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정확하게, 단 불편하게

by 다현

국가번호 '82'의 나라. 뭐든지 빨리 빨리,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는 걸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에게 해외에서의 장기 체류 경험은 다양한 종류의 불편을 안긴다. 공공 기관의 업무 처리 속도부터 제품 고장 시 브랜드가 제공하는 AS 퀄리티까지. 해외 체류 경험이 없더라도 한국인이라면 '속도감' '빠릿빠릿함' '근면함' 등의 가치에 묘한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빠른 속도 이면에 자리한 여러 문제점을 상쇄할 만큼 불편 없는 생활. 끊김 없이 유지되는 평온한 나의 일상.


얼마 전 새삼스럽게 한 한국 기업의 AS에 감탄한 경험이 있었다. 여유로운 토요일 주말, 점심을 차리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여는 순간 무언가 '빠직'하는 불길한 소음이 들렸다. 문을 닫으려고 하자 평소였다면 자석처럼 착 달라붙었을 묵직한 냉동실 문이 종잇장처럼 펄럭이듯 열려있던 위치 그대로 돌아왔다. 냉동실 문이 닫히지 않을 수도 있구나... 당혹감을 느낀 나는 이내 냉동실에 비축해 둔 수많은 음식물들을 바라보며 아연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날은 토요일, 대부분의 사기업들이 쉬는 휴일이었다.


'기사님 출장도 안 될 텐데' '월요일에 AS 예약해도 당장은 힘들 텐데' 좌절감에 빠져있던 때 불현듯 냉장고의 브랜드가 '삼성'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AS는 삼성'이라는 표어 혹은 광고 카피 같은 문구를 떠올리며 포털사이트에 '삼성 AS'를 검색했다. 무슨 링크에 접속해 상담 제품, 상담 모델 등을 입력하고 나니 곧바로 상담사가 배정됐고 통화까지 일사천리로 마쳤다. 이틀 뒤인 월요일 예약된 기사님이 방문했고 단 몇 분만에 냉동실 문 수리를 마쳤다. 모든 과정이 이미 예정돼 있던 것처럼 신속정확하게 진행됐다. 접수는 빠르게. 수리는 깔끔하게.


다음날 삼성전자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제 경험한 방문 수리 서비스에 대한 '소중한 의견'을 들려달라는 서비스 만족도 설문조사였다. 추첨을 통해 백화점 상품권 3만원 권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던 난 의무적으로 응답했다. "수리 기사가 친절했나요?" "수리를 마친 뒤 기사의 확인 전화가 있었나요?" 등 제법 집요한(?) 질문에 대충 체크하고 3만원 권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답변 제출을 마쳤다.


몇분 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라고 하자 분명 남성인데 남성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높은 하이톤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어제 냉동실 문 수리해 드린 삼성전자 OOO입니다. 냉장고는 문제 없이 사용하고 계신가요?" 나는 얼떨결에 "아? 네.."라고 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행이네요! 그럼, 곧 고객님께 갈 만족도 설문에 좋은 답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또 "아? 네.."라고 얼떨결에 답했다.


전화를 끊고 왠지 모를 민망함과 미안함을 느꼈다. 이유는 첫째, 어제 본 기사님의 목소리는 이보다 두 옥타브는 낮은 심드렁한 목소리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기사님의 전화보다 설문조사 메시지가 먼저 도착해 이미 5점 만점이 아닌 '보통의' 점수를 줬기 때문이다. 수리 기사는 제품을 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고객의 '점수를 따기' 위해 목소리 톤을 한껏 높인 채 굳이 필요 없는 수리 확인 전화까지 해야 하는 구나. 냉장고를 빠르게 고쳐 산뜻했던 내 기분은 순식간에 불편해졌다.


AS, 삼성, 고객만족도 등의 키워드와 함께 검색해 보니 '삼성, 불패의 고객 만족도 1위' 'AS는 삼성, 깨지지 않는 공식' 따위의 기사 제목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AS는 삼성'이라는 말엔 내가 경험한 민망하고 미안하고 불편한 순간들이 잘 숨겨져 있다. 고객의 집에 방문해 고장난 제품 수리라는 자신의 업무를 묵묵히, 조용하게 완수하고 간 프로패셔널 수리기사가 허리를 잔뜩 조아린 듯한 목소리로 고객 설문조사에서의 높은 평점을 요청하는 순간들이.


서비스 제공자의 과도한 친절과 넘치는 배려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게 싫다. 방문 수리 기사는 방문해서 수리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카페 바리스타는 커피만 맛있게 내리면 되고. 요가 아카데미의 요가 강사는 동작만 잘 가르치면 된다. 쓸데없이 과잉 친절을 요구하는 분위기와 그 분위기에 휩쓸려 과도한 친절을 강요받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될 것이다. 너도 나도 '갑질'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로 드글거리는 인구 5천만 원의 동아시아 모 국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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