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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Mar 05. 2023

시골에서 찾은 '나의 삶'

책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 - 정광하, 오남도

주체적인 삶을 찾아서


단양의 달팽이 텃밭에 우프 체험을 갔을 때 추천받아 기억하고 있던 논산의 ‘꽃비원’에서 책을 내며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신청하였다. 꽃비가 내리는 정원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낭만적이다. 과수와 꽃이 예쁘게 피는 밭과 그곳에서 난 작물로 요리해 주는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는 ‘주체적인 삶’이다. 시골에서 자라 도시의 삶을 갈망하여 서울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일했던 저자는 결국 다시 귀촌을 택했다. 주변에 휩쓸려 살아가는 도시에서의 삶이 아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풍요로운 시골의 삶을 원하고 있었다. 나 또한 도시에서만 살아가고 교육받으면서 어느 순간 들었던 생각은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당장이라도 기후재난으로 모든 공급망이 끊기고 터전을 잃게 된다면, 나는 과연 집은 지을 수 있나?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먹으면 안 되는 식물을 구분할 수 있나? 농사는 지을 수 있나? 이러한 질문들을 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체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 적어도 내가 하는 일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내가 입고 먹는 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안다는 것이 아닐까. 이런 고민 앞에서 회사원이었던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퇴사 후 농사를 시작한다고 외친 게 고작 1년이지만, 이 짧은 경험에서도 나는 흙을 만지며 직접 수확하는 음식을 먹는 기쁨에 비로소 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꽃비원의 저자도 비슷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귀농 초기에는 어떻게 이렇게 힘든 시골에 내려올 생각을 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는 힘들지 않다고 답했는데, 요즘은 힘든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농사를 짓다 보면 쉬는 게 더 어려워진다. (…) 그런데도 우리 눈에는 이런 작물들이 ‘노동력 대비 생산성’의 관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과한 노동을 들여야 하는 무언가라기보다 내가 보살펴야 하는 것 중 하나, 나와 식구들이 먹을 귀한 음식으로 보인다.  
- 본문 중에서


도시에서는 모든 것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딱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식의 계산적인 태도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농장의 노동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물론 판매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먹을 것을 키우고 내가 사는 땅을 돌보는 일에 꼭 보상이 필요할까. 정성으로 일궈내는 아름다운 터전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인 것을.


안전한 공동체를 찾아서


꽃비원이 다른 농가와 다른 점은 지속적인 ‘연결’을 고민한다는 점이다. 도시에서 열리는 농부장터 마르쉐에 꾸준히 참여하여 소비자들과 직접 보고, 듣고 대화하며 작물들을 판매한다. 제철채소 꾸러미를 제작하여 회원들에게 계절마다 배송해주기도 하고, 뜻이 맞는 농가들과 함께 지역 장터를 열기도 하는 등, 여러 시도들을 통해 꽃비원의 가치와 철학을 알리려는 노력들을 많이 한다.


정부의 정책은 모두 스마트팜, 4차 산업으로서의 농업 등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로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지역 소농들이다. 스마트팜은 결국 자본주의 중심의 도시형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또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다양성은 죽고 줄어야 할 에너지 사용량은 늘어만 간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퍼머컬처는 나무와 관목, 허브류와 뿌리작물 등 자연의 숲을 모방한 다층적인 구조를 만들어 지력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농법이다. 하지만 농사뿐만 아니라 의식주, 삶과 죽음까지 이르는 모든 삶의 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문화 운동을 뜻한다. 퍼머컬처의 철학을 공부하고 이것이 내가 찾던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퍼머컬처 공동체에서 짧은 시간 활동해보고 나니 이제 알겠다.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도시에 살면서 일에, 사람에 치여 귀촌을 외쳤던 과거의 내 마음은 어쩌면 회피하고자 함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시골집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것. 하지만 인프라가 부족한 시골에서는 혼자 힘으로 살 수가 없다. 옆집, 앞집, 건너편 집과의 교류가 중요하다. 나에게 없는 것을 빌리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눠준다. 아픈 사람이 생기면 서로 챙겨주고, 누군가 자리를 비웠을 때 집을 돌봐준다. 그저 돈으로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할 때 놓치기 쉬운 ‘마음의 돌봄’이 있다.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살지만, 수시로 챙기고 돕는 사람이 이웃에 있는가?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서로 가진 것을 지키기 바쁘다. 내가 돈 주고 들어와 사는 집이라는 공간에 층간소음이 발생하면 윗집과 물어뜯기 일쑤다. 사람이 모여 살지만 역설적으로 외로움이 더 커지는 이유이다.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새로운 공동체의 실험들이 곳곳에 보인다. 도시에서는 갖가지 활동들을 하는 쉐어하우스가 나타나고, 성미산 마을은 육아와 교육, 주거 등 삶의 전반을 함께 하는 활발한 커뮤니티이다.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모델은 퍼머컬처 공동체이다. 퍼머컬처 공동체는 비단 농부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다. 각자 여가시간에 조금씩 밭을 가꾸고, 그곳에서 나는 자원을 활용하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식당을 할 수도 있고, 숙박, 카페, 술집, 꽃집, 책방 등등 컨텐츠는 무궁무진하다. 함께 마켓을 열고, 음악회나 텃밭 체험 등의 축제를 열어 외지인들을 초대한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마을이다. 공동체의 장점은 마을의 많은 사안들이 회의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마을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거대한 규모의 도시가 이뤄낼 수 없는 작은 공동체만의 건강한 문화이다.

 이런 다양한 공동체가 지역 곳곳에 많이 생긴다면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도시에서의 일률적인 삶만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존중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거대 조직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거대 조직이 생겨나자마자 그 내부에서는 곧바로 작은 조직을 만들려는 노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실생활과 그리 가깝지 않은 이론가들은 대부분 아직도 대규모라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지만, 현실 세계의 실무자들은, 가능하다면 소규모 조직의 민첩성, 인간미, 유연성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고자 갈망하고 노력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E.F.슈마허 지음
- 본문 중에서


꽃비원의 다양한 시도들이 사실은 아직 보수적인 시골에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한계에 부딪혔을지 짐작이 가서 더 대단하고 멋져 보인다. 지역을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는 이런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또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도시와 시골의 불균형이라는 큰 문제를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꽃비원의 사례를 보며 나는 어떠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상적인 그림은 머릿속에 있지만 한국이라는 땅에서, 그걸 실현하기란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안다. 알면서도 굳이 이 어려운 길로 뛰어든 이유는 나 또한 주체적인 ‘나의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는 삶. 우리 모두 진정으로 내 인생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는지 한 번 고민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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