알뜰하고, 고쳐 쓰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알뜰코너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회사에서의 나는 주로 조용하고 사무적이고, 일과 사람에 치이고 지쳐서 안 그래도 무표정인 얼굴이 한 층 더 굳어있었다. 누가 봐도 화났나 싶은 인상이었다. 회사에서의 남편은 볼 때마다 밝은 얼굴에 인사성이 밝고, 목소리가 또렷하고 우렁찼다. 누가 봐도 기분 좋아지는 인상이었다. 덩달아 밝게 인사를 해주고 싶어도, 땀에 찌든 내 얼굴과 지친 걸음걸이로는 아무리 밝게 인사한다 해도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엄(마)친(구)아(들)이라고 하니까 의무감에 하는 인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떻게 놓고 봐도 전혀 다른 나와 내 남편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