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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재손금 Oct 21. 2024

검찰청의 소방 점검 요청

죄짓고는 못 살아


친구야, 들어봐.


소방시설 공사 완공검사 담당자로 일할 때의 일이야.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소중한 추억이야.


그날도 소방시설 공사 완공검사 신청 서류를 검토하느라 도면에 파묻혀 있었어. 그런데 사무실 전화가 울리는데, 옆 직원이 전화를 받더라고. 사실 나도 받을 수 있었는데, 괜히 바쁜 척하면서 안 받았지. 고참 티를 내고 싶었던 거 같아. 그런데 후배가 전화를 받으면서 굉장히 깍듯하게 "네네, 알겠습니다. 전달하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시오"라고 하길래, '어? 누구지? 무슨 일이야?' 싶었어.


그러더니 후배가 나한테 와서 "선배님, 검찰청 검사님이신데요. ○○○ 건물 완공검사 관련해서 담당자랑 통화하고 싶다고 전화번호를 남기셨습니다."라고 하더라고. 순간 "그럼 바로 바꿔줬어야지!!" 하고 버럭 소리 질렀지.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검사님이 전화했다니까 당황스럽더라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 후배는 내가 전화를 안 받은 게 얄미워서 일부러 그랬던 것 같아. 분명해!


왜 전화했을까 생각하다 보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쫄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혹시 몰라서, 남겨진 전화번호로 전화하기 전에 ○○○ 건물에 대한 건축 개요와 현황을 꼼꼼히 확인했어.

검사님이 질문하면 똑부러지게 대답하고 싶었거든.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안전!’,,,  뭐라고 첫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


아무튼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통화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어. 검사님이 ○○○ 건물 완공검사에 대해 물어보고 싶으시다고, 언제 시간이 가능하냐고 물으시더라고. 그래서 나도 여유로운 척하면서, 일정을 확인해서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지. 딱히 권위적이거나 친절하지는 않았어. 그냥 뭐, 평범한?


이후에 팀장님께 이 내용을 보고했더니, 팀장님이 갑자기 "검사가 뭐라고 오라 가라야?! 어?!"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 거야. 근데 화가 나신 건 아니고, 나랑 비슷하게 당황하신 것 같더라. 잠시 후에는 "○○○ 건물 완공검사 내준 거 문제없었냐?"라고 물어보시더니, 오늘은 과장님이 휴가니까 내일 아침에 출근하시면 보고하고 지시를 따르자고 하셨어.


여기서 소방 공무원 계급을 잠깐 설명해 줄게.
소방사 - 소방교(후배) - 소방장(나) - 소방위 - 소방경(팀장) - 소방령(과장) - 소방정(소방서장).....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과장님께 보고를 드렸어. 과장님은 공직 생활을 거의 30년 가까이하신 분이고, 원체 신사로 유명하신 분이라 별일 아니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지...


그런데 본인이 당장 검찰청으로 가서 검사를 만나고 오겠다고 하시는 거야. 이유 없이 전화했을 리 없다고 직접 가시겠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누가 가겠냐고 물어보시는데, 큰소리치시던 팀장님은 가만히 계시길래 내가 간다고 했지 뭐.


차를 타고 검찰청으로 가는데 과장님께서 "반장님(나), 검사실에 가면 '차는 뭐로 드릴까요?' 하면 아군이고, '거! 저쪽으로 앉으세요' 하면 적군입니다."라고 하시는 거야. "네??"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지. 검찰청에 도착해서 검사님 실로 가게 됐어.


검사님 방은 8층에 있었는데, 검찰청 건물 층수에 출입하려면 1층에서 신분증을 바꾸고 임시 통행카드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어.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해서 더 긴장됐었지. 검사님 사무실은 TV에서 보던 이미지와는 달랐어. 책상 위에 온갖 서류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나중에 내가 특별사법경찰 업무를 했을 때야, 저 서류들이 모두 범죄 수사 관련 서류라는 걸 알게 됐지.


아무튼, 과장님 말처럼 피아 구분을 하는 말은 안 하셨지만, 대충 "아휴 고생이 많으십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차는 무엇으로 드릴까요?"라는 인사를 받았던 것 같아. 잠깐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다가, 검사님이 서류 더미를 가지고 오는데, 그 서류 더미는 A4 용지를 대략 30cm 높이만큼 쌓아 철끈으로 묶어놓았더라고. 그러면서 ○○○ 건물 건물주가 건물을 지으며 은행과 개인에게 중복 대출을 받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을 위반한 피의자라고 하시는 거야.


그리고 소방공사 필증 발급도 약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하시더라. 이때 심장이 덜컥했어... 

그런데 자신이 수사를 해보니 소방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더라고. 그쯤 되니까 나도 업무 담당자로서 골이 나서 서류를 볼 수 있냐고 물었어. (그때 내 목소리가 조금 격앙됐던 것 같아.) 검사님이 잠깐 망설이시다가 서류 일부를 잠깐 보여주는데, 해당 페이지에는...


검사: "○○○ 건물의 소방감리 맞습니까?"
참고인(소방감리): "네, 맞습니다."
검사: "소방공사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관할 소방서에서도 알고 있었나요?"
참고인(소방감리): "모릅니다."
검사: "이유가 뭡니까?"
참고인(소방감리): "건축주가 저희한테 공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감리결과 보고를 하라고 했고, 그 후 계약이 해지됐습니다. 건축주는 이런 일만 전문으로 하는 감리를 다시 선정해 서류를 꾸몄는데, 그 서류가 워낙 정교해서 소방서는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이런 사기꾼들 같으니라고!!!" (진짜 이렇게 말했어.) 너무 화가 나더라고.


특경법 위반 건축주 입장에서는 건물이 빨리 사용승인이 나야 은행에 담보를 설정해 대출을 실행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하니까 허위 감리 서류를 소방서에 제출하라고 재촉했고, 원래 소방감리회사에서 이를 거부하자 계약을 해지한 거야. 그 후 이런 일만 전국적으로 하는 엉터리 소방감리업체를 선정해 거짓 서류를 꾸며 제출했던 거지. 그래서 검사님은 소방시설 공사를 허위로 제출하도록 지시한 범죄까지 포함해 건물주를 기소하려고 했었던 것 같아.


소방시설 공사업법 제14조(완공검사) ① 공사업자는 소방시설공사를 완공하면 소방본부장 또는 소방서장의 완공검사를 받아야 한다. 다만, 공사감리자가 지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공사감리 결과보고서로 완공검사를 갈음하되, 소방서장은 소방시설공사가 공사감리 결과보고서대로 완공되었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련 법에 나와있듯이 소방감리가 수행한 업무를(감리일지, 성능시험조사결과 등) 검토하고 이상이 없을 경우 소방시설공사 완공필증을 교부해. 이건 건축공사도 마찬가지야. 과거에 부정부패가 많아서 그걸 방지하기 위해 제도를 정비한 결과지. 물론 소방공사 필증 교부 후에도 관할 119 안전센터와 소방특별조사요원이 매년 정기적으로 현장을 확인해. 즉, 엉터리로 소방공사감리를 해서는 안 걸릴 수가 없는 거지. 아마도 그 건축주와 엉터리 소방감리업체는 필증부터 받고 후에 공사를 마무리하려고 했었던 것 같아.


검사님은 소방서에 해당 건물의 소방공사 필증 교부 후 사후 현장 확인을 검찰청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우리는 절차대로 사전 안내부터 시작해서 현장 확인을 진행했어. 해당 건물에 가서 보니 소방시설 공사가 정말 엉망이었더라. 서류만 그럴싸하게 꾸며놓고 실제 공사는 형편없었지.

친구야, 웃긴 게 뭔지 아니?

현장 확인을 마치고 위반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여러 지역의 공무원들이 전화를 하더라고. 상황을 물어보는 척하면서 선처가 가능한지 물어보는 거야. 나는 그럴 때마다 "○○검찰청 ○○과 ○○○ 부장검사님과 공조해서 진행 중입니다."라고 답했지. 그러자 다들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전화를 끊더라. 그리고 그 후 해당 건물의 소방시설공사업자, 소방감리에 정확하고 적절하게 행정처분을 했어.


친구야, 나는 이때 한 가지의 큰 깨달음을 얻었어. 그 건,

죄짓고는 살 수 없다는 거야


그날 검사님이 서류를 넘겨 보일 때 어렴풋이 본 게 추가로 더 있어.


검사 : ○○○ 건물의 소방공사 완공검사와 관련해서
        소방서에서 급행료 등 금전을 요구하지 않았나요?
        소방서에서 향응이나 접대를 요구하지 않았나요?
        소방서에서 사적인 부탁을 하지는 않았나요? ,,,,,,,

응! 나는 그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법을 어긴 적이 없어.


만약 수십 장에 달하는 검사의 질문 중 하나라도 내가 잘못한 게 있었다면, 그날 검사님 사무실에서 "거! 저쪽에 가서 앉으세요!"라는 말을 들었을지도 몰라.


추신. 잠깐 소방 건축 행정에 대해 설명해 줄게.

어떤 사람이 건물을 지으려면, 먼저 땅을 준비한 후 건물 설계도 등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구청에 건축 신청을 해야 해. 그러면 구청에서는 각 유관 기관에 건물을 지어도 되는지 여부에 대해 건축 동의를 요청하지. 그중 소방서는 건물의 소방설비가 적법하게 설치될 계획인지, 안전에 위협이 되는 요소는 없는지 면밀히 검토한 후, 보완 요청을 하거나, 반려하거나 동의를 회신해.
이 업무를 소방 협의라고 하는데, 소방서에서 세 번째로 똑똑한 직원이 담당해.

그다음 건축주는 시공사를 선정하고 토목 공사(바닥층)를 시작해. 어느 정도 공사가 진행되면 건물의 골격 공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소방시설 공사업체와 소방 감리업체는 소방서에 소방시설 공사 착공 신고를 해야 해. 이때 소방 협의 당시와 변경 사항이 없는지, 공사업자와 감리업자의 자격이 적절한지 검토한 후 신고를 수리하지. 이 업무를 소방 착공이라고 하는데, 소방서에서 두 번째로 똑똑한 직원이 담당해.

건물은 착공 신고 후 6개월(꼬마빌딩)에서 26개월(아파트 단지) 정도의 공사 기간이 걸려. 공사가 끝나면 건축주는 구청에 준공검사를 신청하고, 이때도 소방서의 동의를 받아야 해. 하지만 실무적으로는 건축주가 사전에 소방 공사 완공 필증을 받아 구청에 제출하는 것으로 대체되지. 소방 공사 완공 검사는 소방 공무원이 직접 하거나(소방 감리가 없는 작은 건물), 소방 감리가 수행한 업무를 검토한 후 또는 이 두 가지를 병행해서 진행해. 이 업무를 소방 완공이라고 하는데, 소방서에서 가장 똑똑한 직원이 담당해.

친구야, 설명이 길었지? 응, 맞아! 내가 바로 그 ‘가장 똑똑한 직원’이었어. 그때는 말이야,
심지어 나는 착공과 완공 업무를 동시에 맡아서 했었어. 완전 특별히 똑똑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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