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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Oct 14. 2022

취향대로 한껏 살아본다는 것

취향이 생긴다는 것이 설렌다. 한눈에 내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단번에 고른 그 무엇이 딱 내 것 같은 일체감이 느껴질 때면 무난한 것을 지나 나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향해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설렌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원목으로 된 가구들, 흰색의 벽지와 커튼, 올망졸망한 초록이들은 화이트와 우드, 그리고 플랜테리어라는 가히 대중적인 컨셉이지만 그 대중적인 조합에 내 취향껏 살짝 섞어 놓는 감성이 즐겁다. 어느 곳은 봄 같고, 어느 곳은 가을 같고... 어느 곳은 어린 시절의 꿈같이, 어느 곳은 온전히 허락된 마음의 방같이... 나만 아는 조합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취향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자기 자신만 아는 질서 위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해를 부여해주는 것이 취향이라는 것일까. 내게 좋을 촉감, 내게 편안한 향기를 발견하는 일, 어떤 대목에서 코끝이 찡해져 오는지 알아서 울고 싶지 않은 날에는 피해서 봐야 하는 영화 장르가 있다는 것,  나만 웃는 웃음의 포인트가 다소 허망한 지점이라 비난을 받을지라도 함께 찐 웃음을 내어주는 이를 만나는 것과 같이 취향껏 살아볼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즐겁고 귀하며 필요하다.



타인과 함께 나눠야 할 취향이 있는 동시에 홀로 오롯이 만끽할 자기 자신만의 내밀한 취향도 존재한다. 타인이 모르는 나를 만나는 시간은 '자유 취향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과정을 포함한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삶을 돌아보는 순간에 들여다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묻게 된다.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낯선 나에게서 지금의 나를 연결해볼 지점을 찾아 더듬어본다. 그러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결'이 어렴풋이 보인다. 나에게 편안한 것들, 불편한 것들, 내게 슬픈 일들, 내게 기쁨을 주는 일들. 그렇게 나의 '결'을 매만져보는 시간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그려가는 중이다.



삶의 새로운 감각이 열린 것처럼, 온통 나의 주의를 빼앗았던 것들로부터 자유해져,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삶의 새로운 모습에 감탄하는 요즘은 나를 감동시키는 것들에 대한 취향을 배워간다.


낮게 떠있는 왕방울만 한 큰 달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구태여 노란불에서 차를 멈춰 세우게 한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 전부를 조금 더 달려가서 손을 뻗으면 달을 만져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단 몇 분이라는 찰나의 황홀함.


하늘색이라 명명하기엔 너무 단순할 만큼 온갖 빛깔이 말도 안 되게 깔려있는 하늘은 세상의 절대자가 펼쳐놓은 투명한 도화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해 질 녘의 단 한 번의 시선이 주는 인상.


물 줄 때를 놓친 작은 식물에게 시원한 물을 부어주고 미안한 마음에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잠시 옮겨주어 물 올리는 일을 돕는 마음, 그리고 이내 곧 고개를 빳빳이 들어 올리는 녀석을 돌보는 사소하지만 기특한 순간.


둥근 구두코보다는 뾰족한 코를 좋아하는 취향 덕분에 발가락은 좀 아프지만 이를 감수해내고서라도 내가 좋아서 신는 반짝거리는 뾰족구두는 어린 시절 인형놀이를 하며 내가 가장 사랑하던 인형의 구두를 떠올리게 하여 잠시나마 어린 마음이 되는 일.


자장가 같은 노래들만 모아놓고 장거리 운전을 졸지 않고 하냐는 신기함 섞인 핀잔에도 즐거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날 기분 좋게 한다.



브런치라는 세계에 들어와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아직도 낯간지러워 킬킬거리곤 하지만, 쓰고 싶은 대로 써 내려가는 취향 가득한 나의 글을 쓰는 시간과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시간에 끼어들어 울고 웃고 위안을 얻는 나를 발견하고 그 시간들을 한껏 즐겨본다.


살면서 처음으로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25살의 다 커버린 나는 장래희망이 플로리스트였다. 플로리스트의 못 이룬 열망의 부작용으로 난 꽃순이가 되어 이불도 꽃무늬, 쿠션 커버도 꽃무늬, 하늘하늘한 쉬폰 원피스도 꽃무늬, 폰 케이스도 꽃무늬, 잠옷 바지도 꽃무늬... 꿋꿋이 취향 존중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쭈욱 꽃순이로 살면서 꽃처럼 살고 싶다는 향후 인생의 취향을 소망해본다.


삶에 취향이 있다는 건 이토록 달콤한 일이라는 걸 난 일찍 안 것일까 늦게 안 것일까? 아무렴 어떤가. 수줍게 어여삐 웃는 내 모습보다 두 눈 질끈 감고 킬킬거리며 물개박수 치는 내 모습이 더 좋다.


취향껏 산다는 것, 그렇게 사는 매일이 되었으면 :)

오늘의 내취향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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