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그 어렵고도 조용한 기준에 대하여
오늘 회의 끝나갈 즈음, 어딘가에서 늘 나오는 그 말이 또 나왔다.
말투는 마치 세상 다 살아본 사람처럼 느긋했고, 표정엔 이상한 여유가 묻어 있었다.
누구도 틀렸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저게 중용일까?
말은 그럴듯했지만, 마음은 묘하게 불편했다.
‘중간만 가자고? 그게 정말 지혜로운 태도일까?
모나지 않은 게 곧 잘 사는 걸까?’
회의가 끝나도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엔 그냥 넘기려 했지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인터넷에 ‘중용 뜻’을 검색했고,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그땐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쯤으로 이해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중용을 ‘중간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불편했던 건,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말은 분명 그럴듯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엔 자꾸만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걸까?
멋진 말은 알겠는데, 실제로는 어떤 태도를 말하는지 잘 와닿지 않았다.
게다가 자꾸 떠오르던 그 말—‘중간만 가자’—과 자꾸 부딪혔다.
중간만 가는 게 정말 중용일까?
생각해 보면, 보통 사람이라면 다 그렇다.
상황이 애매할 땐 일단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안전하다.
괜히 나섰다가 손해 보는 것도 싫고, 괜히 튀는 것도 부담스러우니까.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태도다.
나도 그랬고, 아마 대부분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그건 지혜라기보다, 판단을 미루는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따라가는 건 중용이 아니라 그냥 눈치다.
아무 생각 없이 가운데만 지키는 건 회피고,
이익 생길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건 기회주의에 가깝다.
중용은 그런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다.
중용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이게 옳다’고 믿게 된 생각이 있을 때,
그걸 무례하지 않게,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고 세련되게 말할 줄 아는 것.
그러니까 판단 자체를 회피하는 것도, 생각을 감추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생각을 얼마나 잘 다듬고,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말할지를 고민하는 태도.
그게 내가 닿고 싶은 중용의 감각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참 어려운 문제다
머릿속에서 정리된 생각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감정이 섞인다.
화가 묻어나고 억울함이 스며들고, 조심하려다 말이 흐려지기도 한다.
매번 정리해 둔 신념이 말을 통해 나올 때, 그 말은 흐트러지고, 말투는 상처가 된다.
그래서 중용은 생각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말할 타이밍, 표현의 방식, 감정의 온도까지—모두를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건 아주 섬세한 기술이자, 태도이고, 결국은 품격의 문제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정리해 본다.
판단은 하되, 그걸 말할 땐 예의와 품격을 지키는 것.
단지 말 잘하는 게 아니라,
그 말에 담긴 고민의 깊이와 상대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는 것.
그런 태도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중용이다.
오늘 그가 말했던 ‘중간만 가자’는 말.
그 사람에게는 그게 중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조금 다른 해석이 더 와닿는다.
이 깨달음을 굳이 그에게 말하진 않을 생각이다.
그건 그냥, 내 안에 쌓이는
조용한 기준 하나로 남겨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