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4 | 260226 | 비난의 화살이 빗나가고 있는 이유
화재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헤드라인을 뽑아냅니다.
"스프링클러만 있었어도...", "미작동이 키운 인명 피해".
마치 스프링클러 하나만 설치되어 있으면 모든 화재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할 수 있다는 식의
환상을 심어줍니다.
하지만 현장을 지키는 소방관의 입장에서 이러한 보도는 본질을 흐리는 무책임한 비난에 가깝습니다.
설비의 유무라는 결과론적 잣대 뒤에 숨겨진 차가운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소급 적용'이라는 냉혹한 테두리
우리나라 소방법령은 건축물의 규모, 용도, 층수에 따라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법이 개정되어 설치 대상이 확대되더라도, 이미 완공된 기존 건물에 이를 강제로 설치하게 하는
'소급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헌법상의 신뢰보호 원칙과 재산권 침해 논란 때문에,
노후 건축물은 건립 당시의 법 기준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언론이 지적하는 "왜 이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지어질 당시에는 법적 의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법적 근거 없이 사유 재산에 수억 원의 공사비를 강제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법적 한계입니다.
노후 건물에 '심폐소생술'이 불가능한 이유
설령 건축주가 비용을 감당하겠다고 나서도 기술적 재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프링클러는 단순한 헤드 몇 개가 아닙니다.
거대한 수조, 가압 송수 장치(펌프), 그리고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복잡한 배관망이 필수적입니다.
층고의 문제 : 스프링클러 배관을 설치하려면 천장 안에 최소 30~50cm 이상의 여유 공간이 필요합니다. 20~30년 전 지어진 건물들은 층고 자체가 낮아 배관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하중의 문제 : 옥상이나 지하에 수십 톤의 소화용수를 담을 수조를 설치해야 하는데, 노후 건물의 구조가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결국 기성복을 다 만든 뒤에 안감을 통째로 갈아 끼우라는 식의 요구는
건축 구조상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 고문'일뿐입니다.
설비 만능주의를 넘어선 '실질적 안전'
우리는 '스프링클러 부재'라는 결과론적 비난에 매몰되어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건물일수록 우리가 집착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 방화문은 생명의 문
복도 철문을 벽돌로 고여두지 마세요. 그 문만 닫혀 있어도 연기를 막고 탈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방화문은 소방관이 오기 전까지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성벽입니다.
+ 비워진 복도가 최고의 설비
복도에 쌓인 자전거와 택배 상자를 치워주세요. 위급한 순간, 이 짐들은 누군가의 생명줄을
끊는 장애물이 됩니다. 길을 비우는 배려는 돈 한 푼 안 드는 가장 강력한 소방 공사입니다.
+ 안전은 '태도'입니다
낡은 콘센트 먼지를 털고 비상구 위치를 확인하는 작은 습관이 필요합니다.
안전은 전문가가 주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가족을 위해 갖춰야 할 일상의 마음가짐입니다.
+ 몸이 기억하는 연습
설비가 멈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세요. 어둠 속에서 당신을 구하는 것은 화려한 기계가 아닙니다.
평소 비상구 위치를 눈여겨봤던 당신의 '반복된 경험'입니다.
비난의 방향을 '내실'로 돌려야 한다
화재 사고의 책임을 오로지 '설비의 유무'로만 돌리는 것은 편리한 도피입니다.
이는 대중의 분노를 특정 지점으로 유도할 뿐,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실질적으로 강화하지 못합니다.
이제 사회적 비난의 화살은 화려한 기계적 설비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 내에서 안전 관리가 얼마나 내실 있게 운영되었는가'를 향해야 합니다.
'만능 치트키'는 스프링클러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안전 의식입니다.
소방 뉘우스는
대한민국 소방 전체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그저 현직 소방관 개인이,
누구의 지시도 없이
좋아서,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어서
기록하는 글입니다.
I♡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