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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Jul 21. 2023

실패를 배우고 있습니다.

실패란 무엇일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감자 농사에 실패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똑같은 씨감자를 사용한 주말농장 대표님의 감자들은 꽃도 피고 잎도 건강한데, 내 감자는 28점 무당벌레의 집단 공격을 당해 잎에 구멍이 송송 나버렸다. 덕분에 수확을 몇 주정도 남기고 모두 시들어버렸고, 당연히 땅 속에서는 알감자 몇 알 정도만 구출할 수 있었다. 이는 내가 게으른 탓일 수도 있겠다. 대표님이 신신당부하신 28점 무당벌레와의 전쟁을 위해서는 아침 일찍 밭으로 출근해서 이 벌레들을 잡아야 하는데,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참 힘든 일이었다. 


올해는 다른 일들 때문에 더 게을렀다. 역시 잠을 이기지 못하고 9~10시쯤이 되어서야 (그것도 차를 끌고) 밭에 나갈 수 있었는데, 올해는 왠지 감자잎이 공격도 안 받고 잘 자라준다 싶었다. 

처음으로 흰 감자꽃이 고개를 내민 순간에는 온갖 감자요리를 상상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심지어 '이 감자들을 다 못 먹으면 어쩌지? 주변인들한테 나눠주고 한데 모여 감자 파티를 해볼까?' 하는 황홀한 상상도 해보았다. 

며칠 후 가본 밭에서는 흰 꽃이 활짝 피지도 못한 채 똑하고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작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모든 열매/뿌리 작물들에는 비료가 필요하다는 동료 농부의 조언을 듣고서는 오줌액비를 물에 타서 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의 꽃은 피지 않았고, 감자줄기도 성장을 멈추었다.


쎄한 기분이 들었다. 감자꽃이 피면 따주고 난 후, 줄기가 힘없이 쓰러지면 그때가 감자를 수확할 시기라고 하는데, 내 감자는 한 달 내내 그대로다. 나름 올해는 가뭄도 별로 없었고, 물도 충분히 준 것 같은데도 쑥쑥 자라는 모습이 없으니 내심 아쉬웠다. 그래도 나야 자급농부라 덜한데, 농사로 먹고사는 농부들은 오죽할까.


하지가 지나고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이다. 더 이상 자랄 기미도 없으니 그냥 캐야겠다. 그마저도 조금 늦어서 이슬비가 포슬포슬 내리는 날 감자를 캐었다. 그나마 좀 크다 싶은 감자는 한 줄기당 한두 개 정도, 나머지는 모두 알감자이다.

에게게. 또 실패네. 그날은 알감자를 모아 조림을 만들었다. 


퇴사 후 이런저런 생태적인 삶을 위한 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한 후, 내 삶은 실패로 가득 차고 있다. 

큰 포부로 시작했던 농사는 작년 봄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 넣고 난 후 장마 때 불어난 잡초의 공격에 헉하고 놀라 백기를 들어버렸다. 가을농사는 제쳐두고 좀 쉽게 가보자며 겨울에 양파와 마늘만 잔뜩 심었다. 비료도 안 주고 구경만 했더니 양파도 마늘도 쬐끄맣다. 덕분에 올해는 내버려 둬도 잘 자라는 잎채소와 먹을 수 있는 잡초들만 실컷 먹고 있다. (예컨대 쑥이나 미나리, 깻잎, 개망초, 부추 등등) 

자연히 기후위기에 식량난이 온다면 어떻게 생존하면 될지 연습하는 기분이랄까.


작업실에서 공간대여를 해보겠다고 올렸는데 생각보다 더 예약이 들어오지 않는다. 자본금이 없이 시작한 일이다 보니 광고비를 쓰지도 않았고, 순전히 인스타그램으로만 홍보를 시작했다. 역시 맨 땅에 헤딩이었다. 내가 꿈꾸는 공간에 대한 방향성이 뚜렷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광고로 공간 예약만 엄청나게 늘리고 싶지도 않았다. 

공간에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비건 포틀럭 파티를 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어쩌면 두세 번씩 이 파티를 이어나가고 싶었다. 사람들이 좋아요는 누르지만 막상 신청자가 많지 않다. 한 명밖에 신청이 안 들어와서 취소가 되면 더 미안하고 속상했다. 꼭 다음에 신청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두 명이 신청하면 남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했다. 세 명이 신청해주었을 때는 화기애애했고, 네 명이 신청해주었을 때는 무척 기뻤다. 

의정부에서 만났던 분이 자기도 의정부 비건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고 싶지만 정말 쉽지 않다며,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리는 비건 포틀럭 파티를 보고 멋지다고 해주었다. 

한국같은 비건 불모지에서 별다른 인맥도 없이 비건 포틀럭 파티를 열었으면서, 나는 취소되었던 파티만 생각하며 초조해했던 것이었다. 다섯 번에 걸친 파티에 와주었던 분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인간관계에 서툰 나의 파티에 와주었고, 즐거워해 주었고, 고마운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글쓰기 워크샵을 듣고 난 후에는 글쓰기에 재미가 붙었다. 수능언어 4등급에 문학적인 소양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나도 한 편의 완성도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니 신이 났다. 나를 되돌아보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가 글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이 SNS를 통해 쉽게 인플루언서가 되고, 누구나 개인방송을 열 수 있는 시대에, 나의 목소리를 전할 나만의 SNS는 브런치였다. 그래, 글을 꾸준히 써보자. 꾸준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에 글방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웬걸 글 한 편 써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장편소설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 경험들과 생각을 정리하는 일기장처럼 시작했었는데 그조차도 쉽지 않다. 분명 하고싶은 말과 써보고 싶은 생각들은 많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이 비를 만들어 내 옷자락에 흔적을 남기는 것만큼 글쓰기라는 것엔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브런치 작가로 세웠던 작은 목표마저 때때로 무너지고, 에너지를 끌어모아 또다시 목표를 세우기를 반복한다.


실패란 무엇일까. 나는 실패를 좋아한다. 실패의 경험들이 없다면 성공이라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연속적 실패는 나를 때때로 의기소침하게 하다가도 오기를 품고 또 일어나게 하는 노지잡초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작은 일상적 실패와 끝내 성공시키는 끈기는 후에 큰 시련이 다가와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것이다. 


SNS에서 지나가는 글로 보았던 연예인 조혜련과 강호동의 대화가 머릿속에 강렬히 각인되었다. 


강 : 인생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지?

조 : 그치, 성공과 실패가 있지.

강 : 아니다, 인생에는 성공과 과정만 있는거다!


그래, 실패를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중간에 끝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 원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두 번째에는 더 잘 할 수 있고, 세 번째에는 그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면 나는 실패만 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릿느릿 조금씩 걸어 올라온 계단을 뒤돌아보면 아마 이보다 더 값진 실패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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