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0원으로 사는 삶>
'아, 아름답다..'
어떤 책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책 '0원으로 사는 삶'을 읽으며 작가의 긴 경험에 굉장히 몰입하고, 공감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나에겐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읽혔다.
'0원으로 사는 삶'은 작가가 영국에서 살던 시절, 직장에서 해고되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며 시작되었다. 월 150만 원씩 나가는 월세와 높은 물가는 적당한 일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저 숨만 쉬면서 살겠다는데 돈이 없으면 그것마저 안 되느냔 질문에, 단순 명료한 답이 떠올랐다.
돈을 쓰지 않으면 되잖아!
단순하지만 큰 결심을 하고 나니 작가에게는 길이 열렸다. 숙식과 노동력을 교환하는 우프(WWOOF)를 통해 여행을 하는가 하면, 0원 살이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자전거집 사장에게 무료로 자전거를 지원받았다. 자전거로 느린 여행을 다니며 우프 농가들을 여행했고, 숙소와 문화, 경험을 교류하는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을 이용해서 여행을 하기도 했다. 독자로써 재밌는 점은 이런 색다른 여행의 방식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뚜렷한 가치관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었다.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뭐라고 생각해요? 행복을 조건 짓는 가장 강력한 욕구 말이에요."
갑자기 던진 나의 질문에 프란은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말했다.
"사랑받는 것(To be loved)."
<0원으로 사는 삶> p.36 중
시골에서 상당 부분 자급자족하는 우프 농가에서 작가는 지루함을 느꼈다. 가까운 시내에 나가도 화려한 쇼핑몰이랄 것도 없고, 제철 음식으로만 요리를 하니 당장 먹고 싶다고 해서 먹을 수도 없는 게 많았다. 점점 불만이 쌓여가지만 주위 다른 우퍼들이나 호스트는 그런 생활에 전혀 불편함 없이 만족해하는 것을 보고 작가는 궁금증이 일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호스트 프란에게 행복에 대해 물었다. '사랑받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그의 대답은 작가를 놀라게 하고도 충분했다.
사실 우리가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은 다수에게서 인정받는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으로 돈이 최우선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이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가정에서 '커서 돈 많이 벌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어왔고, 부모가 원하는 자녀의 직업은 돈 많이 버는 직업이다. 예전에는 '사'자 들어간 직업을 부모가 좋아했다면, 요즘은 건물주를 좋아한다. (필자는 실제 어떤 돌잔치 자리의 돌잡이 행사에서 건물주를 상징하는 건물 모형이 등장한 것을 보고 속으로 경악한 적이 있었다.) 의사, 판사,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의미 있는 일로 존경을 받을 수도 있지만, 대체 건물주가 하는 일과 사회에 전하는 가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2021년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수행한 '삶에서 우선하는 가치 순위' 설문조사에서 그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총 17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 결과에서 대한민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가 1순위를 차지한 것이다. 반면 대다수 국가들의 국민들은 가족이나 직업 등을 우선시했다. (아래 표 참고)
그러나 나의 조건을 보고 온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나의 내면을 보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부적인 조건이 사라지면 금방 사라진다. 지속적일 수 없다. 또한 물질을 추구하는 욕망은 쌓아도 쌓아도 충족되지 못하고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부를 추구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공공의 선을 저버리더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찾게 된다. 그런 관계맺음이 과연 우리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0원으로 사는 삶'은 결국 우리가 삶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살았던 삶이 답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무언가 뒤틀린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와 우리 스스로에게 제동을 건다.
미친 속도로 성장과 발전만을 이야기하는 사회이다. 성찰과 사유와 건강한 토론은 뒷전이다.
구성원들이 지치든 말든 그저 계속 앞만 보고 달리기만을 요구하는 이 흐름에서 작가는 외친다.
'잠깐 멈춰봐!'
귀를 기울인다면 들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관성에, 흐름에 휩쓸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