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영화감독 홍상수-영화배우 김민희 사이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나에겐 둘 다 관심 밖이 된지 오래라 그동안 근황 기사가 떠도 '불륜을 했구나.', '동거를 하는구나.', '같이 또 영화를 찍었구나.'... 정도의 반응이 다였는데 임신 소식은 확실히 충격이었다.
그 김민희가 스물 두 살이나 많은 늙은이(그것도 유부남을, 그것도 혼인 상태인)와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쉽진 않았지만, 그 사이에 아기가 생겼다는 말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들렸다. 내심 두 사람의 사생활이 보통의 연애나 사랑과는 다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모양이다. 뭐랄까.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홍상수가 김민희를 자신의 뮤즈로 택했고, 자신을 뮤즈로 받아들여준(?) 그런 영화감독에게 정신적, 정서적으로 스며들어 사랑이나 욕망 같은 본능적인 감정보다는 동경, 존경 같은 한층 높은 방식으로 교감할 것 같았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저기 먼 동유럽 국가의 복잡한 이름을 가진 영화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나누며 '역시 우린 잘 통해'라고 속삭일 것 같은 두 사람이 파파라치 카메라에 노점에서 '도나스'를 먹는 장면이 찍힌 거며, 다소 칙칙한 몰골로 패딩점퍼를 입고 산부인과를 드나드는 모습이 '이상'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서 현실의 것(?)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괴리감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 커뮤니티 댓글창엔 임신 자체에 대한 놀라움을 표하는 반응과 두 사람의 뻔뻔한 행보에 조롱과 지탄을 퍼붓는 반응이 이어졌다. 개중엔 홍상수의 매력이 대체 뭐길래 이정재, 이수혁 같은 '잘생기'고 '젊은' 남자배우들과 공개연애를 즐겼던 김민희가 커리어의 정점에서 자신이 일궈온 모든 것과 홍상수를 맞바꾼 건지 의아함 가득한 질문을 던지는 댓글도 많았다.
간통죄도 폐지된지 오래된 마당에 엄밀히 따지면 누가 불륜을 저질렀고 애를 가졌든간에 '남 일'이다. 법적 제제를 받지 않는, 단지 사회통념에 반할뿐인 행동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난과 비판을 감수하든 무시하든 알아서 할 일이다. 대신 다시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위치에 설 순 없겠지. 실제로 김민희는 홍상수와의 불륜과 동거를 시작한 이래로 홍상수 작품에만 출연 중이고 해외 영화제를 제외하면 그 어떤 공식석상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말 그대로 정말 '홍상수(만)의 뮤즈'가 된 것이다.
근데 뮤즈가 임신을 했네요... 김민희가 잘못(?)을 참회하고 제 발로 영화판에 돌아올 거라 기대 중이었다는 일부 팬들은 이번 소식에 일말의 기대마저 완전히 접었다고 한다. 내가 두 사람의 임신 소식에 꽤 큰 충격을 받은 이유도 김민희라는 배우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을 넘어, 그 강을 넘을 때 탑승한 배조차 완전히 부서뜨린 것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정에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듯한 파격적인(negative) 행보다.
그럴 거면 발연기에서 연기파로 거듭나지나 말지. 드라마 <순수의 시대>를 보며 김민희의 발연기에 코웃음을 치던 시청자이자 <화차>와 <아가씨>를 보며 그때의 발연기 배우가 맞는지 감탄 섞인 찬사를 늘어놨던 관객으로서 단지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배우로서의 복귀를 응원하는 쪽은 아니지만, <쎄씨>나 <키키> 잡지 모델 때부터 그녀를 지켜봐온 동시대의 일원으로, 공든 탑이 세워지고 처참히 무너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