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 공포감이 진짜 약해졌어요."
어제 커피챗 시간, 누군가의 툭 던진 말 한마디에 이야기꽃이 피기 시작했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전설의 고향으로 이어졌다.
"그거 진짜 무서웠죠. 특히 방울 소리 들리면 끝장이었어요."
나와 비슷한 또래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 시절 여름밤, 귀신은 항상 흰 소복과 방울을 달고 나타났고, 우리의 잠은 종종 도둑맞곤 했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에이, 그게 뭐가 무서워요?"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냥 분장쇼 아니에요?"
그렇게 시작된 공포 썰 릴레이.
MZ세대 직원들은 부산행, 킹덤, 곤지암 같은 영화나 드라마 속 좀비물, 폐가 체험을 이야기했다.
반면 우리 쪽은 분신사바, 홍콩 할매 귀신, 그리고 흉가 같은 다소 아날로그 한 괴담을 꺼냈다.
대부분 “진짜예요. 우리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에요.”라는 말로 시작했지만, 진짜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게 괴담이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걸 믿는 분위기, 긴장된 공기, 그리고 이야기 끝의 침묵.
그게 진짜 무서움을 만든다.
한 팀원이 나를 향해 물었다.
“팀장님은 무서운 이야기 없으세요?”
무얼 얘기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머릿속에 하나 떠올랐다.
다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무서운 건 말이야, 매일 손에 쥐는 그 동전과 지폐 속에 숨어 있지."
나는 200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그 괴담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거의 잊혔지만, 한때는 꽤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믿었던 이야기였다.
여기서부터는 그 당시 유행했던 김민지 괴담의 내용이다.
1980년대 초, 한국에서 화폐 디자인을 새로 하던 시기.
조폐공사 사장(혹은 한국은행 총재)의 딸, 김민지가 토막 살인을 당했다.
충격에 빠진 아버지는 딸의 이름과 형상을 새로운 화폐 도안 곳곳에 몰래 새겨 넣었다고 한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무당의 지시에 따라 그렇게 했다는 버전도 있다.
10원짜리 동전
다보탑 아래 구조물이 ‘김’이라는 글자를 눕힌 듯한 형태.
중앙의 작은 동물상은 민지가 생전에 갖고 놀던 인형이라는 주장.
50원짜리 동전
왼쪽 첫 벼이삭의 낱알 수가 9개 → 김민지의 나이.
낱알 전체를 합치면 범인의 나이라는 이야기.
꺾인 이삭 잎은 ‘낫’을, 벼 이삭 자체는 토막 난 손가락을 의미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100원짜리 동전
이순신 장군의 수염 부분을 상하로 뒤집어 보면, 고통받는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는 괴담.
혹은 수염이 긴 머리를 한 여고생의 뒷모습처럼 보인다는 주장도 있다.
500원짜리 동전
학의 다리가 살해 전 밧줄로 묶인 민지의 팔이라는 해석.
구 천 원권 지폐
앞면의 투호(전통 놀이의 일종으로, 화살을 항아리에 던져 넣는 놀이) 끝부분에서 ‘MIN’이라는 글자가 보인다고 한다.
이는 민지의 이름 약자라는 괴담의 핵심 근거다.
구 오천 원권 지폐
율곡 이이의 눈 안에는 ‘志’ 자가 숨어 있고,
뒷면 오죽헌 앞의 비석에는 없던 ‘知’ 자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
구 만 원권 지폐
세종대왕의 오른팔 문양은 민지의 잘린 두 다리를 상징한다는 주장.
- 주 의 -
이 모든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괴담일 뿐,
괴담은 언제나 사실과는 어긋나게 마련입니다.
어제 커피챗은 평소보다 오래 이어졌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지폐를 들여다봤다.
누군가는 “에이, 말도 안 돼요.” 하고 농담처럼 웃었지만, 눈빛은 반쯤 진지해 보였다.
다들 대체로 안 믿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확신이 들었다.
어젯밤, 누군가 하나쯤은
괜히 지갑 속 동전을 꺼내 들여다봤을 거라고.
그리고 불 끄고 누웠을 때,
방 안이 조금 더 낯설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무서움의 기준은 세대마다 다르다.
오래된 괴담 하나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밤잠을 설치게 하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