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대개 눈길을 주지 않는 공간이 하나 있다.
붉은 선으로 구획된 자리,
‘소방차 전용 주차 구역’이라고 적힌 바닥.
차 여러 대가 설 수 있는 크기의 이 공간은,
사실 그 어떤 차량도 주차해선 안 되는 자리다.
비워두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
소방차가, 불이 나면 가장 먼저 도착해야 할 자리다.
얼마 전, 이 구역에 대한 행정지도를 나갔을 때였다.
불법 주차 차량의 차주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소방차만 여기 대야 한다는 법이 있어욧?!”
그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예, 있습니다.”
‘소방차 전용구역’은 소방기본법에 의해 지정된 절대 주차 금지 구역이다.
특히 아파트 단지의 경우, 이 구역은
사다리차의 무게 하중과 각도, 고정 지지대(아웃트리거)까지 고려한 위치로 설계된다.
30톤짜리 장비가 단단히 버텨야 하는 곳.
소방차가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된 자리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차를 대는 사람들이 있다.
“잠깐이면 괜찮겠지.”
“지하주차장이 공사 중이잖아.”
“다들 대는데, 왜 나만?”
실제로 최근, 한 아파트 단지에서
지하주차장 보수공사가 장기 진행 중이었다.
관리사무소는 주차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설명하며,
소방서에 단속 유예를 요청했다.
우리도 그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불가”라는 답변서를 보냈다.
법은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불편함을 만든 사람이 아닌데,
우리는 불편함을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단속이 나가면 항의가 쏟아지고,
현장에선 때때로 얼굴을 붉힌다.
“지하 공사 중인 거 알면서 왜 이래요?”
“말 좀 통하게 합시다. 실적 채우는 겁니까?”
“법이 그렇게 중요해요? 지금은 사정이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설명을 반복한다.
그러다 문득, 이 일이 누굴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우리가 정작 지키려는 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
한 장면을 떠올린다.
몇 해 전,
진입로에 차량이 가득 들어선 어느 아파트 단지.
소방차는 멈춰 섰고,
우리는 장비를 들쳐 메고 계단을 뛰었다.
화재층까지는 3분 거리였지만
우리가 현관에 도착한 건 10분 뒤였다.
그날의 얼굴.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사람의 눈동자.
이미 늦었다는 걸 직감했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공간이 비어 있었다면
우리는,
좀 더 빨리 도착했을 것이다.
지금도 민원은 계속된다.
억울함도, 사정도 이해한다.
우리 역시 불편함 속에 서 있다.
하지만 불은,
그 어떤 설명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번, 이 자리를 지키기로 한다.
소방차 전용 주차 구역.
그 자리는 비워져 있을 때,
가장 안전한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