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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Jan 21. 2022

나의 슬픈 행복론

나는 행복을 모른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파랑새 이야기처럼 행복은 가까이에 언제나 나의 주변에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나에게 행복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내가 지금 행복이라고 느끼는 감정의 실체에 대하여.


어린시절을 회상해본다. 나에게 행복이란 아빠가 엄마를 때리지 않는 것, 엄마가 화를 내지 않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 엄마랑 살을래 아빠랑 살을래 이런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 곰팡이가 피어있는 밥솥을 닫으며 느꼈던 배고픔과 무력감을 더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 엄마없는 아이라고 놀림받지 않아도 되는것...등등...


내게 셋팅된 행복의 베이스는 기쁨과 즐거움과 같은 감정이 아닌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불안과 슬픔으로 레이어드된 감정층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나에게 행복이란 두려움을 피할 수 있는 그 어떤 상태의 무엇이었다.


왜 나는 행복의 정의를 기쁨과 사랑이 아닌 두려움과 고통의 회피에 기반을 두게되었을까. 이게 가장 큰 문제의 시발점이된 것이 아닐까.


조금 더 컸을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중고등학교시절에는 내내 가난이 나를 따라다녔다. 가난이 나를 안따라다닌적은 없었지만 점점 커갈수록 상대적 박탈감을 제대로 느껴야만 했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여 치른 첫 시험에서 전교생 780여명 중 전교 2등을 해버렸다. 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지(외우는지) 몰랐다. 공부를 잘한건지 진짜 다 외워버린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 나는 뛰어난 암기력으로 공부했던 책페이지를 머리속으로 한장한장 넘길 수 있을정도로 달달달 외워버리는 기묘한 능력이 있었다.


 학원이나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되었고 문제집 한권을 사려해도 엄마한테 정말... 간절히 죄송스럽게 부탁을 드려야했다. '교과서에 충실'하여 가난을 극복하고자, 개천에서 용이 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지독히도 성실히 열심히 공부를 했다. 가난한 집의 딸래미가 공부를 잘한다니... 내가 평생 잡고가야할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듯했다. 집은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똑똑해서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을 가서 집안을 일으키는...어디서 봤을 법한 드라마의 한 배역처럼 나는 그런 역할을 어쩌다가 자청한것 같았다.


문제집이라도 여러권 풀어보고 싶지만 문제집도 사줄 여력이 안되었다... 담임선생님께 문제집 좀 달라고 요청을 드리곤 했었다. '선생님... 저희집이 좀 어려워서요...'라는 말을 자진해서하며 교사용 문제집을 몇권씩 받아들고 나왔었다. 교사용 문제집에는 정답이 자체 표기가 되어있어서 수정액으로 정답을 먼저 지워놓고, 문제를 풀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감지덕지였었다. 사춘기 소녀시절에 솔직히 이런말을 셀프로 먼저 하는게 창피하긴 했었다. 그래도 이런 캐릭터는 사회에서 그야말로 짠한 대상의 표상같았다. 어려운 집에 성실하고 착한데 공부는 잘하는 불쌍한 애.


나는 알아버렸다. 내가 원하는것을 얻으려면 이 캐릭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몰랐다. 이때의 이 마인드 셋팅이 나를 평생 따라다니며 결핍과 슬픔 속에 나를 계속 집어넣어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내내 가난한 집의 공부잘하고 성실한 딸래미로 살았다. 불쌍한 우리엄마, 늘 고생하고 희생하는 엄마. 그게 마치 나때문이것 같아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고분고분 말 잘듣는 착한 사람, 불쌍하지만 성실한 사람으로 내내 참 잘도 참고 살았다. 나의 것을 먼저 요청하고 바라는 사치는 내 삶에서 없었다. 묵묵히 견뎌야했고, 내 삶에서는 이게 최선일거라 애써 믿으며 살았었다.


이런 삶이 즐거웠겠는가. 대단히 대단히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공부를 잘하는 타이틀은 딱 중학생 때까지였다. 날고기는 고등학교에서 어중간하게 공부하고 졸업하고서는 오로지 취업이 바로될 수 있는 학과를 골랐다. 그래서 나는 간호사가 되었다.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직업이었지만, 인서울을 포기하고 수도권에 있는 간호학과에 가야했다. 별로 고민도 안되었다. 빨리 이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경제적 능력을 갖춘 '어른'의 삶으로 뛰어야 했다.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쉰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번은 학자금 대출시기를 놓쳐서 등록금도 못낼뻔한 적이 있었다. 그 등록금 마련을 위해 여름방학 내내 횟집에서 서빙알바를 해서 간신히 냈다. 그래도...이제 내가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면 행복의 문이 곧 열리리라 굳게 믿었다. 달리 매달려볼 곳이 없었다. 고3 수험생활 못지 않은 간호대학생활을 보냈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 하는 병원에 당당하게 합격하게 되었다. 이제는 돈 걱정 안해도 되겠다, 더이상 알바안해도 되겠다라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넘쳤다.


"고생 끝! 행복시작!"


그런데 행복은 쫓으면 쫓을수록 달아나는것만 같았다. 이것만 해내면 행복일거 같은데 기를 쓰고 쫒아가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왜 어찌하여 공허함만 더 커지는걸까. 왜...


행복을 찾는 시도와 공허함은 계속 반복되었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어느날 문득 이 행복을 쫒는 감정과 허망함의 감정이 너무나 내게 익숙하다는 것을 알았다. 허망하고 비참한 이 기분이 내게 분명 처음이 아니라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구나... 다시 내 삶을 되돌아 봐야했다.  


이유를 알았다. 애초에 난 행복이란게 무엇인지 몰랐다.


고통의 부재가 행복이 아님을, 슬픔의 부재가 행복이 아님을....두려움의 부재가 행복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고유한 감정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내 삶에서 경험하지 못했던걸까.


행복이란게 무엇일까. 행복이라는게 무엇이냐고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숱하게 말하는 행복, 그 행복이 무엇인가. 행복, 그 고유의 감정과 상태가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이것이 내게 행복이 신기루인 이유였다. 실체가 없었으므로 내가 가는 곳에 행복은 없었다.


그리하여 행복을 찾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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