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모님이 미용실을 하셔서 인사도 드릴 겸 머리도 할 겸 찾아뵀지. 이모님의 미용실은 좌석이 세 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였는데, 항상 동네 아주머니들이 사랑방처럼 모여 세상 만물에 대한 통찰(?)을 나누는 정다운 곳이었어.
보자기를 두르고 앉아 머리를 하고 있는데, 열두 쌍의 눈이 마치 내 땀구멍 숫자까지 세는 것 같아 정말 곤혹스럽더라고. 그러다 어떤 아주머니가 무리의 중앙에 앉아계신 어르신에게 "언니, 한 번 봐봐! 어때? 응? 응?"이라고 말했어. 그러자 우리 이모님도 "그래요, 보살님! 좀 봐주세요"라고 하시더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이 무속인이셨어.
이모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신데, 아마도 조카사위에 대한 축복의 말을 듣고 싶으셨던 것 같아.
아무튼 거울 속에서 그 어르신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기묘한 느낌이 들었어. 갑자기 그 어르신이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쟤는 얼굴이 고구마처럼 생겨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거나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사람답게 사는 애야"
라고하시더라고. 솔직히 기분이 확 상했어. 그 뒤로는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다가 머리도 안 감고 부랴부랴 나왔지.
30살 먹은 사람한테 ‘쟤’라든가 ‘애’라고 하는 것도 싫었고, 특히 '고구마처럼 생긴 얼굴'이라는 말이 제일 기분 나빴어.
그런데 내 운명이 그분에게는 보였나 봐. 약 1년쯤 후에 장교로 7년 동안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어. 그리고 그 이듬해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소방관이 되었지.
7년간 적과 싸워 이기(죽이)는 전투 기술을 연마하다가, 이제는 화재로부터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