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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Jan 23. 2023

괜찮은 한 조각 _ 별빛 산책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겹쳐서 한 번에 찾아왔다. 지난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용케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던 나는 코로나 확진자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틀은 하루종일 잠을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 삼일을 앓고 나니 조금씩 몸이 움직여졌다.


하필이면 연휴 때 코로나 확진이라니... 고요함과 적막함으로 점철된 그런 새해를 맞이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강제적으로 혼자인 게 당연한 이런 적요한 날들을 무려 일주일이나 보장받은 것이었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다 같이 모이는 이런 명절에 내가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참 다행이었다.



달리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멍하니 식탁에 앉아 시시각각 해가 기울어가는 모습을 보며 멍을 때렸다. 홍시같이 번져가던 하늘이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색을 감췄다.  어둑어둑해진 방안은 고요한 적막뿐이었다. 소리가 튕겨져 나가는 듯한 고요와 마비와도 같은 마음의 적막을 방안의 적막 곁에 놓아두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는 건지 몰랐다. '딸깍' 주황빛 스탠드를 켜면서 어쩌면 내일도 나는 이러고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런다한들 크게 상관없다는 마음은 지금 그대로 몇 시간이고 더 머물러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하게 했다. 쌓여있는 설거지도, 밀린 빨래도 몇 날 며칠 반복될 시간 앞에 제쳐두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공백 같은 시간에 걸터앉아 지금 너는 괜찮은 거냐고, 내가 어때야 괜찮은 거냐는 물음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물음은 나에게 답을 요구했지만 답이 생각나지가 않았다. 뭐가 괜찮아야 괜찮은 걸까. 지금도 나쁠 건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딱히 좋을 것도 없지만...


어느새 해는 완전히 넘어갔고 방안에는 썰렁한 찬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발이 시려왔다. 그런데, 그때가 생각이 났다. 몇 년 전 꽁꽁 시린 맨발로 밤 산책을 했던 그날이.


모든 것이 다 괜찮은 것 같았던 그날 밤이.





아이를 혼자 봐야 했던 어떤 날이었을 것이다. 저녁을 먹이고 뒷정리를 할 시간을 벌 수 있게끔 아이에게 놀잇감을 주고서는 분주히 집안일을 했던 것 같다. 다음날 버려도 되었을 쓰레기봉지를 왜 그날은 한 구석에 미뤄두지 못했을까. 쓰레기봉지를 들고 순간의 갈등이 일었다.


아주 잠깐이면 쓰레기를 버리고 올 수 있을 텐데... 아이에게 티비를 틀어주고 얼른 다녀올까 하는 마음과 잠시도 엄마랑 떨어지는 것을 못 견뎌하는 아이가 그 잠깐을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릴까 하는 걱정되어 쓰레기를 내일 버려야 하는지... 그런 마음 사이의 갈등이었다.


한겨울 추운 밤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려면 그게 잠깐일지라도 복슬복슬한 곰돌이 인형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히고 나가야 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벌써 피로해져 버렸지만 나는 그날 왜 그 쓰레기를 꼭 버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모자부터 털옷 그리고 두꺼운 수면양말까지 신기고 목도리도 감아주어 작은 아기곰 한 마리를 만들어 놓고 아이를 옛날식 포대기로 업었다. 아주 잠깐이니까 아이는 춥지 않을 것이었다. 서둘러 아이를 업어매고 한 손에는 쓰레기봉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아이는 내내 집에만 있다가 밖에 나온 것이 좋은지 업혀있는 두 다리를 휘뚱휘뚱 연신 흔들거리다 못해 기어코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신나 했다. 조금씩 제법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는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비친 자기와 나를 보고선 "엄마아~" 하고 부르며 씨익 웃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저렇게도 맑은 웃음을 내어주는 얼굴을 보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 한 번의 웃음이 짧은 외출의 수고로움의 몫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예상대로 칼바람이 부는 추운 밤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뛰기 시작했다. 아이가 추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좀 더 따듯하게 입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의 다급함과는 별개로 종종종 뛰는 움직임에 흔들거리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등에 매달려있는 아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천진함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번졌다.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 사이 아이가 내게 놀라움을 담아 소리쳤다.


"엄마아! 별얼~! 반딱반딱해! 별이야!"


세상의 모든 별을 발견이라도 한 듯 신기해하며 재잘거리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 나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도시에서도 별이 많이 보일 수 있나 싶을 만큼 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있었다. 아마도 무지 맑은 날이었겠지. 그렇게 우리는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노래가 시작되었다.


"반딱반딱 짜근 별 아듬답데 비치네..."


아이가 '작은 별'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손으로 별모양을 흉내 내며 불러주었던 노래, 아이와 장난치며 간지럽힐 때 불러주었던 그 노래를 아이가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까만 어둠 속에서 아이가 부르는 작은 별을 들으며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었다. 한 순간의 찰나를 붙잡아 영원히 그 순간에서 살 수 있다면, 난 이 밤을 선택하겠노라고 그리 말하고 싶었다.


순간 추위가 엄습했다. 발끝이 날카롭게 시려왔다. 내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외투도 입지 않고 나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아직 아이의 노래는 끝이 나지 않았고 밤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아이의 조그마한 발을 감싸 쥐고 걸음을 옮기며 아이와 함께 작은 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까만 겨울밤에 별빛보다도 더 찬란히 빛나는 나의 별을 등에 업고 그렇게 몇 분 간의 밤 산책을 하였다. 세상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로지 아이와 나, 그리고 별만 존재하는 그런 우주에 가닿는 기분이었다.


아득히 멀고 너무 깊이 어두워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저 광활한 하늘에 떠있는 별처럼, 깊은 슬픔에 잠겨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떨어지고 있던 것 같았던 그때의 내게 아이는 유일한 빛과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빛을 업고 있는 나 자신이 더 이상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래도 좋을 만큼, 모든 게 다 괜찮은 것만 같은 그런 밤이었다.





아이가 몹시나 그리워졌다. 시린 발을 두 손으로 꼬옥 감싸봤다.


모든 게 다 괜찮다고 느껴지는 그런 순간들은, 정말로 모든 게 다 괜찮아서 찾아오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한순간의 찰나가 가져다주는 그 괜찮음의 조각들을 가슴속에 넣고 그렇게 괜찮지 않은 날들을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의 무용한 것 같은 오늘의 하루도 나아감의 하루가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매일이 괜찮지 않을 날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며칠 후의 내 하루가 걱정이 되고, 그 며칠 후가 지난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초조하기만 하다. 내가 부여잡고 싶은 괜찮음의 한 조각은 무엇이 되어줄까. 그 한 조각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의 나날 속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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