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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Apr 25. 2023

네가 사는 그 집, 그래. 다 네 거야.

잘 부탁드려요. 주인님.

꾸미와 함께 지낸 지 이제 2주를 향해가고 있다.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다소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도 내게 '반려동물'이 생겼다는 것이 문득문득 생소하기도 하고, 이 작은 생명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아직 오지도 않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까지 짐작하는 걸 보니, 어느새 내가 녀석을 무척이나 애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온몸으로 반겨주는 꾸미는 졸졸 따라다니며 온몸과 꼬리로 내 다리를 휘감아서 스텝이 꼬이게 만들어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이 솜방망이 같은 고양이가 선사해 주는 걸거침은 구태여 더 불편함을 느끼고 싶게 만드는 귀여운 성가심이다. 마치 퇴근 후의 보상처럼,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몸짓이다.


소리 없이 다가와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고, 눈에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어디 있나 궁금하게 하고, 눈에 보이면 자꾸 쳐다보게 되어서 녀석에게 신경을 끌 수가 없었다. 이제는 갑자기 다리에 와서 부비적거리는 꾸미에게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되었고, 눈에 안 보이면 어디쯤 있겠구나 짐작하며 내 나름의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와는 상반되게 꾸미는 진작 적응을 마치고 아무 데서나 배를 깔고 철퍼덕 잘도 자고, 배를 발라당 까고 누워서 허공에 꾹꾹이를 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편안하게 잘 지내는 듯 보인다.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며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꾸미를 보고 있으면서, 꾸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냥 예뻐 보이는 매직을 발견했다. 물론 꾸미를 키우는 집사의 애정 어린 시선 때문이겠지만, 문득문득 꾸미가 마치 고양이 인형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는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 채로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오늘은 그런 날들에 찍어놓은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동시에 꾸미의 집안 평정기 같은 이야기 이기도 하다...^^




새초롬하게, 야무지게 선반에 앉아있는 꾸미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아직 선반에 책을 다 꽂아두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빽빽하게 꽂아 놨다면 만나지 못했을 장면이니.


마치, 어디 놀러 가서 "꾸미야, 저기 책 옆에 앉아서 여기 좀 봐봐!." 하며 찍어놓은 사진 같아서 혼자 킥킥거렸다. '냥테리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었다.



빼꼼 얼굴을 내미는 꾸미는 사진 각도를 아는 것 같다. 자그마한 숨숨집 안에 들어가 있는 조그마한 꾸미를 보면서 언젠가는 이 숨숨집이 꾸미에게 작게 느껴지는 그런 날도 오겠지?라는 상상을 해본다.


가끔은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을 곳에 등장하여 나를 뜨헉!! 하게 놀라게 하곤 하지만, 들어가면 곤란할 곳에 들어가 있어서 나를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하지만,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라 했으니 이해해야 한다. 그래, 그래야만 한다. 나는 이해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출근 전 씻고 나왔을 때 싱크대 안에 들어가 있는 꾸미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 당혹감은 꾸미의 냥육일기의 하이라이트로 남을 것만 같다.(근데... 고양이는 물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말로만 듣던 물냥이가 너니...?)


고르고 골라서 마련한 꾸미의 숨숨집 1호에 꾸미는 좀처럼 입주를 하지 않는다. 숨숨집의 옥상(?)만 종종 이용해주시고 계시다. 숨숨집 1호는 지극히 집사의 취향이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고, 아쉬움을 만회하고자 숨숨집에 냥이들이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캣잎가루를 뿌려놨다가 극도의 흥분상태의 꾸미만 만나보고... 당혹감만 남긴 채... 여전히 입주는 하고 계시지 않는다. 내가 들어가서 누울 수 있다면 내가 잘 쓸 텐데. 흠...


꾸미는 몸이 낑기는 딱 저 자리에 눕는 걸 좋아한다. 격한 사냥놀이를 마치고 느려진 몸을 이끌고 애정하는 자리에 누워 쿨쿨 자고 있었다. 그런데 실눈 뜨고 꾸미를 바라보니 마치 의자 또는 식탁의 그 무엇처럼 보여서 풉하고 웃음이 났다. 꼬리마저 길게 일자로 쭈욱 뻗어서 라인이라도 맞춘 것처럼. 꾸미 털 색깔을 볼 때마다 식빵이 생각났는데, 나무의 색깔도 닮았구나.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더 좋은 건가.


집주인 다운 자세와 포스. 저 구석지고 폭신한 자리를 좋아할 거라 예상했는데, 실제로 저러고 있으니 갑자기 언니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는 네 집을 산 게 아니라 꾸미 집을 산거 같아."



우리 함께 토토로도 봤다. 꾸미야, 근데 재밌어???????


빼꼼, 빼꼼. 처음 집에 데려온 날 찍은 사진인데, 2주 사이에 폭풍성장한 게 보여서 아기들의 성장속도에 감탄, 또 감탄을 했다. 처음 온날부터 한 삼일 은신처로 사용하던 책장은 이제 들어가지도 않고 있다. 책장 속 빼꼼 꾸미는 사진으로만 남았다. 이제 은신처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나는 숨숨집을 살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아직 비어있는 책장에는 무려 꾸미를 위한 잠재적 숨숨집 5채가 마련되어 있었고, 꾸미는 알아서 입주를 했다. 꾸미는 도대체 집이 몇 개야...?? 한동안 숨숨집은 사지 않을 예정이다.



몽실몽실한 꾸미의 뱃살을 만지작거릴 때면 행복이 차오른다. 그림으로만 봤던 고양이 발바닥을 눌러보는 건 방금 해봤어도 또 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거였다. 겨우 2주 사이에, 내게 넘치게 많은 사랑을 줘버린 꾸미를 보면서 어쩜 이렇게 천사같이 예쁜 고양이가 왔을까 싶다. 나도 꾸미에게 그런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집사였으면 좋겠다. 너무 과분한 걸 바라는 걸까.


지금도 글을 쓰는 동안 발등에 기대어 새근새근 자고 있는 꾸미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이제 겨우 2주인데. 앞으로의 나날들은 어쩌려고 이렇게나 좋을까 모르겠다. 고양이는 서열을 정한다던데. 이미 꾸미는 알고 있겠지? 자기가 서열 1위라는 거. 흠...♡


집주인 꾸미씨. 서열 1위인 꾸미씨.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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