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 배웠다.
어제는 승진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내가 소속된 소방서 전체에는 심사 대상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우리 사무실엔 해당자가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이곳은 평소처럼 웃음도 있었고, 분위기 역시 무겁지 않았다.
하지만 복도를 나서면 달랐다.
인접한 사무실들에는 각기 대상자가 있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눈을 마주치면 짧게 웃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조차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였다.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고,
낯익은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목소리를 낮췄다.
그 조용한 기류는 복도 전체에 퍼져 있었다.
소방은 계급이 분명한 조직이다.
계급은 역할을 나누고, 기회의 범위를 결정짓는다.
그래서 그 계급을 한 칸 옮기는 일에는
늘 조용하고 예민한 감정이 따라붙는다.
약 2주 전, 승진심사 대상자 명단이 공지됐다.
그날 이후, 몇몇 사무실의 분위기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같은 팀이면서도 묘하게 말수가 줄었고,
자주 웃던 얼굴들이 조금 더 단정해졌다.
평소에 함께 밥을 먹고, 농담을 주고받던 사이인데도
같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순간부터
말끝은 조심스러워지고,
서로의 눈을 피하게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축하도 응원도 쉽지 않았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도
괜히 오해 살까 봐, 말 대신 웃음으로 넘어가게 되고
응원받는 사람도 마음 편히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다.
누가 누구를 밀어주는지,
심사위원으로 어느 소방서의 상위 계급자가 될지,
자기 소속이 심사에 관여할지조차
심사가 실제로 시작된 이후에야 드러난다.
그 불확실함은 긴장감을 더 높이고,
복도를 오가는 공기에까지 조심스러운 침묵을 깔아놓는다.
오후가 되자 본격적인 심사가 시작됐다.
서류는 위원들 손에 넘어가고,
이름 하나하나가 조용히 오르내린다.
그 자리에 함께할 순 없어도,
마음은 전부 그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다.
누군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앉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오늘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결과는 어김없이 나왔다.
누군가는 승진했고,
또 누군가는 되지 않았다.
승진한 사람은 조심스럽게 표정을 관리하고,
되지 못한 사람은 더 담담한 척했다.
되지 않은 사람의 하루는,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분노가 스친다.
무엇이 부족했던 건지 알 수 없어 더 억울하고,
멈춰 서야 한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웃으며 넘기지만,
속으로는 조용한 배신감이 피어오른다.
함께 웃던 사람들조차 멀게 느껴지고,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자존감은 말없이 금이 간다.
열심히 쌓아온 것들이 단 한 줄의 결과로 부정당한 듯한 감각,
그 슬픔은 무력감과 함께 오래 남는다.
다음날부터 출근은 해도 일에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괜찮은 척하는 데 하루치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그 감정은 며칠이 아니라,
몇 달씩이나 조용히 마음 안에 남아 흔든다.
하지만 오늘은
누구도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평소처럼 행동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평소라는 것도,
이날만큼은 누구에게나 낯설었다.
이처럼 승진은 단지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그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겪는 감정의 진폭이다.
그래서 "축하해"라는 말 한마디도,
어딘가 조심스럽고 무거워진다.
나는 이 글을,
결과보다 그 과정을 함께 견딘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었다.
말수를 줄이고, 표정을 감추고,
불편한 침묵을 받아내며 하루를 버틴 사람들.
누구보다 간절했지만,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 몫을 해낸 사람들.
기대와 체념 사이에서
자신을 너무 들키지 않으려 애썼던 그 하루를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다.
승진을 했든, 하지 못했든
그 조심스러운 하루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속에 켜켜이 쌓인 마음의 무게도,
그 말없는 표정 속의 진심도,
이 감정의 진폭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에게.
사실 나는 이 말을 너에게 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