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국훈련을 마치며
책임을 맡으면, 불안은 상상 속에서 더 커진다.
회의 발표든, 아이 생일 준비든, 중요한 하루를 앞두고는
누구나 마음속에서 실패의 그림자를 키운다.
잘 될 일이었는데도, 나 역시 또 무너질 뻔했다.
책임을 맡는다는 건, 늘 두려운 일이다.
아무리 준비해도, 마지막 순간까지 ‘혹시’라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잘 될 거라는 믿음보다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먼저 하게 됐다.
그 상상은 머릿속에서 자라고 자라,
현실보다 훨씬 거대한 불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어느새,
그게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마음은 이미 먼저 무너져 있다.
불안은 대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온다.
막상 일이 시작되면 몸은 생각보다 잘 움직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
알고 있으면서도, 전날이 되면 마음은 또 흔들린다.
‘혹시 내가 놓친 게 있을까?’
‘내가 틀린 선택을 한 건 아닐까?’
‘내가 지켜야 할 것을 망치게 되면 어쩌지?’
그쯤 되면, 불안은 단순한 실수의 두려움을 넘어서
‘혹시 내가 능력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깊어진다.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지친다.
며칠 전,
4개월 동안 준비해 온 소방훈련의 마지막 리허설이 끝난 날이었다.
나는 그 훈련의 전체 흐름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
이번 훈련은 5개의 공공기관과 시민까지 함께 참여하는 규모 있는 훈련이었다.
훈련 전체 시나리오의 90% 이상이 소방에 해당되었고,
각 기관과의 역할을 조율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준비하는 동안 각 기관의 담당자들과
수십 차례 의견을 나누며 조율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각 기관은
자신의 역할을 더 돋보이게 하고 싶다는 기류가 강해졌다.
서로 협력보다는
‘우리 기관은 여기서 뭘 하느냐’가 더 중요해 보였다.
그럴수록 전체 흐름을 맞추는 일은
더 어렵고,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실무 이상의 에너지가 쌓이면서,
내 불안은 단순히 ‘실수할까 봐’에서
‘전체가 흔들릴까 봐’로 바뀌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실수들이 여기저기서 터졌고
불안은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내일 망치면 어쩌지.”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나는 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나보다 더 차분한 동료들의 표정,
익숙한 혼란 속에서 정확히 움직이는 팀.
그 모든 걸 보며,
나는 비로소 한 발 물러나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불안했던 만큼 감동도 컸다.
불안했던 만큼, 고마움도 진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불안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고.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그 자리를 버틸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결과보다 먼저 무너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그 무너짐을 막기 위해
끝까지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거다.
다 끝난 뒤에야 알게 된다.
그 많은 걱정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었다는 걸.
그러니 다음에는—
불안해질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여야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면
그다음은
잘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도
마음을 조금쯤은 열어두기로.
그게,
무너지지 않고 책임을 버텨내는
조용하고 단단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