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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Apr 07. 2022

교회 아줌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는 컵라면이 아프다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 아줌마가 나를 보는 그 눈빛에 더 이상 나는 교회에 갈 수 없었다. 가기 싫었다.

어린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은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커서 정말 정말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어른으로 자라고 싶다는 생각보다도 되지 말아야 할 어른의 모습을 먼저 생각하게 만들었다.






8살, 9살의 어린 자매는 새벽 5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시계 알람을 새벽 4시 30분에 맞춰놓고 잠에 들었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엄마는 우리를 떠나고 아빠는 우리 자매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지라, 우리 자매는 하느님께 기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새벽 5시 예배를 마치고 나면 먹을 수 있었던 따듯한 컵라면 때문에 하느님께 기대고 싶었던것 같다.


우린 배가 고팠고 외로웠고 누군가가 차려주는 따듯한 음식이 그리웠다. 비록 그게 인스턴트 컵라면 하나일지라도 그 당시 우리에게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야 할 충분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허기진 시절이었다. 허기진 몸과 마음이 새벽 예배에 다녀오고 나면 달래지는 것 같았다.



추운 겨울 새벽, 털모자를 눌러쓰고 서로 말도 하지 않은 채 우린 묵묵히 교회로 갔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가 아닌지라, 솔직히 목사님이 말하는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해할 수 있었던 내용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사랑받는다는 것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엄마도 우리를 떠났는데 이 하느님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신다니 기대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새벽기도에서 하느님께 빌었다. 다시 엄마가 우리를 보러 오게 해 달라고. 정말 착한 어린이가 될 테니, 제발 엄마랑 같이 살게 해 달라고.



새벽 예배가 끝나면 따듯한 컵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아직 물이 부어지지 않은 컵라면을 바라볼 때는 설레기까지 했다. 그 순간이 참 설레고 즐거웠다. 이 컵라면을 먹으면 아침에 무엇을 먹고 학교에 가야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보다도 컵라면이 정말 맛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수고로움이 맛있는 컵라면으로 보상받는 시간이었다.


커다란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물을 부어주시는 아주머니가 빨리 내 컵라면에 물을 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컵라면에 물이 부어질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물을 부어주시는 아주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리고 곧 내 컵라면에는 물이 부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설렜던 내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그 라면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뜨거운 물이 내 마음에 부어져 화상을 입힌것 같았다. 쓰리고 화끈화끈하고 아팠다.



8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 아줌마의 눈빛에 담긴 벌레 보는 듯한 경멸의 감정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경멸'이라는 단어조차도 몰랐지만,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고 어른들이 무섭게 보였다.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에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박받는 느낌이었다.


그날이 새벽 예배에 참석한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나는 그 당시에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인상을 풍기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종종 엄마가 우리를 만나러 오시면 언제 씻었냐, 왜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을 돌이켜보면, 아마도 우리 자매의 꼴이 영락없이 '엄마 없는 티'가 줄줄 나는 돌봄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었나 보다. 그러나 시기적절한 복장과 깔끔한 위생상태를 8살이 스스로 갖춰내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 교회 아줌마가 나를 바라봤을 때 내가 그런 모습이었으려나 추측해본다. 너무 형편없어 보이는 아이가 와서 먹는 컵라면에 물을 부어주는 일이 그리도 싫은 일이었을까도 생각해보았다. 아마 새벽 예배를 돕는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이셨을 텐데, 그날 그 아이에게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셨을까 그 아줌마가 너무 미웠고 나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8살인 나에게 '어른'이란 존재는 그때까지는 성숙하고 불쌍한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그 아줌마는 너무 나쁜 아줌마였다.


나는 절대로, 절대로 저 아줌마 같은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유난히도 나는 어린 아이들을 볼 때 연민의 감정이 차오르곤 한다. 사실상 나의 묵은 감정에 대한 투사이다. 어려워 보이는 아이들을 볼 때면 어린 날의 내가 떠올라 오버랩되곤 한다.


그리고 나에게 묻게 된다.


나는 내가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모습의 어른이 되었는가.






아이들에 대한 어른의 도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나의 자식에게는 부모로서의 어른 역할을 해야 한다지만, 지난날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 묻는다.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망설이며 실행에 나서지 못했던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가 이런 마음을 곧 접었다. 그 교회 아줌마가 던진 눈빛에서 주눅 들어있던 어린 '나'에서 이제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볼 수 있는 '어른'으로 이제야 바뀐 듯했다. 지금의 시작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지 않았다. 오래 지속했으면 하고 나에게 바란다.



그 새벽 예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엄마와 다시 살게 해 달라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어떤 존재로 표현해야 마땅할지 모르겠으나, 나의 삶에 신이 함께 해주시며 나를 돌봐주심을 알고 있다. 그분의 따듯한 사랑 속에서 내가 자랐다고 믿는다.


어쩌면 교회에서 나에게 경멸의 눈빛을 던진 그 아줌마도 신이 보낸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도움이 필요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라고... 나의 거친 시절의 기억을 경험 삼아 내가 그들에게 따듯한 어른으로 아이들을 보듬어 줄 한 사람의 역할을 해보라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쩐지, 지난날 나의 피하고 묻어버리고 싶었던 기억들을 통해 울고 있던 어린아이에서 그 아이를 달래보고자 하는 어른으로 나 자신이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그 슬픔 속에 나를 놓아두고 싶지 않아 졌다. 차가운 마음을 겪어봐서 따듯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였을까?


이제 그 교회 아줌마 그만 미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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