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지지 않는 아픔과

불에 데이지 않는 마음!

by 천재손금

"빠! 빰~ 빠!! 화재출동! 화재출동!"


(119 상황실) "○○ 소방서 □□ 지역 화재 출동하세요.
모텔 옆 단독주택에서 화재 발생, 검은 연기와 큰 불꽃 목격됐다는 신고자 유언입니다. 출동대는 지휘차, □□펌프…"

시곗바늘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심장이 덜컥,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늘 그렇듯, 새벽에 일어나는 출동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흔들었다.
익숙해질 리 없는 무거운 통증이, 몸속 어딘가를 쿡 찔렀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차고로 달려갔다.
방화복 하의를 단숨에 끌어올리고 지휘차에 올랐다.
스타렉스를 개조한 지휘차.
운전요원과 지휘대장이 앞 좌석, 안전팀장과 통신 담당자가 뒷좌석에 앉았다.

차량이 출발하자 방화복 상의를 걸치고 장비를 챙겼다.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상황들은, 머릿속을 빠르게 돌아가게 했다.
화재의 크기, 번질 위험, 건물 내 요구조자 여부—
그 어느 것도 가볍게 들을 수 없었다.

현장까지는 멀었다.
하지만 새벽 도로는 비어 있었다.
속도를 올릴수록, 마음은 점점 더 조여들었다.

(지휘차) "상황실, 여기 지휘차. 동일 신고 건수 몇 건인지 유언 바람."

(상황실) "신고 건수는 1건입니다. 사팔지 옆 모텔에서 나가는 사람이 신고했으며, 추가 신고는 없습니다.
구름(연기) 다량, 불꽃 크다는 유언입니다."

신고가 1건.
조금은 안심할 법도 했지만,
구체적이고 생생한 신고 내용이 오히려 긴장감을 키웠다.
텅 빈 도로를 내달리면서도, 가슴은 더욱 세게 조여왔다.

(선착대) "□□펌프, 현장 비착. 잠시 후 상황 유언하겠음."

선착대의 도착 무전.
조금이나마 희망을 걸었다.


"우리 센터 독점 가능" 무전이 오길 바랐다.


그러면 돌아가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선착대) "사팔지 건물 전소 중, 검은 구름 다량 발생.
불꽃 크고, 내부 진입 불가. 원거리 방수 예정.
소화전과 상단 거리 이격돼 있어 추가 물탱크 차량 요청합니다."

(지휘차) "선착대 47. 상황실, 인접 관내 물탱크 차량 및 고성능 차량 추가 비발하고, 한전에도 출동 요청 바람."

(상황실) "47."

순식간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차량 안에 흐르던 농담은 사라졌고,
침묵만이 바퀴 소리 위에 겹겹이 쌓였다.

(상황실) "지휘차, 사팔지역 관계자 전화로 확인한 결과,
해당 주택에 00세 노인 한 분 거주 중이라고 합니다."

(지휘차) "47! 선착대, 해당 건물 00세 노인 1명 거주 중.
대원들은 개인 보호장비 철저히 착용하고 인명 검색 실시 바랍니다."

(선착대) "47! 잠시 비기!"

무전기 너머로 흐르는 긴박함.
차량 안에 흐르는, 고요하지만 숨 막히는 압박감.
서서히, 그리고 분명히,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짙어졌다.

(선착대) "주택 12시 방향에서 6시 방향으로 불 번지고 있음. 7시 방향으로 내부 진입해 인명검색 예정.
추가 물탱크 차량은 마을 진입로 협소로 인해 진입 불가.
수관 끌어 보충 바랍니다. 46?"

(지휘차) "47! 인명검색 철저히 하되 건물 붕괴 등 위험요소 발견 시 대원 안전 최우선 바랍니다. 추가 물탱크 조치는 유언대로. 지휘차 도착 10분 전입니다."

도로는 한없이 비어 있었지만,
우리가 가야 할 거리는 여전히 아득했다.
숨을 죽이며, 가슴을 조이며, 우리는 달렸다.

도심을 완전히 빠져나와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이따금 스쳐 지나던 차량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거리는 오히려 더디게 느껴졌다.

모텔 간판들이 희미해져 가는 새벽빛 속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 순간, 무전이 다시 울렸다.


(선착대) "지휘차! 여기 선착대장…"


목소리가 달랐다.
숨소리 하나, 움직임 하나.
차량 안의 모든 것이 정지했다.

(선착대) "주택 내부에서 요구조자 한 명 발견… 망자 추정…"

(지휘차) "주택 내부에서 요구조자 한 명 발견. 망자 추정. 무전 내용 정확한지 확인 바람."

(선착대) "47."

(지휘차) "추가 요구조자 있는지 사사(조사) 바람."

(선착대) "47."

5분을 더 달렸다.
차량 안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지휘차) "상황실, 지휘차 현장 비착! 지금부터 지휘단장이 지휘함."

(상황실) "47."

차에서 내리자 싸늘한 새벽 공기 속에 화재 현장의 열기가 끈적하게 감돌았다. 추가 물탱크 차량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거미줄처럼 엉켜 뻗은 수관들이 주택을 에워싸고, 사방에서 물줄기를 뿜어냈다.



잔불은 꺼질 듯 말 듯 끈질기게 살아남으려 했다.
그 앞에서 물러섬 없이,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싸웠을 대원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들은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를 뚫고, 이 작은 불꽃 하나까지 꺾기 위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물이 닿는 곳은 순식간에 하얗게 식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숨죽인 불씨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주택 외부를 돌며 건물 상태를 살폈다.
오래된 벽돌 조적,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2/3 이상 꺼져 내린 천장. 불길이 휩쓸고 간 흔적은 처참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한 어르신이 말을 걸었다.

"새시 양쪽에 벽돌로 틀을 올리고,
슬레이트 얹은 건물이야."

헤드라이트 불빛 아래 비친 주택은,
내력벽도 없고 서까래도 없는,
언제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움을 드러냈다.

나는 곧장 지휘단장에게 보고했고,
즉시 내부 수색을 중단하고 대원들을 철수시켰다.

대원들이 빠져나오자, 숨어 있던 불씨들이 다시 꿈틀댔다.
불길은 생명을 얻은 듯,
짧고 거칠게 살아났다.

그러나 그 기세는 예전 같지 않았다.
이미 꺾인 불꽃이었다.

굴삭기(포클레인)는 이미 대기 중이었다.
우리는 지붕을 걷어내어 내부의 열기와 연기를 배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택 안에는 아직 고인이 남아 있었다.
조심스럽고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

유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고인이 계신 7시 방향이 아닌 1시 방향 지붕을 걷어내기로 했다.

대원들의 철수 여부를 수차례 확인했다.
관창을 들고 대기하는 진압대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굴삭기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곧 굴삭기 기사가 거대한 바가지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지붕을 걷어내는 그 순간,
답답했던 내부에 숨구멍이 트이자,
잔불은 잠시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소화수에
짧은 비명을 지르고 사그라졌다.

슬레이트 석판 2/3를 걷어낸 후,
불은 완전히 꺼졌다.

잠깐 숨을 고른 대원들이 주택 내부를 수색했다.
뜨거운 재와 꺼진 숯더미 사이를 조심스레 뒤졌다.

그리고,
고인은 주택 7시 방향, 베란다와 같은 작은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등받이 의자에 기대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위에 올린 채.

마치 고요히,
아무런 고통도 없는 곳에서 잠든 듯한 모습이었다.

주택 내부를 수색했지만, 불과 연기를 피해 도망치려 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고인은 그저 조용히, 자리에서 떠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화재 이전에 이미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스치듯 지나갔다.

사망 원인에 대해 우리는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
경찰-소방 합동 화재조사관들이 정밀 분석을 통해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우리는 다만,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움직였다.

소방 통제선은 단단히 둘러쳐졌다.
구경꾼들은 발끝만 들썩였고,
급히 달려온 유가족들도 통제선 너머에 멈춰 섰다.

휘날리는 재, 매캐한 냄새,
그리고 새벽 공기를 찢는 듯한 오열.

소방대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이날 함께 현장에 있던 많은 대원들이,
한동안 이 장면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것임을.



시간이 흐르자
과학수사대, 경찰, 관계기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현장은 북새통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소방대원들에게는,
이제 더 할 일이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우리는 철수를 결정했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 나오며,
나는 담벼락에 기대어 오열하던 한 여성의 모습을 보았다.

유가족이었을 것이다.

어깨를 들썩이며 숨죽여 우는 모습.
어디에도 부딪히지 못한 슬픔이 담벼락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마음속으로 깊은 애도를 전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이 평안하길.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이 부디 언젠가는 아물 수 있기를.
그런 조용한 기도를, 이 마음으로 바쳤다.

화재출동으로부터 약 4시간 30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복귀하는 차량 안에서 우리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퇴근 후 무엇을 할지,
어디가 맛집인지.

그러나 이야기들은 곧 끊겼고,
운전요원을 제외한 모두가 조용히 잠들었다.

소방서로 복귀 후,
나는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퇴근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은 여전히 새벽 화재의 흔적에 붙들려 있었다.

생전 일면식도 없던 고인의 죽음,
그리고 그 가족들의 절규.

묵직한 먹먹함이, 내 숨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

나는 살아 있었다.
오늘도 숨을 쉬고,
작은 계획을 세우고,
맛집을 찾아갈 수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며칠 전,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고민과 스트레스는,
바닷가에 부서지는 모래알처럼 사소했다.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
깊은 상처를 남긴 말들,
끝없는 고민과 방황 따위는,
이렇게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이 단순하고 위대한 사실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였다.

행복하게 살자.
즐겁게 살자.

수없이 되뇌며,
나는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씻지도 않고 돌아온 나를 향해
걱정스레 잔소리를 쏟아내는 가족들에게,
나는 한 마디만 남겼다.

"갔다 왔어~"

그때, 아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 울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아이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을 살아낸 나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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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들려주는 소방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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