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거리를 확보해 주세요

by 다현

꽉 막힌 퇴근길 도로에서 안전 거리를 확보하는 건 쉽지 않다.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모두가 저마다의 휴식 공간으로 향하기 위해 앞만 보며 엉금엉금 기어가는 시간.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약간의 틈새라도 보이면 자꾸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쾅. 귀가 시간을 지연시키는 안전거리 미확보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


지극히 내향적인 기질의 소유자로서 ‘안전거리’ 확보는 비단 도로교통법에서만 통용되는 규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전거리를 일상생활에 그대로 적용해 본다면. 학교나 회사에서 혹은 일상에서 오고가는 다양한 장소에서 타인을 마주할 땐 암묵적으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지 않고, ‘굳이 이야기 할 필요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서는 먼저 상호 간의 합의가 요구되는데, 이 합의는 보통의 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동반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촉으로 ‘느껴야’ 한다.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 오? 나랑 가까워지고 싶구나. 그때가 되어서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좀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답하면서 관계 또한 조금씩 깊어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상호 합의’라는 중요 전제를 무시하곤 한다. 퇴근길 성격 급한 뒷차 운전자처럼 불쑥 거리를 좁히고 들어와 내 차 범퍼를 박아버리는 셈이다. 처음 만난 사이에 불쑥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거나, 서로의 이름과 부서만 겨우 아는 직장 동료가 “어렸을 때 엄마가 저를 방임해서요”라는 식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딥한 대화 소재를 꺼내 놓거나, 글쓰기 수업 옆자리에 앉은 얼굴만 낯이 익은 사람이 “어디 회사 다니세요?” 라고 물어볼 때, 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드라마 속 장면에서처럼 뒷목을 잡은 채 차에서 내리는 심정이 된다. 아, 이 사람들 정말 왜 이래…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에너지를 보충하는 이른바 ‘대문자 E’ 성향의 사람들은 뭐 그런 거 가지고 뒷목까지 잡냐고 황당해 할지 모르겠다. ‘당신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라며 나를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안쓰럽게 볼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내밀하고 사적인 질문을 통해서 관계의 깊이감이 깊어질 수 있고, 그래야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나를 조목조목 가르칠 것도 같고.


도로에 근무 중인 경찰관이 없어도 모두가 ‘지켜야 함을’ 인지하고 있는 도로교통법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관계교통법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앞차와의 거리를 무시한 채 내달렸다가 충돌 사고가 빚어지는 것처럼, 친해지고 싶다는 ‘선한’ 이유로 모두가 유지하는 암묵적 거리를 훅 좁혀버린다면 상대는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그와 한 걸음 가까워지기는커녕 열 걸음은 더 멀어지고, 심하면 그 사이에 단단한 장벽 하나가 세워질 수도 있다.


요즘엔 타인과의 충분한 거리감이 확보되지 않아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밖으로 자신을 더 크게 어필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걸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 사회라 더욱 그렇다. 이런 때일수록 관계교통법의 안전거리 확보가 절실하다. 언제 뒷목 잡을지 모르는 내향인들을 위해 관계교통법을 준수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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