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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Mar 30. 2023

봄, 당신을 삶의 의지라 부르겠어요

봄이 왔나 봄, 봄봄

그려볼 수 없었던, 차마 그려보지 못했던 따듯한 봄에 어느새 와있었다. 따듯한가 싶다가도 어떤 날은 날이 차가워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봄’이라는 계절 속에 있다는 거였다. 내 안에서 약동하는 삶의 미세한 리듬은 조금씩, 조금씩 알 수는 없지만 삶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려는 생명의 힘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나는 이를 삶의 의지라고 부르고 싶었다.



지난 삶의 전체가 겨울같이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시간 속에서 간간히 내게 사랑과 위안을 주었던 따듯했던 마음들은 삶의 봄날에 피워낼 꽃씨가 되어주었다. 혹독했던 시간이 만들어 놓은 삶의 결은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그 상처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볼 수 있었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그리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지나간 슬픔, 원망, 후회를 더 이상 붙잡고 싶지 않아 졌다. 이 또한 내 삶의 일부가 되어주었던,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게 해 준 아프지만 고마웠던 기억으로 남겨두었다. 두 손 가득 움켜쥐고 있던 힘을 풀어내고 나니 편안함이 찾아왔다.



나뭇가지의 끝이 통통하게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봄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의 훈풍과 더불어 때를 맞추어 피어내는 꽃을 보게 된다면,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좋을 것 같아 설렜다. 잎사귀를 내기도 전에 추운 겨울을 다 겪어내고 나서 내미는 첫 얼굴이 보송한 꽃이라니! 봄의 황홀함은 여기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꽃을 피워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꽃은 시작이라고, 혹독하게 시린 계절을 묵묵히 견뎌낸 꽃나무를 보면서 꽃을 피워냈기에 제 소명을 다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게 아니라, 소담하지만 화려한 시작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담아본다.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어렴풋이 알것 같다. 이번만 견뎌내면 괜찮을 거라고 나를 다독이며 살았었지만, 이번에 견디면 또 견뎌내는 방식으로 삶이 이어진다는 걸 지난날에는 몰랐었다. 삶의 경계를 짓는 일, 무례한 이들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일,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분별하여 사랑하는 일의 가치로움, 진심으로 따듯한 마음을 다해 그것을 나누는 일의 가치를 아는 것, 타인에 대한 진정한 배려 전에 자기 스스로에 대한 배려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이런 마음의 기반은 삶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게 만들었다. 견디는 삶과 살아가는 삶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봄을 삶의 의지라고 부르고 싶다. 거칠었고 시리도록 아팠던 시간이 지나간 뒤의 온화함을 봄꽃을 보며 마주한다. 어떤 해에는 꽃을 피우지 않기도 하지만 준비가 되면, 때를 만나면 피어내는 꽃처럼 그렇게 삶의 꽃을 기다려보고 싶다.


홀로 맞이하는 봄이지만, 내가 만났던 그 어떤 봄보다도 다정하고 스스로에게 따듯하다.


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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