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행이 정말 안타깝나요

by 다현

인간은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더 큰 흥미를 느낀다고 한다. 씁쓸하지만 남이 잘돼서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보다는 남이 망해서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는 이야기에 더 많이 공명하는 것이 스스로가 '이성적'이라고 굳게 믿는 인간들의 속마음일 것이다.


개인적인 상황에 빗대어 보면 과연 그런 것 같다. 회사에서도 서로 데면데면하는 동료들을 한층 가까워지게 하는 건 우리 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의지를 다지는 거룩한 소통 따위가 아니라, 매번 답을 정해놓고 우리의 의견을 묻는 척하는 '개꼰대' 팀장을 두고 신랄한 뒷담화를 나누는 거다. 공공의 적을 상정해두고 그동안 각자 느낀 감정을 은밀하게 공유하며 그 과정에서 "야, 너도? 나도!" 할 때의 짜릿한 쾌감 같은 거. 그런 게 진짜 있다.


온갖 종류의 기사들이 범람하는 포털 사이트에서도 결국 대중의 이목을 끄는 건 한 개인의 불행 서사가 강조된 제목의 기사들이다. 결혼식을 3개월 앞둔 예비 신부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거나, 어떤 연예인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해 대중의 뭇매를 맞고 있다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부부가 3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든 어떤 연예인이 무슨 작품을 통해 호평을 받고 있든 그 좋은 소식이 어떤 내용이든간에 별 관심이 없다. 누군가의 좋은 일에 무감한 걸 비난하는 게 아니다. 나와 상관 없는 타인의 개인사에 좋은 일이 있건 나쁜 일이 있건 별 관심이 가지 않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나랑 상관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쁜 일엔 과할 정도로 반응하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타인의 불행으로 향하는 지나친 관심에선 나는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안도감과 그러게 잘 좀 하지,같은 우월감이 비춰진다. 안타까움을 휘장 삼은 표정 아래 이런 교묘한 감정이 숨어 있다는 건 매우 위선적이다. 나 역시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려고 하지만 막상 비슷한 상황에 닥치면 쉽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진정한 친구란 나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친구보다 나의 불행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친구일 것이다. 친구의 성공은 얼마간 질투나 부러움 등을 불러올 순 있지만 그 생각이 가장 안 좋게 뻗어나간 끝엔 기껏해야 자괴감 정도가 자리하고 있다. 저 친구가 저렇게 잘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힘 쓴 시간동안 나는 뭐했나... 하는 자기 반성, 자기 혐오 같은 것들. 그러니까 친구의 성공은 나쁜 생각이 안으로 향하게 한다. 축하할 일에 질투심을 느끼는 게 속 좁게 느껴지지만 인간이라면 왠지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 이해도 된다.


그런데 친구의 불행을 마주할 땐 나쁜 생각이 밖으로 향한다. 특정 나이대의 사람이 밟아야 할 궤도를 보기 좋게 이탈한 친구를 보며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지'라고 느끼는 안도감, '그렇게 할 때부터 알아봤지' 등의 우월감. 친한 친구의 불행을 도구 삼아 스스로의 쓰라린 실패를 위로하는 일이란 어딘가 음습하고 비굴한 구석이 있다. 그 음습하고 비굴한 구석에 가닿은 적이 없냐고 묻는다면... 결코 아니라고 답할 순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누군가의 불행에서 위안을 얻은 때가 분명 있었고, 나 또한 누군가가 위안을 느끼기 위해 사용한 도구가 된 적이 있었겠지. '선의'는 있어도 진짜 '선'의 존재에 의문이 남는 이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애매한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