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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Jul 03. 2022

나의 해방 일기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고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중독자처럼 무언가를 읽고 쓰지 않으면 불안해 하던 내가 손에서 책 펜을 내려놓게 되었다. 삶이 일시정지된 느낌이었다.


세상이 마치 진공처럼 느껴졌고 그 속을 부유하는 먼지처럼 나 자신이 여겨졌다. 부유하는 것만이 먼지의 존재 이유인 것 마냥, 나는 그저 숨을 쉬고 살아 있는 임무에 집중해야 했다. 죽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이 나를 세상에 붙들어놨다. 살아있는 한 살아야 한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살기 위한 선택을 했다.



9년간의 결혼생활을 마치는 과정은 잔잔했다.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는 과정 중에 내뱉은 말들은 내게 상대방에 대한 무슨 감정이 남아있는지 확인시켜주었다. 내가 경험해본 모든 종류의 감정을 소진해보았고 내가 가진 이해의 한계 영역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옳고 그가 그르다 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옳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니... 그렇게 우리는 결혼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브런치에 남편이 결혼을 후회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브런치에 쓴 글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남편이 던진 후회의 말들에 속이 상했던 내가 남편의 따듯하다고 생각했던 기억들로 달랬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만 완전히 나를 설득하는데에는 실패했다.


난 늘 이런 방식이었던 거 같다. 나는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은 저렇게 해도 그래도 따듯한 사람이라고 나를 스스로 설득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나 상담 선생님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설득하려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자기 내면이 이미 알고 있는 그 마음을 따라가라고 하셨다.


각자의 옳음을 존중하고자 했던 태도는 '가족'이 가진 최소한이라는 애정의 울타리 안에서 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절박하게 요청한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었다. 그때에 그가 내둘렀던 이유에 나는 거짓으로 수긍했다.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절실하게 용기 내어 말했던 부탁은 '안 되는 일'이 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되는 일'이 될  있다는 사실 희망의 끈을 풀어져 날아가게 했다. 그 끈이 그에게 걸어본 마지막 기대였다는걸 몰랐었다.



나는 그에게 '가족'이 아니었다. 가 남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서로에게 다를 수 있다면 어디까지 다를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가족은 삶의 어려움을 겪는 그 순간들을 같이 버텨내고 함께 걸어가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나에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미리 선을 그었다. 그 내용들은 모두 하나의 메시지였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 그에게 가족은... 아내는 어떤 의미였을까. 확실한 것은 더 이상 그는 내게 가족의 의미를 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너무 어렸다. 아이에게 결핍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니까 버텨내야 한다고, 엄마는 강하니까 할 수 있다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서 날이 선 시간들을 버텨냈다. 그 말의 칼날에 마음이 베이는데도 모르는 척했다. 아픔이 느껴지면 아프지 않게 마음속 깊은 곳에 잘도 숨겨놓곤 했다. 더 이상 숨겨 쌓아 둘 수 없을 때까지.



우울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매일 상처받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당하며 상한 마음을 약을 먹으며 버텨내고 있었다. 문득 내가 뭐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심정이었다. 곧 다시 빠져버리고 말 물을 채우는 일은 내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깨진 독의 구멍을 막아줄 두꺼비가 없었다. 내가 스스로 나에게 그 두꺼비가 되어주어야 했다. 



숱한 고민의 시간들을 거치는 동안 불안과 우울약은 늘어갔고 매일 새벽잠이 깬 상태로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먹는 일조차 버거워졌다. 앙상한 가지처럼 말라갔다. 삶의 힘듦은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늘 따라다니는 하나의 옵션과도 같은 것일까... 답이 없는 질문이 머리를 맴돌곤 했다.



빈집에 홀로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가 떨어지는 건 너무 아플 거 같으니 차라리 목을 매달고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위험한 신호였다. 이대로 더 버티다가는 일을 내도 낼 것 같았다. 우울은 단순한 무드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병이 깊어지면 이렇게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든다. 컨트롤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병'이라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선택을 향한 나의 마지막 질문은 '아이에게 삶을 포기한 채 먼저 떠나버린 엄마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함께하진 못하더라도 살아있는 엄마로 남을 것인가'였다. 죽지 않기로 한 다짐과 함께 아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줄 수 있게 살아있어야 한다는 그 마음이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해 주었다. 이제 더이상 아이때문에 나를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 너무나 어려서 이혼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는 엄마가 회사에 가야 해서 다시 예전처럼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화를 하면 보고 싶다고 영상통화로 바꿔하자고 이젠 스스로 제안을 할 만큼 컸다. 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마다, 아이의 해맑음을 볼 때마다 울컥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간신히 눌러 삼켜 댔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오늘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물어본다. 모든 것이 나의 손을 타서 해주던 일들이었는데 이제는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매일을 그러한 중압감과 모멸 속에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남편 잘 만나 시집 잘 갔다는 동네 엄마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속에서 차오르던 분노를 이제는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여전히 세상이 진공같이 느껴진다. 나의 의식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그러나 정처 없이 떠도는 그런 느낌에서 지금은 자유함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전히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 못 이루는 날도 있다. 나를 좀 쉬게 두고 싶다. 아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을 삼켜야 하지만, 미안함과 죄스러움 때문이라도 나는 잘 살아내야 한다. 훗날 아이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해보려 한다. 내가 아이의 엄마인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잘 살아내고 싶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소원이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스스로에 대한 추앙은 나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리고 그 해방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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