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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Jan 23. 2022

35살에 난 '요즘 것들'이 되었다

삐뚤어진 건 아닙니다만

아싸. 성공했다.


드디어 내가 '요즘애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변화를 싫어하고, 검토도 싫어하고 오로지 관심사는 퇴직 후의 삶에 집중되어 있는 찐 보수파 고지식 과장님이 나에게 '요즘 애들'이라는 말씀을 했다고 한다. 그런 과장님이 내게 '요즘 애들'이라는 찬사를 보내셨다니... 진짜에게 인정받은 기분이었달까....^^


곧잘 나를 따르는 후배는 어느 날 나에게 쪼르르 다가와 비밀스럽게 말했다.


"선배, 과장님이 선배는 요즘 애들이래요~!"


내가 이 말을 들었을 때, 정말이지 난 굉장한 성취감이 차올랐다. 무색무취같이 살았던 내 삶에서 소위 어른들께 가장 많이 들었던 칭찬은 바로 이것이었다.


"주혜는 참 어쩜 이렇게 요즘 애들 같지가 않니~ 세상에 요즘에도 이런 애가 있다니~"



난 이 말을 들을 때면 참 뿌듯했었다. 나에게는 요즘 애들이라치면 할 말 다하고 눈치 안 보고 퇴근은 필수, 부당한 일에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또박또박할 말 다하는 그런 도전적인 젊은이들이었다.


그뿐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당당히 하고 요구사항이 있으면 논리 정연하게 주장도 할 줄 아는... 주류에 겁 없이 맞설 줄 아는 존재들.


그런 요즘애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어르신'들에게 내가 요즘애들이 되어 실망을 안겨드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키는 일은 찍소리 없이 최선을 다하고, 집에서 아이가 엄마를 목 빠지게 기다려도 일이 우선이고, 여기저기서 일이 빵빵 터지면 언제나 그곳에는 초특급 열일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후배들은 나에게 신기하다는 듯 물어보곤 했다. 선배는 왜 항상 모든 곳에 있는 거냐고. 도대체 몇 개의 업무를 맡아서 하는 거냐고. 그게 가능한 거냐고...


그러면 난 선배의 위엄이라도 드러내는 듯 나라는 사람이 이 정도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의문과 신비로 가득 찬 후배들에게 너희들도 다 할 수 있는 별거 아니란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때 후배들은 뭐라고 생각했을까... 저 선배처럼은 살지 말아야지...뭐 이런거 아니었을까...)


그렇다. 나라는 사람은 이 정도의 사람이었다.

시키면 공손히 다~ 하는 그런 사람.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시키면 다~하는 사람. 퇴근 후의 삶은 퇴근이 늦어지면 언제나 후순위로 미루는 게 당연한... 그래서 내삶이 없어도 오케이였던...


일을 쌓아주고 쌓아줘도 열심히 곰처럼 묵묵히 그리고 훌륭히 수행해내는 나는 그야말로 일 시키기 너무나 좋은 우수 직원이었다. 사업을 추진하고 외부에서 상도 물어다 주고, 강의도 하고, 인터뷰도 따내고 뉴스에도 출연하는 보배 같은 직원.



난 정말 '찐' 요즘애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내가... 요즘 애들이라는 황송한 말을 듣다니... 35살 인생에서 가장 호탕하게 웃어본 날이 아닐까 싶었다.


인정받았다. 난 요즘 것들이 된 것이다!

내가 이루어냈다!


이러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요소를 되돌아보며 자축의 시간을 가졌었다. 무엇이 나를 요즘 것들로 만들었는가. 요즘애들 같지 않던 대명사가 요즘 것이 되다니. 비결이 무엇이었던가...


비결은 딱 하나였다.



내가 나를 존중해주기


나는 늘 나를 후순위에 두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퇴근도 하고 싶고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은 거고... 힘든 일은 피하고 싶은 게 당연하고, 부당한 상황에서는 이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그 당연한 욕구를 나는 내내 억누르며 살았다.


'착한'사람 신드롬에 걸린 것 마냥, 나는 착한 사람으로,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선함과 착함을 혼동하고 있었던 거다.



나에게는 짜장면과 짬뽕을 골라야 할 때 늘 고수하는 원칙이 있었다. 상대방이 짜장면을 시키면 난 짬뽕. 상대방이 짬뽕을 시키면 나는 짜장면.


그 이유는?


상대방이 짜장면을 시켰는데 짬뽕이 먹고 싶으면 내 짬뽕을 내어주기 위해서. 내가 짜장면을 먹고 싶은지 짬뽕을 먹고 싶은지는 선택의 기준에 없었다. 나란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다. (이 미련 곰탱이야, 이 답답아~!!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할말은 없다)



내가 나다운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했을 때부터 난 나의 욕구를 그제서야 인식하기 시작했었다. 내가 무엇이 하고 싶은지, 현재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내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존중하는 선택이란 무엇인지... 이러한 기준들로 내려진 선택의 결과는 나를 '요즘 것들'로 만들어주었다. 만들 수만 있다면 셀프 트로피라도 만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참 허탈하면서 이리도 미련하게 살 수가 있나... 싶었다. 그렇게나 착한 사람으로 살았으면서 왜 나한테는 그토록 모질게 못되게 굴었던가...


그 버거운 무게와 고통들을 다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는 타이틀 아래로 묻어놨었구나... 억눌러놓은 그 감정들과 상처들... 내 삶을 살아내지 못한 억울함까지...


난 그간 내가 적립해놓은 억눌린 감정들이 이자를 붙여서 상환을 요구하리라고는 그 당시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요즘 것들로 살아가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억눌러 놓은 나의 감정, 기억들과 재회해야 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나는 '중증 우울증'이라는 진단서를 받아 들게 되는 공식적 우울증 환자가 된다.


'요즘 것들'에서 '나'로 탈피하는 과정일까... 그래도 나는 진한 우울감 뚝뚝 묵어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짜장면 vs 짬뽕,

이제는 잘 고를 수 있다.


누군가 묻는다면, 난 이제 고민하지 않는다.


둘 다 싫다.


난 짬뽕밥! 내 취향은 짬뽕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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