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난 가족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아.”
듣기에 그럴싸하고, 때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말로 목숨을 걸 준비가 된 사람들 치고는
생각보다 자기 몸을 너무 함부로 다룬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신다.
새벽 두 시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서 스트레칭 한 번 하지 않는다.
목이 굳어가는데도, 어깨가 뻐근한데도, 병원엔 안 간다.
아프면 좀 쉬라는 말은 듣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른다.
담배를 피우면서 기침이 나면 “이제 끊어야지”라며 또 피운다.
물보다는 커피, 커피보다는 탄산, 탄산보다는 술이다.
운동화는 현관에 있지만, 발에 신겨진 적은 별로 없다.
정기 건강검진은 미룬 지 오래고, 가도 결과는 보지 않는다.
배가 나와도 “괜찮아, 나이 들면 다 그래”라며 넘긴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아도 “요즘 바빠서”라는 말로 덮는다.
일찍 자야지 다짐하면서 또 넷플릭스를 켠다.
쉴 때 쉬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쉬는 걸 죄책감처럼 여긴다.
마음이 힘든 날에도 그저 견디는 걸 버릇처럼 한다.
화를 삼키고, 눈물을 참으며, 어른이니까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그러면서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쯤은 줄 수 있다고.
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무너진다는데,
정작 컨디션 하나 챙기지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줄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 마음은 진심이겠지.
하지만 그 몸으로, 그 정신으로, 정말 줄 수 있을까?
이런 얘기를 하게 된 건,
오늘 아침 눈알이 터졌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의 흰자에 출혈이 생겼다.
하얀 바탕에 번져 있는 선홍색 피, 거울로 보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다행히 통증은 없었지만, 그게 더 무섭기도 했다.
이 정도면 피곤하단 뜻일 텐데,
피곤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단 얘기니까.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나는 누굴 위해 산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을 위해 뭘 하고 있었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아빠, 좋은 동료, 좋은 연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웃고, 참고, 또 넘겼다.
내 속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나를 내어주며 살아왔으면서도
입버릇처럼 말했다.
“난 널 위해서라면, 목숨도 줄 수 있어.”
지금 와 생각하니 좀 우습다.
정작 내 목숨을 제대로 다뤄본 적은 없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줄 수 있다면,
그전에 잠부터 좀 자야 하지 않을까.
하루에 30분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피곤할 때는 쉬고, 아플 때는 병원부터 가고,
담배가 해로운 걸 알면서도 피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적어도 줄여보려는 마음만큼은 내 쪽에서 먼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술은 기분이 아니라 습관일 때가 많고,
그 습관이 몸을 갉아먹는 걸 알아차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선 안 된다.
아침 햇빛을 한 번 더 쐬고,
오늘 하루를 조금 더 건강하게 시작해 보는 것.
거창한 결심보다
사소한 회복이 진짜 사랑의 시작일 수도 있다.
사랑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내 몸부터 챙기는 게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눈알 하나가 터지고 나서야
이제야 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