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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Jan 14. 2024

단식 열두 번째 날

노푸(No-poo)를 시작했다

단식 기간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이 뭐냐 묻는다면, 피부가 정말 좋아진 것이다. 단식을 하기 전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더욱 좋았다.


전단식이 끝나고 본단식을 시작한 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물로만 머리와 몸을 씻으세요. 정 불편하면 천연재료로 만든 비누를 사용해 보세요."

하루만 머리를 안 감아도 가려움증에 비듬이 심해지는 나에게는 과연 가능할까, 의심 반 걱정 반인 도전이었다. 이 걱정은 본단식 이틀 째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새 머리가 가렵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두피 고민은 약 2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비누를 방부제 없이 천연 재료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이 비누 저 비누 전전해보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식초로 머리 감기까지 도전했는데도 나아지지 않던 가려움증이었다. 다시 체념하고 화학성분이 들어간 비듬샴푸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던 타이밍에, 단식으로 이 고질적인 가려움증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싹 사라진 것이었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덩달아 피부까지 맨들맨들 부들부들. 계속 만지고 싶게 좋아져 버렸다. 정말 몸이 아기로 돌아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아기들에게 쓰는 샴푸나 비누, 로션은 성분표와 후기를 꼼꼼히 확인하고 구매를 한다. 하지만 정작 노화가 진행되는 성인의 나는 화장품을 구매할 때 향기로운 것, 혹은 광고되는 효능만 보다 보니 결국 자극적이고 화학물질이 많이 들어간 화장품들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기에 따라 화장품을 쓰면 쓸수록 여드름이 더 난다거나, 더 건조해져서 더 센 성분, 더 비싼 화장품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악순환을 끊고자 순한 비누와 순한 로션을 찾아서 어느 정도 정착하고 있었고, 겨울철 건조함과 가끔 나는 여드름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단식 여섯째 날에 사우나를 가서 매끈해진 내 정강이와 발 뒤꿈치를 계속 만지며 생각했다. 단식은 진짜 배고프고 힘든데, 이걸 봐서라도 매년 하고 싶다고. 단식 기간이 끝나도 이런 피부를 유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단톡방을 열어보니 단식 기간에 물샴푸, 물샤워의 효과를 본 사람들이 경험을 공유해 주기 시작했다.


"재작년 단식하면서부터 물로만 머리 감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어요. 헤어 오일을 바르지 않고는 밖에 못 나갈 정도로 푸석한 머리였는데 지금은 바르지 않아도 머릿결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전 한 3년 전부터 물로만 감는데 샴푸나 비누 쓰지 않아도 머릿결에 아무런 문제없습니다."

"저도 몸은 거의 물샤워만 하는 편인데... 겨울이면 각질 때문에 바디로션을 발라야 했는데 요즘은 안 발라도 각질이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저는 손, 발, 얼굴 빼곤 비누 없이 씻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전신 천연 비누하는데 이번 단식 이후론 그것도 줄여볼까 합니다."


노푸(No-poo)는 샴푸를 쓰지 않는 것을 칭하는 영어 단어이다. 노푸를 검색해 보니, 주로 탈모의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올라온 경험담이 많았다. 노푸를 '잘' 하면 머리카락에 힘이 생기고 빠지는 머리가 점점 줄어든다고. 두피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성공담과 실패담도 많았다.


시중에 파는 샴푸로 두피의 피지를 완전히 걷어내고 나면 두피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된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기에 두피에 피지를 더 많이 분비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또 샴푸로 머리를 감아야 하고 또 피지가 분비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노푸의 목적은 두피를 완전히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따뜻한 물로 손가락으로 꼼꼼히 두피를 마사지해주면서 노폐물을 걷어내고, 나무빗으로 빗질을 하며 채 빠져나가지 못한 노폐물을 마저 걷어내면 된다. 오히려 샴푸할 때보다 더 꼼꼼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


노푸에 적응하려면 한 달에서 길게는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단식 기간은 몸속 노폐물을 깨끗하게 배출해 내고, 몸의 감각과 면역력, 회복 능력을 키워주는 데에 집중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얼굴과 몸도 마찬가지이다. 정강이와 발뒤꿈치에 더 이상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지 않았다. 볼살이 부드러워져서 하루종일 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샤워 후 유독 건조한 느낌이 드는 부분 위주로 허브연고를 발라주었다. 오히려 이 피부만큼은 꼭 지켜내고 싶어 더 꼼꼼히 연고를 발라주는 것 같다.


밭장터에서 산 허브연고와 유기농 소금치약(왼쪽), 눈에 띄게 매끈해진 발뒤꿈치(오른쪽)

앞으로 최소 한 달은 튀김과 인스턴트를 끊고 자연식물식을 하며 물샴푸, 물샤워를 해보기로 다짐했다. 효과가 있다면 이는 자연히 습관이 되고 내 삶이 되지 않을까.





단식 12일 차, 보식 6일 차 아침. 주말이지만 꿋꿋이 일어나서 아침을 차렸다.

아침은 밥 3/5 공기, 된장국, 당근콜라비배추 초절임, 생배추와 된장, 딸기.

채소를 밥 양의 3배 정도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왕이면 생채식 위주로. 겨울의 배추를 좋아하니 배춧잎을 뜯어서 아삭아삭 씹어먹었다. 보통 아침은 졸린 눈을 비비며 간단하게 챙겨 먹는 편인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아침을 차려 먹으니 하루의 시작이 개운하다.


단식 열두 번째 날, 보식 6일 차 아침


점심때 결혼식장에 가야 해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육식과 기름진 음식이 대부분인 결혼식장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보통 샐러드와 밥은 있으니 그 정도만 먹을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뷔페에 갔는데, 생각보다 먹을 게 꽤 보였다.

점심으로 가져온 것은 호박죽, 영양찰밥과 유부초밥, 샐러드, 방울토마토, 브로콜리, 파프리카, 삶은 콩, 참나물, 사과인삼샐러드.

오히려 혼자 챙겨 먹을 때보다 다양한 식재료를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인삼 뿌리는 알싸한 맛이 매우 강했다. 두꺼운 뿌리를 먹을 때 매운맛이 심해서 눈가가 찌푸려질 정도였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전혀 매운맛이 없다고 한다. 어제 마늘장아찌를 먹을 때와 비슷했다. 매운맛에 적응하는 게 가장 오래 걸린다더니 사실이었다. 가끔 당기는 얼큰한 찌개와 겉절이는 언제쯤 먹을 수 있을까...


단식 열두 번째 날, 보식 6일 차 점심


저녁은 밥 3/5 공기, 무조림, 당근콜라비배추 초절임, 시금치나물 약간, 월남쌈.

항상 먹는 것에 변주를 주고자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월남쌈을 준비했다. 버섯만 볶고, 나머지는 생채소 그대로 넣으면 되니 간편하고 맛도 있는 별식이다. 볶은 요리는 아직이라고 했지만, 간장에 조린 버섯의 향을 참을 수 없어 조금만 넣고 쌈을 쌌다. 시금치나물에도 들기름이 들어갔지만 살짝 먹어보았다. 조금씩 먹어서 그런지 위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다행이다. 이제 점점 기름진 것도 먹을 수 있겠구나.


기름을 못 쓰니 요리에 한계가 참 많았는데 이제는 조금 더 다채로운 반찬을 먹을 수 있겠다. 하지만 기름진 음식이 식단의 20%가 넘지 않도록 조절해 봐야지.


단식 열두 번째 날, 보식 6일 차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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