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 현재

by 천재손금

오늘 하루,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누가 보면 ‘뭐 그런 걸 기뻐하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 그런 게 기분을 슬쩍 끌어올릴 때가 있다.

아침 6시 반에 맞춰둔 알람보다
20분 일찍 눈이 떠졌다.
“어? 아직 20분이나 더 잘 수 있네.”
이건 누워서 승리 선언하는 느낌이다.
다시 눈 감는 그 순간이, 괜히 좋다.

현관문을 나섰는데
엘리베이터가 14층에서 막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 집은 11층.
보통은 지하에 있어서 최상층 찍고 내려오려면 꽤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부르기도 전에, 딱 내려오고 있었다.
이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 좋은 우연이다.

운전해서 출근하는 길,
신호가 미친 듯이 잘 맞았다.
노란불? 타이밍상 그냥 통과.
심지어 차도 안 막히고,
라디오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까지 나왔다.
운전하면서 혼자 고개 끄덕끄덕했다.
"좋아, 오늘 리듬 괜찮아."

이쯤 되니 혼잣말이 나왔다.
“오늘, 나한테 좀 친절한데?”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켰는데
이상하리만치 빨리 켜졌다.
평소엔 꼭 삐지고 느릿느릿하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순하다니.
이럴 땐 괜히 나도 부드럽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다.

결재를 올렸는데
단. 번. 에. 통과.
이건 진짜 박수받을 일이다.
뭐든 한 번에 되는 날은
이유 없이 자신감이 생긴다.
‘오늘은 뭐든 다 될 것 같은 느낌’ 같은 거.

점심은 구내식당이었는데
돈가스와 어묵탕.
이 조합은 언제 먹어도 배신이 없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이 둘이 같이 나오면 나는 무조건 천천히, 진지하게 먹는다.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

티타임 시간엔 팀원이
“넷플릭스에 재밌는 거 떴던데요?”
하고 제목 하나 알려줬다.
바로 메모장에 저장.
‘퇴근 후 이거 봐야지’
그 생각만으로도 약간 들떴다.
약속도 없는데, 뭔가 할 게 있다는 기분.

그리고 지금, 13시.
이 글을 쓰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이 하루가
어쩐지 괜찮았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은 중간쯤에 와 있는 거다.

누가 날 기쁘게 해주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다 우연이고,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
근데 그런 게 모이면 기분이 이상하게 괜찮아진다.
13시 현재까진, 충분히 괜찮았다.
남은 시간도, 이 분위기 그대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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