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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Jan 24. 2022

엄마라는 뚜껑은 함부로 열 수가 없다

형사가 되고 싶었던 핑크여사

 그녀는 나의 삶에 트라우마와 같은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특히나 그녀는 나의 아픈 기억 한중간, 비극의 여주인공이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보자면, 난 그저 그녀의 고통스러운 삶이라는 영화의 조연 배우같이 느껴진달까.


 그녀를 헤아려본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기억으로 인해 내가 여태껏 괴로워했다지만, 그녀는 그 아픔을 물리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남편에게 맞는 모습을 어린것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비참함을 직접 겪는 당사자였다.


 그리고 내가 짐작하는 바로는 아빠는 엄마의 첫사랑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참 착하고 다정했다고 했다. 참 착하고 다정했던 그는 어디로 간 걸까...


 우리 엄마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점철된 경상도 어느 촌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아들은 잘 키워서 성공시켜야 하는 귀한 자식, 딸은 일꾼이자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살림 밑천 같은 집안의 자산. 첫째 딸도 둘째 딸도 셋째 딸도 모두 살림 밑천 같은 노릇을 해내야 했다.


 이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딸들은 그렇게 학교에 가고 싶었다고 했다. 농사일이 바쁠 때면 학교는 당연히 갈 수가 없었고, 국민학교 졸업도 겨우 했단다. 첫째 이모는 국민학교 졸업도 못했다고 했던 거 같고... 우리 엄마도 겨우 졸업을 했다고 했다. 수학여행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최종학력이 초졸이다. 우리 엄마는 교복이 너무나 입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삶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는 자식 모두를 대학 졸업까지 시켰다.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 엄마는 세상 행복하다고 했다.




 17살 때였다고 했던가, 산업화의 물결을 따라서 엄마는 서울의 공장으로 취직을 했다. 가발공장에서 일하는 공순이가 되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혼자서 책임지기 시작했던 17살의 소녀는 아이들을 다 키워내고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다.


 딱 내 나이때였다. 엄마가 혼자서 어린 자매를 키웠던 나이가. 낮에는 우리를 돌봐야 했던 엄마는 우리에게 저녁을 차려주고는 야간에 식당 일을 하며 우리를 홀로 키워냈다. 힘겨운 삶에 지쳐 혼자 문 앞에서 울고 있는 엄마에게 나는 휴지를 뜯어서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곤 했었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안고 조금 더 울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내게 원래부터 엄마였다. 나는 내내 엄마를 엄마가 아닌 다른 존재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엄마'라는 딱지를 떼어놓고 엄마를 바라보지 못했다.


 한 인간의 삶으로서, 한 여인의 삶으로서 엄마를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내가 너무 늦었구나 하는 미안함 그리고 죄책감과 같은 감정들이 내 가슴에 똬리를 트는 것만 같았다.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사실 나는 괴롭고 고통스럽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그 시절을 버텨냈을까...



"내 강아지, 내 강아지... 예쁜 내 강아지"



 엄마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마치 새끼 강아지라도 된냥 엄마 품으로 파고들곤 했었다. 나도 어느새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고 어린아이를 키워보고 나서야, 엄마가 내게 말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들이 내 가슴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내 강아지, 내 강아지... 예쁜 내 강아지"


 이 말속에 모든 게 담겨 있었다는 걸...


 엄마는 홀로 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 싱글맘의 서러움을, 모두가 잠드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 고단함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홀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슬픔을 이 어린 강아지 같은 것들을 보며 버텨내고 참아내고 있었다는 걸...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을 잘 키워야 한다는 권리와도 같이 내세웠던 명분은 아무나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그 무게를 감당해낸 엄마는 정말이지, 강한 사람이라는 걸...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는 걸... 내가 엄마라는 딱지를 달고 나서야 아주 조금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나는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엄마, 엄마가 계속 학교를 다니고 대학교까지 갈 수 있었으면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을 거 같아?"


"엄마는 형사가 되고 싶어. 나쁜 놈들 다 잡아서 처넣게."



 사실 나는 핑크색을 좋아하는 핑크 여사인 우리 엄마 입에서 못다 이룬 꿈이 '형사'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엄마는 살면서 너무 나쁜 놈들을 많이 만났던 걸까...? 사실 나는 그 나쁜 놈이 어떤 놈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 나쁜 놈 중에 아빠가 No.1으로 적혀있을 것만 같았다. 겁이 났던 이유는 아빠가 나쁜 놈일까 봐가 아니었다. 아빠가 왜 나쁜 놈인지 엄마 입으로 그 얘기를 꺼내어 듣는 게 나는 몹시도 겁이 났다.


 목격자와도 같은 내가 사건 당사자의 입을 통해서 그 고통을 전달받게 될까 나는 무서워서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나 보다. 엄마의 인생 뚜껑을 열어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기에는 아직 나는 여전히 내가 너무 어린것만 같다.


 엄마라는 그릇 안에 담긴 그 많은 이야기들과 상처... 아픔을 담고사는 엄마는 어떻게 견뎠을까, 그녀에게 인생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겁쟁이 쫄보처럼 아직 나는 머뭇거리고 있지만, 언젠가 내가 꼭 들어주어야 할 이야기라는 것과, 그녀와 나의 마음을 치유하는 길에 맞닥뜨려야 할 하나의 지점이 되어줄 것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엄마의 뚜껑을 열고 같이 지지고 볶고, 수세미로 빡빡 문질러도 보고, 기름칠도 해보고, 국자로 두들겨 팰 그날을 준비하겠다.


 검게 그을리고 여기저기 얼룩덜룩한 엄마의 냄비를 최신상 실리트 스테인리스 냄비처럼 뽀도독하게 닦아서 엄마랑 나랑 얼굴 들이밀고 거울처럼 볼 수 있는 그날을 몹시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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