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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Feb 21. 2022

유일했고 유일하고 유일할 글쓰기

이렇게까지 좋아하는줄 몰랐는데요

나를 알고자 하는 열정의 일환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생각해봤다. '평범한 것이 최고'라는 신조로 살아가던 나에게 나도 몰랐던 취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어 노트에 끄적였다. 좋아하는 색도 모르겠고, 좋아하는 음식도 그닥 없었으며, 취미라는 것도 딱히 없는 나란 인간과 마주했을 때 사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참 심심하고도 무미건조한 인간이지 싶었다.


도대체 나는 어찌 살았길래 이렇게 나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는 게 많을까. 다른 사람들의 취향은 꿰뚫고 있어서 '역시 센스쟁이!'라는 칭찬을 자주 들었지만 나에게는 '센스 꽝!!'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정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몰라서 검색창에 이렇게 검색을 해봤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



꽤나 오랫동안 이 검색어를 두드렸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말하는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부지런히 각자의 방식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중에서 어떤 이가 말했다. 어렸을 때의 내가 하던 일들 중에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일일 거라고...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기쁨과 설렘도 있지만, 대부분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경험하는 감정은 고요함과 잔잔함이라고.


무릎이 탁! 쳐지는 말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이라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설레서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그 일만 생각나는 정도가 되어야지 좋아하는 일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매일매일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서 잠도 못 자게 하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평온함과 잔잔함이라는 레이더를 가동하고 어린 시절부터 내가 지금까지 손 놓지 않고 쭈욱 하던 일들을 떠올려 봤다.




- 독서

- 노트와 펜

- 글쓰기


신기했다. 나에게도 있었다!


나의 생활양식 속에 완전히 녹아 있어서 내가 이것을 좋아하고 말고 생각할 것도 없이 내 삶에서 당연하게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들이었다. 그동안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존중해주지 못한 삶의 방식에서 기인한 나의 착각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도 된다는 허용을 내게 허락하지 않았기에 알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내 삶에서 나를 엿보게 된 순간이랄까.



나는 늘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항상 무언가 읽을 게 없으면 불안하고 허전한 글자 중독자일지도 모르지만 영상을 보는 것이 나는 힘들다. 쉬지 않고 재생되는 영상은 중간중간 멈추고 생각해볼 겨를 없이 재생되기에 내용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느낌이 들고 내가 영상을 보는 것인지 영상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인지... 미묘한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는 나에게 영상보다는 책을 읽는 중간중간 '책멍'할 수 있는 글자가 좋았다.


글자는 빈 여백 위에 모여 내용을 전한다. 그리고 글자가 채워진 공간 주변으로도 여백이 있어서 나의 생각과 감정, 질문들을 적어놓기도 좋다. 하나의 책이 하나의 독서 노트, 생각 노트로 쓸 수 있게 되어 다시 읽었던 책을 읽을 때면 같은 책을 다르게 읽고 받아들이는 나를 만나게 된다. 이미 읽었던 책에서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노트와 찰떡궁합으로 맞춰놓은 짝꿍 펜이 항상 함께 있다. 노트는 종이의 결이 일어나지 않아야하며 펜의 잉크가 균일하게 퍼질 수 있는 종이어야 하고, 펜은 흐름이 적당해야 하며 펜촉도 변함없이 일관된 굵기와 부드러움을 유지해주어야 하기에 나에게 있어 종이와 펜은 까다롭게 고르고 고르는 고집을 발동시켜주는 아이템이다.


이런 나의 종이와 펜 사랑을 보고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내가 무인도로 떨어진다 해도 종이와 펜만 있다면 하나도 안 심심하고 잘 살고 잘 놀 수 있는 물건들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고집을 유지할 예정이다. 그만큼 애정 한다. 매우 많이.




어린 시절 문구점에서 자그마한 6공 다이어리를 사서 예쁜 속지를 껴놓고 좋아하는 문구를 적어놓기도 하고 친구들과 교환한 편지를 넣어놓았었다. 차츰 커가면서 다이어리는 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책에서 읽은 문구들을 정성스럽게 옮겨 적기도 한다. 그 문구들이 스쳐 지나간 마음의 결을 기록해 놓는다. 때때로 오래된 노트를 다시 읽어볼 때면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과 재회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 내가 반갑기도 하고 아득하기에 그립기도 하다.


나는 책을 읽고 노트에 펜으로 무언가를 늘 쓰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고 이것이 나에겐 하나의 놀이와도 같았다. 돌이켜보니, 초등학생 때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대부분 최우수상을 받았다. 상을 받으러 월요일 아침 조회에 구령대에도 참 많이 올라갔었고, 고등학생 때는 논술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코로나 관련 에세이를 제출해서 우수상을 받았었는데, 그러고 보니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서도 외부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일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따라가다 보니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 듯하여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딱 내 스타일은 아니어서... 이것도 아닌 거 같고, 저것도 아닌 거 같은데... 하며 헤맬 필요가 없었던 거다.


나의 다이어리!  좋은 것은 나누는 편입니다 :)


이미 삶 속에 녹아 있었다. 이미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살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위로와 위안을 얻고 그 힘을 발판 삼아서 내 삶을 살아왔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새로울 것이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답게 살아오고 있었다. 내가 살아온 흔적을 따라 살아가고 있었고 오늘의 나의 모습이 미래의 나의 모습과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


책을 통해 사유의 범위와 깊이를 넓히고 나를 돌아보기 위한 생각의 재료들을 얻는다. 글쓰기는 그러한 생각들을 풀어내는 작업이다. 또한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나를 알아봐 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돌보는 일인 동시에, 마음의 여유공간을 넓혀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나만 바라보던 시야에서 타인을 향한 시선도 열어줌과 동시에 그들을 헤아려볼 다정함도 발견하게 해 준다.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일한 일이었다.


글쓰기는 나의 각진 모퉁이들을 글로써 깎아내고 다듬어 맨질맨질하게 만들어 주었다. 글쓰기는 내면의 고요함이라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다. 나를 깨우는 방법으로써 글쓰기는 언제나 유효하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나를 발견한다.


또한 다양한 글 속에 묻어 있는 다른 이들을 만나는 일이 참으로 반갑고 즐겁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내어놓은 글들을 읽다 보면 마치 그 사람과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글로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일, 즐거운 일, 멈출 수 없는 일이 바로 글쓰기이다.

도대체 이걸 알기까지 왜 이리 오래 걸렸을까.

이제라도 알았으니 진득하게 오래도록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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