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하지만 실용적인 4차원주의

by 다현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하다. 게다가 4차원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일종의 좌표일 뿐이고, '예전에 있었던 일'을 뜻하는 과거나, '지금 이 순간'의 현재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는' 미래는 하나로 펼쳐진 덩어리라고 한다. 사실 주절주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긴 하지만 무슨 뜻인지는 나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굉장히 문송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과학 원리를 소재로 한 영화 <컨택트>랄지 <테넷> 같은 작품도 마음으로 이해하는 쪽이라,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다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거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건 하등 쓸모 없는 짓이다. 어차피 과거와 미래는 현재와 같이 펼쳐지고 있으니까.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을 후회하거나 걱정하면 뭐 해? 문명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시간이라는 개념에 존재하지도 않는 과거와 미래를 상정해놓고 온갖 에너지를 쏟는 일이란 얼마나 자기소모적인지.



연초 다짐한 '1일 1글'은 고사하고 '1주 1글'도 요원한 상황에서 웬 잡소리를 쓰고 있는 나에게 자괴감이 든다. 왜 갑자기 4차원주의에 꽂혀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과학 원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서 단어나 표현이 미천해서 그렇지 4차원주의는 삶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되기도, 때로는 끊었던 담배를 사기 전에 가까스로 나를 제지하는 격려가 되기도 한다.


불현듯 과거의 어떤 기억이 섬광처럼 떠올라 얼굴을 화끈하게 만들 때. 예컨대 나를 차버린 구남친에게 비참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열 통 넘게 보낸 일 따위가 떠오를 때 4차원주의는 과거의(존재하지 않는) 수치에서 나를 꺼내주는 구원자가 된다. 나는 구질구질하게 '매달렸던' 게 아니라 '매달리고 있다'. 내가 상정한 과거 속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나도, 그 모습을 떠올리며 머리를 쥐어뜯는 나도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과거를 보며 수치를 느끼는 현재의 나란 있을 수 없다. 고로 나는 수치를 느낄 필요가 없다. (문제 해결!)


미래의 상황을 걱정하거나 우려하는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사를 가야 하는데 전세 만기일까지 3개월이 남은 시점에 임대인이 보증금을 내어줄 수 없다고 선언한다면, 그래서 전세보증보험 공사 담당자와 통화하며 준비 자료를 정리하고 3개월 후에 닥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있다면? (직접 겪은 실화입니다.) 4차원주의 관점이 필요한 때다. 이런 경우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미래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러저러하고 있을 나'는 시간이라는 허구의 개념이 만들어낸 존재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그저 현실의 나와 동시에 흘러가고 있을 뿐이니까. 고로 나는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문제 또다시 해결!)


글로 써놓고 보니 정말 괴상하고 지질하다. 이런 걸 다르게 말하면 자기합리화 또는 정신승리라고 부른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수치스러운 옛 기억으로 간헐적인 고통을 경험하고 있거나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미래의 일을 가지고 사서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4차원주의 관점을 권하고 싶다. 저명한 과학자 선생님들이 주창하신 이론을 바탕으로 현실의 시름을 빠르게나마 덜어낼 수 있다는 게 퍽 산뜻하고 약간은 재밌지 않나요?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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