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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Oct 20. 2022

세상이 아름다워!

다시 태어난 것처럼, 세상의 사물들을 처음 보는 것처럼 그렇게 삶이 겪어지는 요즘이다. 노랗고 주황이며 군데군데 푸른기가 도는 동글동글한 작은 귤들을 보면 세상에 이리도 올망졸망한 것들이 한데 모여 있을까 싶은데, 이름도 ‘귤’이라니! 이름 속에는 상큼함과 동글동글한 모양이 다 담겨져있는 것만 같다.


‘귤’이라는 소리가 예쁘고 귀여워 ‘규우우우울’하고 천천히 발음해보기도 하고 어쩌다 귤이라는 이름을 얻었을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후배에게 점심 후식으로 귤을 건네며 ‘귤’이란 단어가 너무 예쁘지 않냐고 규우우울 거리며 묻자 후배가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의아한 웃음을 담아 받아친다.


“선배~ 세상이 아름다워요??? 오늘 왜 그래여~~”


(너만은 받아줄 줄 알았는데... ) 귤은 나에게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이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할 수 없다니! 나 홀로 애가 탄다(규우우우울... 너무 예쁘지 않나...?)



그래, 맞다.

요즘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게 맞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도 끝맺지 못한 채 내일의 야근을 기약하며 돌아가는 퇴근길에는 집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어제 읽다 만 책을 이어서 읽다 스르륵 잠들기를 바라는 소망은 집을 향한 마음을 더욱더 조급하게 만든다.


딱 한 모퉁이만 돌면 집이다. 늦은 퇴근길에 만난 신호등은 빨강, 노랑, 초록의 색깔은 넣어두고 계란 후라이 노른자를 똑 닮은 깜박이는 노란색 점멸등을 꺼내놓았다. 그것도 그냥 노란색이 아니고 개나리를 닮은 노오랗고 진하면서 다정한 그런 노란 불빛이 흔들어대듯 깜박거리고 있었다. 한모퉁이만 돌면 오늘 그토록 가고 싶었던 집인데, 노란 불빛이 마치 '힘내라 힘!' 응원이라도 하듯 박자에 맞춰 춤추을 춰주니 이를 그냥 서둘러 지나치기가 아쉽다. 액셀을 밟는 발의 힘을 느슨히 해본다. 이게 이토록 아름다워 보일 일인가 스스로에게 묻다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원래 아름다운데 내가 그걸 여태 보지 못하고 산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산 것일까.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느닷없이 겨울이 온 것 같고, 갑작스러운 차가움에 놀라 여름 이불은 넣어두고 겨울을 함께할 두툼한 이불을 꺼내 덮었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이불속이 차디 차다. 몇 분을 기다리면 곧 따듯해질 차가운 이불속에서 얼굴만 빼꼼 내놓고 이불이 데워지길 기다려 본다. 그런데 문득, 이불은 어디에서 이 따듯함을 얻어서 전하는 걸까 질문을 던지자 이 따듯함의 열원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불의 따듯함은 나의 온기에서 온거였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따듯한 사람인가! 스스로 경탄하고 있었다. 나의 온기로 차가운 이불을 데우고 그 온기를 덮고 잠에 빠져든다는 게 왜 이리도 멋지고 위대한 일 같을까.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은 신비하고도 멋진 일을 가만히 있어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추운 날 서로 팔짱을 끼고, 살을 부비대고, 꼬옥 끌어안아서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 차가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나 보다. 따듯함에 대한 그리움의 원천은 사람의 온기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었을까.



오며 가며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물어봐주는 다정한 사람들, 딱 봐도 1인분인데 같이 나눠먹자는 새색시 표 도시락, 아홉 시 반 땡! 하고 열리는 회사 카페로 다 같이 달려가서 안 물어봐도 아는 메뉴를 골라주고 '오늘은 내가 쏠게!' 하는 상쾌한 아침, 같이 나눠먹는 군고구마, 묵묵한 옆자리 짝궁을 웃겨보겠다는 호기로운 다짐들은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요즘 궁금한 게 참 많다. 왜 책은 네모난 모양이 되었을지, 사과는 사각사각거려서 사과가 된 것인지, 찰나의 순간을 담은 '까무룩'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왔을지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요즘이다. 6살 난 아들을 만나면 그에게 궁금증에 대한 조언을 구해야겠다. 순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그는 답을 알지도 모르니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만 같다. 세상은 그대로였을텐데. 바뀐 것은 나 하나일 텐데, ‘나’라는 세상이 열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치 탐험가라도 된 기분이다. 익숙한 것들에 대한 생경함을 맘껏 즐겨보려 한다.


모쪼록 멋진 탐험이 될 것만 같아 설렌다. 바야흐로 호기심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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