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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May 15. 2023

산책

생을 의욕하는 간절함으로

산책(散策)이란 단어에 걸음은 없었다. '얕은 생각들을 흩뿌린다'는 의미를 가진 산책이라는 글자는 천천히 걷는 행위의 결과로, 그것도 운좋게 얻을 수 있는 '잡념의 상실' 자체가 행위의 이름이 되었다. 어떤 단어들은 설명하는 것 대신 행위의 본질을 드러내기도 한다.


목적있는 산책이라든가 분주한 산책이라든가 하는 말들은 산책이란 단어와 어울리지가 않는다. 무작정 걷고 싶어질때에는, 걸어야할 이유도 목적도 분명하지 않았지만 걷고나면 매번 그 걸음들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먼지를 털어내는 모양을 닮은 가벼운 발걸음들은 마음에 붙어 있는 생각의 조각들을 날려보내주었다. 그렇게 생각을 흩날리는 조금이거나 꽤나 오래걸릴지도 모를 시간이 지나가면, 생각의 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묵직한 덩어리들이 표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보폭으로 걷다보면 어느새 걷고 있다는건 잊어지고야 만다. 자신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만나는 지점이다. 그곳에서는 다루어야할 것들에 대한 거라고, 이번에는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없는 말을 내게 걸어온다. 이때 묻는 질문들은 대부분 삶에 관한 것들이었다.


살아나가는 삶은 어디를 향해 걷는지, 지나온 길은 어땠느냐는 스스로에게 삶에 대한 답을 요구받는다. 두발을 분주히 움직이는 일로 삶의 분주함을 잠시 뒤로 물러놓고 나서야, 비로소 내안의 작은 목소리들이 어설피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괴로울때면 내면의 답을 구하고 싶어 하염없이 걷고 싶었는지도, 무엇때문인지 모를 삶의 공허함에 대하여 가장 날것의 질문을 받고 싶어 걷고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묻기 싫었던 질문 또는 대답하기 싫은 것들에 대하여 외면하지 않도록 산책은 내면을 직시하게 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향하지는 않았으나, 발걸음을 그리로 이끈 것도 아니었지만 걷다 보면 도달하고야 마는 그런 곳으로.


그런 때에는 생을 의욕하는 간절함으로 걸음을 옮겨야 하였다. 산책하는 삶이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명상적인 삶이 아닐까 생각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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