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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Dec 06. 2023

쓸모없음의 가치

책 <무명의 감정들> - 쑥

책 <무명의 감정들>



세상을 살아내다 힘들고 지칠 때, 꺼내어보고 싶은 문장들이 있다. 자꾸만 흔들리게 하는 현실에 내가 뻗어낸 가지들이 부러질 때,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이 있다.


눈을 사로잡지 않는 담백한 그림과 문체로 그 무엇보다 깊게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이 책은 답하고 있었다.


<무명의 감정들>은 주인공 무명이라는 캐릭터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없을 무(無)'는 가능성을 담은 글자이기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다고 한다. 무명이는 작가 자신이면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각자의 상황 속에서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각자의 쌍둥이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나 혼자 방황하는 것이 아님을, 이 사회에 던져진 모두가 자기만의 생을 일구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상기시키게 된다. SNS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남들과 비교하게 되고, 실제로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놓치지 않는 상황을 보았을 때, 단순히 의지가 약한 사람들을 내몰아치는 사회 또한 문제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많은 자살들은 가려진다. 주목받지 못한다. 사회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개인들의 다양한 취향과 선택을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단순히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자식들이 방 안에서 무언가에 열중해서 보내는 시간을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혹은 무시당한 경험이 있지는 않은가. 


시험 기간에 유독 어떤 소설책에 꽂힌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재밌어서 자꾸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 엄마에게 혹은 선생님에게 들킬까봐 교과서 뒤에 숨겨놓고 읽다가 누가 들어오면 급히 교과서를 펼치곤 했다. 그 기억이 뇌리에 깊게 박힌 것은, 내가 책을 읽는 게 왜 부끄럽고 숨겨야 할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크게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치원생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술학원을 계속 다녔다. 결국 대학교도 그림을 그려서 가는 디자인과를 택했는데, 입시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모든 그림에 진저리를 느꼈다. 입시 미술 학원에서는 그림에 공식을 가르친다. 각자에게 특정 구도를 외우게 하고, 어떤 색을 써야 눈에 띄고, 밀도를 얼마나 높여야 하는지 등, 여타 입시 과목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주 5일, 6일, 8시간, 12시간씩 미술학원에 가서 반복된 그림을 그리고, 심지어 시간 내에 그려내지 못하면 큰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아야 했다. 나는 내 그림이 아니라 대학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끔찍한 기억은 나를 그림에서 멀어지게 했다. 




책 <무명의 감정들>


쓸모를 자꾸만 증명해야 하는 사회라고 한다. 쓸모가 없는 일에 기준을 정하는 기업과 사회는 개인을 궁지로 내몬다. 쓸모없는 일, 쓸모없는 물건, 쓸모없는 감정, 쓸모없는 사람, 쓸모없는...


내가 쓸모가 없어질 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혹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쓸모가 없어질 때 돌볼 수 있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한다. 내가 어떤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고 침대에만 누워있을 때 옆에 오래 남아줄 사람이 있을까? 


쓸모없는 것에도 우리는 충분히 가치를 매기고 돌봐줄 수 있다. 

쓸모없다고 남들이 외치는 것에 나는 쓸모를 찾아줄 수 있다. 

나의 날 것의 모습을, 우울해하고 슬퍼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나는 사랑할 수 있다. 

사회에서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을 나만이 보듬어줄 수 있다.


진짜 나답게 살 수 있는 삶을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 않은 삶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다운 삶은 뭘까? 남의 기준에 의한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 애쓰는 게 아니라, 내가 열중할 수 있는 것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삶. 아파트, 외제차, 명품백 같은 남들이 평가하는 나의 허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 더불어 그런 것을 해도 타인에게 "그거 돈이 돼?" 이런 무례한 질문을 받지 않는 삶. 그런 질문에 흔들리지 않는 삶. 


이제는 좋아하는 일에 애쓰며 살자. 별로인 일에 애쓰기엔 생이 너무 짧지 않은가.




*<무명의 감정들>을 읽고 생긴 공감과 파생된 생각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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