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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Jan 25. 2022

잃은 게 아니라 잊어버린 나

나를 찾는 사람의 기억법

 왜 사람들은 나를 '찾는다'라고 말할까. 애초에 있었던 것을 잃어버리기라도 했다는 걸까?


 잃어버렸다는 것을 안다는 건 자신이 원래 잃어버린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나의 어딘가에 나라는 존재에 대한 본연의 기억이 있지 않다면, 나의 생애를 다 바쳐서라도 자기 자신을 이토록 찾고자 하는 갈구함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잊은 게 아닐까.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다는 생경한 느낌을 찾기 위한 삶의 끝없는 숱한 시도들은 자신을 잊은 자의 자기를 기억하기 위한 그 무엇은 아닐까.



 우리는 체험의 영역에서 사는 존재들이다. 하나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개념이 필요하다. 따듯함을 알기 위해서는 차가움이란 감각을 알아야 하며, 슬픔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기쁨을 경험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상대성의 세계이다.


 반대되는 속성의 존재는 존재함의 필수조건이다.  


 나는 나라는 존재를 이미 체험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왜 나는 내가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왜 이토록 그리운걸까...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해 알고자 했다. 나라는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고자 했다. 더 나아가서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 내가 체험하고 있는 이런 경험들은 무엇이고 어떤 상대성에 입각한 경험들인지 무척이나 알고 싶었다.  



불안은 평온함의 상태를,

두려움은 사랑의 감정을,

결핍과 빈곤은 풍요와 부유를,

슬픔과 불행은 행복을,

외로움은 진정한 충만함이란 무엇인가를,

소란함은 차분함을,

없음은 있음을...

있음은 없음을 비춰주었다.



나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의 반영일까.



 체험해버린 경험과 감정들은 나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그 슬픔과 고통, 그리고 행복까지도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하기 위해서, 내가 그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 경험들에 수반되는 감정들은 지리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그 너머를 보라고... 그게 다가 아니라고... 나의 영혼의 절규였을까.


 그 모든 것들이 나였다. 그 모든 것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 너머에 있는 메시지들은 나의 잃어버린, 아니 잊어버린 기억들을 다시 기억나게 해 줄 하나의 점이 되고, 하나의 퍼즐 조각이 되어 주고 있었다.


 온 세상이 나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음의 고요함에 귀를 기울여본다.


 표면 너머에서 조용히 말하고 있는 무언가의 반영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고요함을 제6의 감각기관으로서 내 안에 뿌리내리기 위해 다섯 가지의 감각을 단련한다.


 나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잊어버린 나를 찾는 기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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