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앞으로 움직이는데
발은 점점 더 깊게 진흙 속으로 빠져든다
앞으로 가고 싶은데
검은 그림자가 나를 자꾸 뒤로 끌어당긴다
버텨봤자 소용없다고,
그냥 포기하라고
귓가에 계속 속삭이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 걸까
내 자신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나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린 게
나인지, 당신인지
그래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더 움직이면 더 깊이 가라앉을 것 같아서
발목이 잠기고,
무릎이 잠기고,
어느덧 숨턱까지 밀고 들어오는
이 차가운 진흙이 무섭다
이대로 가라앉는 게 더 쉬운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치는
내가 점점 낯설어진다
나는 지금
얼마나 버텨온 걸까
나는 지금
얼마나 망가진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