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주혜 Jan 21. 2022

내면 아이를 만나다(1)

어둠 속, 10살의 나에게

 나를 너무 알고 싶었다. 이 삶을 살아내야 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살아지고 있는 이 삶을 사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참 껍데기같이 느껴졌다. 마주혜라는 이름과 몸을 가진 껍데기 속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 나에게 충만함 가득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줄까... 내가 또다시 허상을 찾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그래도 이번에는 결국에 내가 느낄 감정이 허탈감뿐일지라도 부딪혀보고 용기를 내고 싶었다.


 내가 어떤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알려면 우선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나에게서 찾기 위해서 현재의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봤다. 그 당시에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실체를 마주하고 나서 너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항상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감정의 무드로 매일을 살아나가고 있었다. 내가 왜 불안할까, 내가 왜 초조할까 묻고 물어도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외적인 상황에서 내가 불안해야 할 이유, 초조할 이유는 없었는데 나의 내면은 온통 불안과 초조함으로 범벅된 상태였었다.


 그런데, 힌트처럼 하나의 장면이 눈을 감으면 둥둥 떠다녔다. 너무나 깜깜해서 아득할 지경인 공간에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웅크리고 있는 어떤 아이가 보였다. 그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게 나라는 걸 그냥 알았다.


 내가 도대체 왜 그렇게 쪼그라들듯한 상태로 웅크리고 앉아있는지, 도대체 이 장소는 어디인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은 혼자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도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라는 것... 한동안 그렇게 나는 웅크려있는 나의 모습을 궁금증을 가득 품은 채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고된 하루를 보냈던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먹는 것조차도 기운이 나질 않아서 바로 눕고만 싶었던 날이었다. 침대에 기대어 하루를 돌아봤다. 삶이라는 게 이런 걸까... 부처님이 삶은 고통이라고 말했다는데... 고통뿐인 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에 다시 그 어둠 속에 얼굴을 묻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나를 만났다.


 그런데, 그날은 늘 어둡기만 하던 그 공간이 예전에 살았었던 단칸방으로 바뀌었고, 내 옆에는 나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떨고 있는 언니가 있는 게 보였다. 나의 의식은 어느새 그 어린 시절의 나로 바뀐 듯했고 나는 두려움에 떨며 아주 살짝 고개를 들고 빼꼼히 밖을 바라봤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있었다. 처참히 맞고 있는 엄마를 우리 자매가 방구석에서 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10살이었다. 8살 때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고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우리 자매를 남겨놓고 홀로 집을 떠났었다.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8살의 나는 엄마가 아빠랑 헤어지는 게 엄마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는 그저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떠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엄마가 가야 한다는 걸 알았었다.


 한 2년 동안 우리 자매는 방치되어 있었다. 아빠는 우리를 돌보지 않았고, 집에는 8살, 9살짜리 자매가 스스로 알아서 살았어야 했다. 보다 못한 엄마는 우리를 데려와서 홀로 키우기 시작했는데, 아빠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한다면서 엄마와 우리와 함께 살기를 요청했고 엄마는 그것을 수락했었다.


하지만 아빠는 달라진 게 없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웠다. 여태까지 생각하지도 않고 살았던, 그저 내게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끄집어내어 말하지 않는 이상 내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날의 기억은 내게 FHD급 화질과 생생한 소리로 박혀있듯이 남아있었다.


 그날 그 방 안의 공기가 어땠는지까지 느껴지는... 그날의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내가 어떻게 숨을 내뱉고 있었는지까지도... 나는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참 많이 울었다. 자식들 앞에서 남편에게 무참히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엄마가 너무나 불쌍했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기대 어사는 엄마라는 존재가 저렇게 고통을 당하는데도 그냥 울지도 못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겪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나 불쌍했다. 너무나 안쓰러웠고 불쌍했으며, 지금 역시 이렇게 다 커버린 나 자신도 그때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처참했다. 그날 참 많이 울었다.


그때에는 몰랐다. '내면 아이'라는 심리학적 용어가 있다는 것을. 개념을 인식하기 전에 개념을 먼저 체험해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내면 아이의 존재를 경험하고 나서 이 아이에 대한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게 이어지고 있는 감정의 근간이 어쩌면 그날 느꼈던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용기를 내야 했다. 가장 도망치고 피하고 싶은 기억으로 온 힘을 다해 들어가서 그 웅크리고 울고 있는 어린 나를 일으켜 세워서 그 방으로부터 나올 수 있게 내가 나를 도와야 했다.


한동안 나는 여전히 그 방에서 웅크리고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아이로서 있다가 나오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한동안 많이도 울었다.


많이도 울어내고, 울어낸 어느 날 다시 나는 그 집의 문 앞에 서있었다. 이 문을 열면 엄마를 때리고 있는 아빠가 보인다. 그리고 벽의 한 모퉁이에 어린 자매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나는 아빠를 지나쳐서 어린 나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잔뜩 웅크려진 어깨를 하고 앉아있는 어린 나의 어깨를 어른이 되어 커진 손으로 살포시 잡아본다.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가득한 어린 눈동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내가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난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면 아이를 만나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