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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Jan 10. 2024

단식 아홉째 날

밥 먹는 시간에 집중하기, 의식의 확장

"내 몸을 아기라고 생각하고 100번씩 씹어서 드세요."


회복식 첫날, 소란 선생님이 건넨 주의를 이틀 만에 잊어버렸다. 미음부터 소금 넣은 쌀죽, 물김치국물, 된장국물까지 천천히 먹기 시작하니 먹고 싶은 온갖 것들이 생각난다. 이건 내일 먹을 수 있나? 저건 언제 먹을 수 있나? 거리의 모든 음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단식 9일 차, 보식 3일 차 아침


오늘은 회복식 셋째 날이다. 아침은 된죽 반 공기, 물김치국물, 된장국.

된장국에 건더기를 넣어도 된다. 시래기와 양파를 건져 담았다. 습관처럼 삼켜버리지 않도록 오랫동안 입 안에서 굴리며 씹는다. 시래기가 이토록 질길 수가 있나. 보통은 적당히 씹고 삼켜버리는 게 보통이다. 위액이 알아서 분해해 주겠지 하며. 그러나 위가 약해진 상태인 지금은 10번, 20번 이상 잘근잘근 씹은 후 위에게 넘겨주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


오후 일정이 애매한 시간이라 금방 이른 점심을 먹게 되었다.

어제 남편이 삶아준 팥을 넣고 팥죽을 끓였다. 선생님이 수요일부터 야채 넣어도 된다고 했는데, 그게 된장국을 말한 건지, 죽을 말한 건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그냥 먹고 싶으니까 넣어버렸다. 어제 삶은 팥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느낀 달고 고소한 맛이 잊히지 않는다.


단식 9일 차, 보식 3일 차 점심과 저녁


점심과 저녁은 팥죽 3/5 공기, 물김치, 된장국.

건더기가 들어가니 점점 일상적인 식사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더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밥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조금만 과하다 싶으면 속이 쓰리기 전의 쎄한 느낌이 어김없이 온다. 힘들게 단식했는데, 욕심내서 몸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자제시킨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똑같나 보다. 단식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단톡방이 오늘은 시끌벅적하다.


'많이 씹은 것 같은데, 체한 것 같아요.'

'굶을 땐 괜찮았는데 물김치를 먹기 시작하니, 4시간만 지나도 배가 엄청 고프네요.'

'저도 오히려 굶을 땐 몰랐는데, 먹기 시작하니 간식이 당기네요.'

등등...


단식 때 고요했던 마음이 단 며칠 만에 소란스러워졌다.




우리는 참 산만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텔레비전과 각종 미디어, SNS의 등장으로 점점 더 우리는 집중력을 잃어간다. 나는 작업을 하다가도 잠깐 기다려야 할 타이밍이 오면 다른 인터넷 창을 켜고 무언가를 검색하거나 유튜브를 본다. 활성화되어있는 인터넷 창이 항상 대여섯 개다. 하나를 끝마치지 않고 다른 것이 생각나면 그것을 또 찾아보고, 또 쉬고 싶으면 다른 창을 켜고, 맥북을 덮어도 꺼지지 않으니 항상 그 상태이다. 이러다가도 어느 순간 문제를 자각하고 모두 꺼버린다. 그러니 밥을 먹을 때에도 무언가를 본다거나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을 때는 핸드폰 게임을 한다.


멀티태스킹(multi tasking)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능력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작업 전환(task switching)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멀티태스킹이 반복되면 뇌가 피로를 느끼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멀티태스킹이 뇌를 손상한다는 논문도 발표되었다. 연구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을 하는 참가자들이 인지 통제 작업에서 더 나쁜 결과를 내고, 더 많은 사회적 또는 정서적 어려움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일을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는 멀티태스킹에 적응이 되어버려선지, 퇴사를 하고서도 더 많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고 싶어 했다. 그것이 더 유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점점 떨어지는 집중력도 느껴졌다. 한 권의 책을 진득하게 읽는다던지, 운전할 땐 운전에만 집중한다던지. 글을 쓰다가도 힘들면 '내일 이어서 쓰지, 뭐.' 하며 덮어버린다. '몰입'하는 경험을 통한 쾌감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이 사라졌다.


글을 쓸 때면 나의 의식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아니 집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사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까지 그 주제에 대해 상상하고 몰입하는 예열 시간이 필요하다. 에너자이저를 쏘기 위해 기를 모으는 시간이다. 그렇게 몰입하여 글을 쓰고 나면 그 주제에서 헤어 나오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슬픈 내용의 글을 썼다면 한동안 슬픈 감정이 내 곁에 머문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쓰고 싶은 주제는 많은데, 글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집중력이 떨어진 삶이 그 원인인 것 같았다. 산만함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컨텐츠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것이 참 어려웠다.


지나고 보니, 본단식 기간은 온전히 내 몸에 몰입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힘이 없으니 다른 약속을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몸이 변하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머릿결, 피부, 치아, 위와 장, 정신 상태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또 배는 고프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된다'는 단순한 규칙을 따르니,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쉬웠다.


후단식 3일 차인 지금,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니, 온 세상 먹거리가 가능성으로 보인다. 내일은 뭐 먹지? 모레는 뭐 먹지? 주말에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도시락을 싸가야 하나? 무슨 음식을 만들지? 다시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 때도 시간을 본다거나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 때 집중을 하지 않으면 빨리 먹게 되고, 덜 씹고 넘기게 된다. 점심때 그러고 나서 후회했다. 밥을 먹는 행위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평소 습관처럼 폰을 봐버리다니.


단식이 집중력을 올려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정신이 맑아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그것이 집중력을 높이는 것인 줄은 몰랐다.


내 몸에 집중하는 시간. 이런 시간을 일상에서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가.

본단식 때 아침저녁으로 명상을 하라고 했는데 하지 않았던 내가 기억났다. 단식도 힘든데 명상까지?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얼마나 더 집중해 보느냐에 따라 나의 의식이 얼마나 깊게 확장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가장 탐구해보고 싶었던 영성**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요가 치료사이자 미국 포트 타운센드에서 마드나 마인드보디 인스티튜트Madrona MindBody Institute 를 공동 운영하는 르네 클라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마음 챙김이란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먹을 때 먹고, 걸을 때 걷고, 앉을 때 앉는 것‘이다. 서구 문화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에 대체로 능숙하지 못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일에 오롯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면 결국 무엇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  

'뉴필로소퍼 vol.23', p.136






*자료출처 : The Universal Info (https://uinfo.kr/%EB%A9%80%ED%8B%B0%ED%83%9C%EC%8A%A4%ED%82%B9-%EB%87%8C%EC%86%90%EC%83%81-%EC%B9%98%EB%A7%A4-%EC%9C%A0%EB%B0%9C/)


**울프(Wolf, 1996)는 영성을 “인간의 보이지 않는 정수로서 인간 육체에 생기를 주며 지성, 상상력, 감정, 요구, 의지를 포함하는 능력들 중의 하나”로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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