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주혜 Jan 22. 2022

내면 아이를 만나다(2)

나에게 보내는 위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가득한 어린 눈동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내가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난 순간이었다.




그 아이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감정들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만 남아있을 뿐, 아이는 자신의 생의 감각을 상실한 듯 보였다.


그런 아이가 나를 바라본다. 가여웠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고 말해줄 수가 없었다. 하나의 내가 두 개의 의식으로 분리되어 있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 아이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더 이상 괜찮지 않은 상황을 괜찮다고 억지로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소리 내어 울 수조차 없는 그 아이가 너무나 가여웠다. 차라리 엉엉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숨도 내뱉지 못할 만큼 두려움에 눌려있는 그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나는 천천히 그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10살의 나는 내가 참 많이 이제 컸다고 생각했었는데, 10살의 나는 참 작은 아이였다. 이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력하게 아픈 나이였다. 어린 나의 어깨를 감싸 안아 본다. 아이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우선, 그 집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엄마를 때리고 있는 아빠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등진채 아이를 데리고 집 밖으로 향했다.


길가에 서있다. 10살의 나와 33살의 내가 마주 보고 서있다.


"주혜야, 울어도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어. 내가 옆에 있어줄게."


아이는 이내 곧 울음을 터트렸다. 흐느끼던 울음은 가녀린 통곡으로 바뀐다. 나는 그 아이를 가슴 깊이 안아주었다. 그리고 한참을 같이 울었다. 나와 내가 함께 울었다. 이 아이가 부디 맘 편히 울어보기를 바랐다.


33살의 나는 10살의 나에게 말했다.



"주혜야, 나는 너야. 봐봐~ 네가 그렇게나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된 너야. 어때?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꽤 너 잘 큰 것 같지? 너는 훌륭히 성장했고, 지금은 2살 난 예쁜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어. 그리고 풍경이 아주 멋진 집에 살고 있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안전하고 따듯한 집에서 아주 든든한 남편과 아기랑 잘 살고 있단다. 지금 이런 고통의 순간들은 다 지나갈 거야. 믿어도 좋아~!

 

 이 모든 슬픔과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너는 참 잘 해냈어. 괜찮아, 주혜야~ 너에게는 항상 내가 있어. 그러니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고통의 끝이 없을 것 같은 절망도 흘려보낼 수 있어. 다 지나간단다... 그러고 나면,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와있을 거야.


 주혜야, 참 미안하고... 잘 버텨준 너에게 고맙고,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인 너에게 사랑을 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와 아빠도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라고... 그들을 헤아려 볼 날도 올 거란다. 넌 사랑이 많은 아이야. 고맙고 사랑해."

 


 나는 10살의 나를 위로했다.  10살의 나는 33살의 내가 하는 말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이 숨 막히는 고통이 지나갈 거라고, 이 고통 또한 나에게 의미로서 다가올 것이라는 이 말뜻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내가 10살의 나에게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일까.


 몇 번이나 더 나는 10살의 나를 만나러 가야 했다. 그리고 10살의 나를 그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안아주며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10살의 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매번 가슴이 시렸다. 아이는 매번 많이 울어야 했다.


 여전히 나는 그 트라우마 같은 기억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경험한 고통과 두려움은 나의 삶을 인식하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와 상반된 상태인 기쁨과 행복, 사랑이 가져다주는 감정의 상태를 열렬히 갈구하게 되었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 말고, 내가 느끼는 행복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물어볼 수 있었으니까.


 문득, 10살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친정집에 있는 어린 시절 사진앨범을 들춰봤다. 10살의 나를 만났던 그 길가에서, 나는 오렌지색 캡 모자를 삐딱하게 쓴 채로 손가락 브이를 하고 개구쟁이 같은 웃음지으며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 천진난만함에 웃음이 픽 번졌다. 아이의 맑은 웃음에 솜털같이 보송한 마음의 결이 생기는 것만 같다. 어린 나도 씨익 웃는 것만 같다.


방긋, 나의 내면 아이가 웃는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35살에 난 '요즘 것들'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