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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Jan 21. 2022

인생트랙

당신은 어떤 길 위에 있나요


달린다.


 너나할것없이 사람들이 분주하게, 정신없이 달린다. 달리는 길 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따위를 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는것 같다. 그런 여유는 사치일까. 서로 누가 조금이라도 앞서있는지 흘깃 쳐다본다. 뒤쳐져있는 이는 초조한 마음을 숨겨보며 자신을 좀 더 채찍질한다. 초조함을 티내서는 안된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앞서가는 이는 기쁨에 사로잡힌다. 뒤에 있는 이들보다 성공한듯한 우월감에 자신을 너그럽게 채찍질해본다. 모두들 그들 고유의 트랙을 돌고있다. 그 트랙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트랙의 끝은 행복의 달성이라고 한다. 트랙의 끝으로 갈 수 있는걸까. 너무나 아득해보이기만 한다.


숨이찬다.


 나역시 트랙위를 달리고 있다. 그런데 문득 내가 무엇 때문에 달리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달릴수록 점점 끝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숨이차고 너무나 지친 나머지 잠시 트랙위에 쪼그려 앉아본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대는것만 같다. '나약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렇게 여유부리다가는 뒤쳐지고야 말거야, 정신똑바로 차려', '인생이 뭐 그렇게 쉬운줄 아니? 그러니깐 인생이야.' 귀에서 울려대는 말소리에 또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이 트랙의 끝에는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이 그랬다. 내가 가려는 결승선은 행복이라고 한다. 대학입학, 취업, 결혼, 출산이라는 지점을 통과하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행복으로 도달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이런 삶이 행복이라고 내게 많은 어른들은 얘기했다. 또한 이런 행복을 얻기위해서는 고통을 참아내야만 한다고. 먼저 살아본 이들의 말을 나는 공손히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숨이 차올라 포기하고 싶을때면 항상 의문이 들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결승점을 생각하며 나를 호되게 스스로 밀어댔는데, 그 행복의 길을 걷는 나는 왜 행복할수 없는 것인가. 행복을 향해 걷는 길이 이토록 고통스럽다면, 내가 가는 이 길이 행복이라는게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달리면 달릴수록 행복에 대한 목마름만 커져갔다.  숨을 꾹꾹 참으며 한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새로운 트랙이 시작됐다. 쉴틈은 없었다. 내가 방금 행복을 향한 하나의 지점을 통과했지만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거라 짐작한다. 내가 더 열심히 달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잠시 너무 힘들어서 쉬었던게 이유였을까...? 남들보다 앞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이번에는 더 열심히 달려야한다고 나를 밀어댄다. 그래, 이번에는 다를거야. 이번에 더 열심히, 성실히 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거야....


 그때는 보지 못했다. 그 트랙 밖의 세상을. 트랙밖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트랙을 밟아 나가는 사람들을, 트랙 옆에 피어있는 꽃과 울창한 나무들이 주는 위로를, 현재의 순간이 주는 삶의 평온함을, 인생의 트랙을 스스로 셋팅하고 그 길을 나들이 걷듯 걸어가는 사람들을.... 나는 내가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서있는 길이라면 나의 길이라고 굳게 믿으며 그렇게 나를 끌고갔다. 행복을 찾아서.


 대기업을 다니는 남편과 소위 안정적 직장이라는 대명사와도 같은 곳에 직업을 가진 나는, 이제 출산이라는 문을 지나서 행복한 가정을 일궈내면 되는 일이었다. 어린시절과는 다르게 물질적 결핍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화장실이 집안에 없어서 공동화장실을 쓰지 않아도 되고, 단칸방에 산다고 더이상 나를 놀려대는 친구들도 없다. 엄마를 무참히 때리는 아빠라는 존재도 없다. 내 옆에는 성실하고 우직한 남편이 있고, 어린시절 나처럼 불안감에 떨며 웅크리고 울먹이지 않아도 될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가 있다. 행복의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 나의 인생트랙을 열심히 달려와서 여기까지 성취했다.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결혼 후에 아이의 출산. 내가 행복의 성취라고 생각했던 그 지점을 통과했는데, 불안했다. 왜 어찌 행복하지 못한걸까. 나는 분명 행복의 조건은 성취했으나 행복의 감정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무엇을 위해 달려야하지...? 아, 이제 아이를 잘키워야한다. 영어조기교육을 시키고 어릴때부터 책으로 육아를 하면서 똑똑하게 키워서 남부럽지않게 명문대도 보내고 존경받는 엄마가 되어야지. 새로운 인생트랙이 시작된다. 요즘 잘나간다는 엄마들은 어떻게 교육시키는지 유명 인터넷 카페와 SNS를 탐색한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지금 내가하는 소비는 가치있는 소비라는 굳센 심지를 가지고 남편과의 대립에서 억지 승리를 거둬내며 집에 값비싼 책과 자료들을 들인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믿음과 뿌듯함... 어린시절 내가 받아보지 못한 이런 엄마의 관심을 내 아이에게 주고 있는 나 자신이 뿌듯했다. 이런 내가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는 착각과 나는 행복을 혼동하고 있었다.


 한가로운 오후였다. 2살난 아들은 새근새근 낮잠을 자고 있고 나는 그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육아로 유명한 SNS스타인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가 일어나면 읽어줄 책도 골라놨다. 하나의 질문이 늘 나를 따라다녔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때에도 내 머릿속에서 늘 맴도는 그 질문이 그날도 나를 두드렸다.


'어떻게하면 아이를 잘 키울수 있을까?'


그런데 그날따라 유난히 그 질문 뒤에 하나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생각을 놔주지 않았다.

 


'난 어떻게 컸지?......'



 그 물음에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 위로 나의 어린시절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자랑스러운 목표로 셋팅된 나의 인생트랙을 열심히 달려온 나의 삶에서 내가 진정으로 소망했던 목표는 없었다. 나는 내가 가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를 일궈내는데에 온 생애를 바친듯했다. 두려움으로 셋팅된, 누군가가 깔아놓은 트랙위를 내가 달리고 있었음을 여태껏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여태껏 생각해온 행복은 어쩌면 하나의 임무를 끝낸 이의 불안의 해소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의 부재, 고통의 부재, 슬픔의 부재 그리고 결핍의 부재와 행복은 같은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나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의 한중간에 있었다. 이것만 되면... 이것만 해내면...하면서 지나왔던 내 삶의 결과물은 행복이 아니었다. 조건부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그게 내 착각이라는걸 알아버렸다. 아니라고, 그게 행복이 맞다고 억지로라도 믿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 순간 여전히 열심히 숨가쁘게 달리고 있던 나는 그 트랙위에서 허망하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끝이 없는 트랙... 결국에는 누가 누구를 이겨도 아무 의미없는 그 트랙... 값비싼 물건을 입고 안고 들고 달리는 사람이나, 가난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달리는 사람이나, 결국에는 같은 인생길이라는걸.... 그리고 그 트랙을 조금만 벗어나서 바라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달리지 않은 자신만의 트랙을 기꺼이 기쁨으로 걸어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는걸...난 몰랐다. 다른 이의 트랙을 내길이라 착각하며 내 삶을 써왔다고...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남들의 행복을 흉내내고 있었던 걸까.


 낮잠에 들었던 아이가 일어나며 칭얼거리는 소리에 현실로 의식이 돌아온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아주려 하자 잠결에 제 엄마를 보고는 다시 안심하고 잠이드는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몹시 겁이나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왔던 그대로 이 아이가 살아가게 된다면 어떡하지?... 나처럼 살면 어떡하지?...


 2살난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의 전부는 엄마인 나였다. 내가 아이의 세상의 전부였다. 아이는 세상을 나를 통해 바라볼 것이 분명했다. 나는 결심했다. 아니, 그래야만했다. 누군가 깔아놓은 트랙이 아니라, 숨막힐듯 쉬지 않고 달려야만하는 그런 트랙이 아니라, 나만의 트랙을 찾아 걸어야한다는걸...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여줘야한다는 걸...


 나는 다시 잘 살아봐야만 했다. 나는 아이에겐 세상의 거울이었으니까. 아이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세상은 내가 살아왔던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날부터 내가 달리던 인생트랙에서 한발자국 벗어나서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처절함을 느끼면서....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허망하게 쳐다보는것 말고는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어보였다. 삶은 아이러니라 했던가. 내 삶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순간에 내가 여태껏 생각해온 행복이 와장창 무너져 내려버렸다. 나는 행복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했다. 내가 가고자하는 그 트랙이 무슨 트랙인지 알고 걷고싶었다. 몹시도 간절하게.


 내 옆에는 내 모든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않을 소중한 존재가 자신의 모든것을 내게 의지한채 이 삶을 살아나가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살아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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