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켜서 쓴 글도 아님
얼마 전, 지인과 저녁을 먹다가 조기 유학 이야기가 나왔다.
와이프와 아들 둘을 필리핀으로 보냈다고 했다.
나는 습관처럼 물었다.
그가 웃더니 말했다.
웃었다.
진짜 웃기긴 했다.
그런데 웃고 나니 묘한 기분이 남았다.
그 말, 나도 많이 들었고, 심지어 가끔은 스스로 그렇게 농담했지만
어쩐지 그날따라 껄끄럽게 느껴졌다.
사실 인천은, 처음엔 나도 정 붙이기 쉽지 않은 도시였다.
서울도 아니고, 지방도 아닌
딱히 중심도 없는 도시.
지하철 1호선의 시작이자 끝,
인천 출신보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 더 많은 도시.
정체성도, 질감도 묘하게 느슨했다.
그리고 뉴스.
강력범죄, 조직폭력, 자극적인 키워드들.
‘인천’이라는 단어가 자주 그 앞에 붙었다.
어린 형제가 부모에게 방치된 채 쓸쓸하게 떠났고,
고등학생이 또래를 잔혹하게 살해해 유기한 사건도 있었다.
사건은 잊혔지만, 그 도시 이름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았다.
누구 하나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아도
도시에 덧씌워진 이미지는 점점 뿌리 깊어졌고
그러다 ‘마계인천’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생각보다 오래, 지금도 남아 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처음 이곳에 왔다.
그때는 모든 게 낯설었다.
도시의 구조도, 거리의 분위기도, 사람들의 말투도 익숙하지 않았다.
잠깐 머물다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잠깐이 쌓이고 쌓여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낳고, 이사를 몇 번 하고 나니
어느새 여기가 내 일상의 대부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득, 어느새 이 도시는 나의 고향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인천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긴 어렵다.
누가 "인천 어때요?"라고 묻는다면
“살 만해요.”
그 이상을 말하기가 어딘가 조심스럽다.
괜히 내가 뭔가를 포장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인천은 여전히 단면이 많다.
송도는 빛나고, 몇 정거장만 가면 오래된 어둠이 있다.
비행기는 뜨지만, 사람은 떠나지 못하고
도시는 커지는데, 마음은 아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
인프라는 빠르게 들어서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은 늘 한발 늦게 따라온다.
그래서 때로는 번화함과 낙후가, 개발과 방치가
한 골목 안에서 공존한다.
인천은 늘 정리되지 않은 채, 살아 있는 도시다.
그런데 인천은 참 묘한 도시다.
정들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떠날 결심은 엄두도 못 낸다.
멀찍이서 보면 복잡하고, 가까이서 보면 이상하게 정이 간다.
야구로 예를 들면 이렇다.
어릴 적부터 나는 특정 팀의 야구팬이었다.
(한 번 마음 준 팀은 바꾸지 않는 게 인간의 습성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천에 와서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야구장이었다.
잠깐 따라간 인천 홈경기에서
관중석이 들썩이는 소리를 들었다.
"이기자, 이기자!"
그 함성이 낯설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응원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고,
지는 날엔 진심으로 분했고,
이기는 날엔 괜히 다음 날 아침이 가벼웠다.
두 팀이 맞붙는 날에도 나는 인천팀을 더 크게 응원했다.
그러면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게 인천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바란다.
이 도시가 ‘마계’라는 말에서 진짜로 벗어나기를.
무섭다는 농담이 아니라, 살아보고 싶다는 말이 들려오기를.
자랑이 아니라,
이 도시를 살아낸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