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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Jan 18. 2024

단식 열세 번째 날

취향에서 가치로, 유형에서 무형으로

나를 설명하고 규정하는 것들은 ‘취향’이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같은 취향의 사람들과는 말이 빨리 트고 친해지기 쉽다.


"여행을 좋아하고, 화덕 피자를 좋아해요."

"운동을 좋아해서 매일 헬스장에 가요."

"재즈 음악을 좋아해요."

"구제 쇼핑몰을 좋아해요."


특별한 취향을 탐닉하는 사람들을 볼 때 재미있다. 나 또한 취향이 있다.


빈티지 가구나 옷을 좋아한다. 자연 소재로 만든 수공예품에 관심이 있다. 꽃무늬와 풀잎 무늬를 좋아한다. 차분한 늦가을의 색을 좋아한다. 도서관의 쿰쿰한 오래된 책 냄새를 좋아한다. 편백나무의 피톤치드 향을 좋아한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발자국 찍기를 좋아한다. 멋진 일러스트나 사진엽서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숲 속에서 하늘을 향해 귀를 기울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파도 소리를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사람들과 눈길이 오래 마주치는 시골 마을을 구경하길 좋아한다. 동물들을 좋아한다.


어느 날부턴가, 이 취향들에는 비슷비슷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살고 싶은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가구와 공간은 그를 사용한 사람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있다. 그 이야기는 세월과 버무려져 그 무엇도 따라 할 수 없는 멋을 만들어낸다. 공장에서 저렴하게 찍어낸 물건과는 다르다. 단단하고 섬세하다. 오래 쓸수록 진가가 발휘된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돌과 나무 등의 재료를 취했다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아끼고 또 아껴서 자연이 준 선물에 세월의 멋을 새기겠노라 약속해야 한다. 이렇게 사소한 많은 취향들은 내가 원하는 삶의 가치가 녹아 드러난 것이었다.


반복적인 소비로 나를 채워주는 행복은 이제 그만두었다. 옷이나 예쁜 인테리어 소품, 모든 게 그때뿐이었다. 불필요한 것들을 상쇄하니 가치와 연결되는 취향만 남았다. 자연스레 만나는 사람도 다양해졌다. 과거의 나였다면 만났을 수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가치로 이어진 관계에는 신뢰가 쌓였다. 이제는 취향보다는 가치를 지향하고, 유형의 그것보다는 무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었다.


단식은 거기서 내 삶을 한 단계 더 바꾸어 놓았다.


그저 채식을 넘어 자연식물식, 그리고 노푸를 언젠가 해보고 싶었으나 딱히 계기가 없었다. 많은 소비를 줄였음에도 3n년 동안 살아온 틀을 완전히 깨버리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단식기간 동안 피부로 느끼는 변화를 선명하게 뚜렷하게 감각하고 나니 그제야 이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가공된 영양제, 어떤 어떤 효능이 담겨 있다는 화장품 등에 의존하지 않고, 음식 본연의 맛과 영양이 바꾸는 내 몸을 알아차리고, 내 몸 스스로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능력을 끌어내보는 경험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히 물건의 많고 적음으로 가름되는 것이 아니었다. 삶의 본질적인 것들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바뀌는 삶에 대한 태도였다. 뿌연 안개를 손으로 잡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삶의 정수를 똑똑히 마주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 때때로 나오는 흉흉한 뉴스와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이는 정부, 암울한 미래만을 얘기하는 학자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쟁하고, 따라하고, 비교하며 내 못난 삶을 비관한다.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집착한다.


그럴 때일수록 외부의 것들에 의존하는 삶은 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다. 비싼 차와 명품가방은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들이 아니다. 주식과 비트코인은 나의 불안을 해소해주지 않는다. 30대 부부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2-30평대 수도권 아파트는 내 미래를 풍요롭게 하지 않는다.


나를 가치 있게 하는 것들은 내 안에 있다. 내 삶을 온전히 나에게 두는 것. 그것이 흔들리는 사회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단식 일정의 마지막 날. 늦잠 자고 싶은 일요일이다. 옆에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레 침대에서 나왔다. 어제와 별 다를 것 없는 아침이지만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었다.


단식 과정이 끝나는 날이라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내일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식사를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끝이지만 시작인 것 같은 기분. 이런 식습관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몸은 국수랑 빵을 부르고 있지만 머리는 왠지 그런 것을 덜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리를 더 부지런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단식 13일 차, 보식 7일 차 아침


양이 늘어나니 점점 다른 음식들이 생각난다. 그간 너무나도 먹고 싶었던 사과와 빵(밀가루)을 꺼냈다. 밀가루는 한 달 동안 피해보라고 했지만, 그나마 동물성 재료 없이 통밀가루와 원당으로 만들어서 건강한 당근케익이라 죄책감이 덜하다. 통곡물은 몸에 좋으니까... 스스로 위안을 삼기 좋다. 오래 참았다가 먹으니 더 맛있다. 맛있으면서 자극적이다. 안 먹던 당이 들어가니 유독 달게 느껴진다. 한 조각 그 이상은 못 먹겠다.


참고 또 참았던 당근케익을 먹는 순간


점심도 또 같은 반찬,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월남쌈을 준비했다. 아삭한 채소를 감싸는 라이스페이퍼의 쫀득함은 거부할 수 없다. 좀 귀찮을 뿐, 월남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특히 남편이 많이 좋아해 줘서 다행이다 싶다. 채소의 다채로운 맛을 공감해주는 남편이라 고맙다.


단식 13일 차, 보식 7일 차 점심


저녁은 같은 반찬에 남편은 팥칼국수를 끓였다. 조금 뺏어먹을 거라 양을 더했다. 회복식 기간 동안 위장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서 오늘은 타협을 많이 해버렸다. 그래도 조금씩은 먹는 연습을 해야 한꺼번에 먹어도 탈이 나지 않겠지, 또 스스로를 위로한다.

앞으로 국수랑 빵 없이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래서 먹었다.

회복식 마지막 기간은 내가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식단을 실험해보는 기간에 가까웠다. 자연식 식당까진 못 하더라도 시골에서 숙박을 운영한다면, 자연식으로 맛있는 아침, 저녁을 차려줄 수 있는 단계에 이르고 싶다. 단식 기간 동안 요리에 대한 의지를 더 다지고 말았다. 마침 사찰식 장 담그기 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에 급히 신청해버렸다. 사찰음식 고급 과정과 자격증 시험도 봐야 하나 고민한 순간이었다.


요리는 다른 기술에 비해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 가지 식재료의 영양 성분과 궁합, 시대가 지날수록 발전하는 영양학, 제철 식재료에 대한 이해까지 통달하려면 대대로 내려온 조상들의 지혜도 필요하다. 무궁무진해서 재밌다. 배우면 배울수록 가공을 줄이고, 자연 그대로가 가장 좋다는 것이 느껴진다. 삶의 본질. 미니멀 라이프가 요리에도 적용되는 순간이다.


단식 13일 차, 보식 7일 차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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