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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Oct 13. 2022

작고 소소한 것들의 위대함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오래도록 키운 동백잎 표면에 반사되어 내뿜는 빛을 보았다. 그냥 딱, 그 순간이 아름답다는 핑계로 한참을 더 누워 그곳을 바라보았다. 이불속에서 밍기적거리는 동안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작고 소소한 것들에 대하여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정리가 끝이 났다. 아주 완전히.


지난 몇 년이, 그리고 그 몇 년 사이의 몇 개월이라는 시간을 뚫고 지나오는 일은 나를 쇠약하게 만들었다. 원래도 입 짧은 나였지만, 그나마 있던 입맛도 잃고 생존하기 위해 먹는 식량의 느낌으로 음식을 먹어야 했고, 가만히 있어도 체중은 줄어들었다. 한때 '통통이'로 살던 내가 '여리여리'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생각하면 웃프다고 해야 할까...? 다이어트가 사명인 것처럼 헬스장에서 파워워킹을 하던 그때의 나는 훗날 '여리여리'하다는 로망과도 같았던 말을 듣는 내가 될 줄 알았다면 그때의 힘을 지금 좀 비축해두었으려나.



이제야 매일 지내는 집에서 나도 모르게 위로를 얻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 위에 차곡히 올려놓았던 돌탑들을 스스로 다 무너뜨리고 나서야 조금의 공간이 생긴 듯하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보는 익숙한 한 장면에서 감사함을 느끼게 된 것을 보니 말이다. 나의 오랜 지기이자 평생의 친구가 선물해준 커튼은 그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햇빛을 매일 전해주고 있었다. 커튼을 볼 때면 나를 애틋하게 여겨주고 살뜰히 챙겨주는 나의 친구의 마음이 따듯이 덮여오듯 위로와 사랑이 전해지는 것만 같다.




며칠 전, 무지개 백설기 떡을 닮은 키보드가 도착했다. 첫눈에 반해버린 키보드는 정말이지 백설기 떡을 닮았다. 한입 베어 물고 싶을 만큼 키보드가 이리도 보송보송 어여쁠 수 있는가 싶어서 반해버린 이 키보드를 개시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나에게 연보랏빛 키보드는 외면할 수 없는 강렬한 그 무엇이었다. '타닥타닥'이 아니라 '오독오독오도도도독'소리가 어울리는 이 키보드는 자꾸만 무언가를 쓰고 싶게 만든다. 글을 쓰고 싶은 동기가 키보드를 치기 위해서가 될 수도 있다는 나의 마음에 피식 웃음이 나고 한결 부드러워지는 듯하다. 그런 내 모습에 나 스스로가 안심을 한다. 원래 일할 때 쓰려고 산 건데... 사무실에 가져가기 싫어지려고 한다(한 개 더 사는 건 안 되겠지?^^)




좌 고무나무 우 몬스테라

나의 작은 집에는 크고 작은 초록이들이 함께 산다. 잘 키우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맙게도 죽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때에 맞춰서 물을 주고, 각각의 잎사귀들이 생긴 모양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끔은 잎사귀들을 대견한 마음에 쓰다듬고는 한다. 고무나무는 단단하면서도 둥그런 곡선이 매력적이다. 이름이 고무나무인데 정말 이 아이는 소위 '고무'성분을 어디에 품어두고 있을까 궁금했다. 식물의 정체성을 확인해보고 싶은 나의 욕망을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시들어버린 잎을 따주면서 하얗고 뽀얀 끈적이는 액체를 내뿜는 것을 보고, 역시 넌 고무나무가 맞구나하며 고무나무는 기억하지 못할 우리의 추억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잘 살고 있던 고무나무는 줄기 아래쪽 잎들을 무참히 떨궈내 버렸었다. 혹시 내가 부주의하게 무언가 실수를 했나? 싶었지만 줄기의 윗부분의 잎들은 너무나 쌩쌩하였기에 오래된 잎들을 알아서 떨어트렸나 보다 하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었다. 반년쯤 지나자 잎을 떨궈낸 자리에 쌀알만 한 새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눈이 보여서 곧 새 잎이 나오려나 하는 기대감과는 달리 새눈은 그저 굵은 줄기에 몇 달이나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연둣빛 새 잎이 '날 좀 보세요'라는 듯 뿅 솟아 있을 때 나는 그 앞에 한참이나 쭈그려 앉아서 새잎을 칭찬해주고 있었다.

그저 너무 예쁘고 감동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고운 분께서 말씀해주신 '다정하고 기특하다'라는 말이 딱 그때의 내 마음이었구나 싶었다. 어쩜 이리도 기특한지^^



우리 집의 초록이의 존재감을 대표하는 몬스테라는 사무실 한편에 버려져 애처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화분의 주인은 갑작스럽게 휴직을 하게 되었고 주인 없는 이 아이는 곧 운명할 위기에 처해 보였다. 물기가 하나도 없이 포실포실해져 버린 흙에서 버티고 있는 몬스테라를 그날 집에 데려와서 물을 주고 지지대에 줄기를 묶어 다시 고개를 들길 기다렸다. 하도 쳐져있어서 원래 집에 있던 고무나무의 잎사귀 위에 몬스테라의 큰 잎을 얹어놓았고 고무나무에게 부탁했다. 새로 온 친구 좀 살아나게 도와달라고.


너무나 쳐져있는 몬스테라에게 기운을 내라고 주문한 식물 영양제로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초록이들에게도 나눠주면서 말해주었다. '이건 새로 온 몬스테라가 너희들에게 쏘는 거야' 한턱 쐈던(?) 몬스테라는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줄기를 뻗어내기 시작했다. 3줄기만 있었던 몬스테라는 이제 5줄기가 되어서 나의 이동 동선에 방해가 될 정도로 폭풍 성장 중이다. 누가 그랬었는데... 너무 빨리 크게 자라서 괴물의 '몬스터'에서 이름을 따온 식물이라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저 믿어졌다. 곧 새로운 줄기가 하나 또 나올 것 같다^^


마지막, 애정 하는 초록이는 '호야'.

마치 애정 하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듯 '호야~'라고 불러볼 수 있는 귀여운 호야도 사실은 첫눈에 반한 식물이다(나는 정말 첫눈에 반하는 그런 금사빠인가 글을 쓰며 자각 타임을 갖는 중이다). 매일 지나다니는 회사 계단 한쪽 모퉁이에 별 모양 분홍 꽃을 피워낸 호야를 보고 나서는 한눈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홍 별을 닮은 호야의 아기꽃 같은 자태에 쪼그려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너무나 키워보고 싶었던 호야는 우리 집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중이다. 아직 별 모양 꽃은 만나지 못했지만, 호야의 꽃잎을 닮은 분홍색 새 잎을 돋아내고 변함없는 푸르름을 전해준다. 호야를 볼 때면 꼭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다. "다 괜찮아."라고.




얼마 되지 않는 생활 반경 속에 소소히 나를 다독여주는 것들이 가득하다는 걸 문득 새삼스럽게 깨닫는 오늘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맛의 퀄리티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는 충분히 좋은 핸드드립 커피 한잔과, 주황색 전구가 초록빛 유리를 통과하며 뿜어내는 빛의 한 갈래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스탠드, 화려한 무대를 생각나게 하는 캔들 워머와 콧속을 살랑이게 하는 달큼한 향기. 내가 좋아하는 북 케이스 그리고 사각거리는 연필로 끄적거리며 읽는 책들. 하루 종일 꾸욱 눌러놓았던 눈물을 집에 돌아와 뿜어내듯 울어내던 날에 내 눈물 콧물을 닦아주던 휴지를 귀여운 곰돌이 휴지 케이스에서 꺼낼 때면 곰돌이의 까만 눈이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좀 덜 울었던 같기도 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작고 소소한 것들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나 보다. 뒤늦은 감사함을 담아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보는 아침이었다.


진득거리는 것 같이 느껴지던 지난날의 겹겹의 시간을 걸어오고 나서야, 밝고 곱고 고마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내 곁에 있어주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들의 묵묵한 위로가 나에게 어떤 힘을 불어넣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된다. 작고 소소한 것들의 위대함에 한껏 감사하고 싶은 오늘이다. 오늘처럼 작은 것들에 감사하며 매일을 살았으면 한다.


P.S ) 문득 ... 아껴놓은 여름휴가를 가을휴가로 보내고 있기에, 출근하지 않아서 생기는 행복과 감사함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스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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