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인생

by 다현

잘하는 사람에겐 앞으로 더 나아갈 기회가 주어지고 못하는 사람에겐 중간에 포기할 수 있는 합당한 사유가 주어진다. 그렇다면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닌 그 어디 중간쯤에 위치한 애매한 사람에겐 어떤 게 주어질까. 못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더 나아가긴 '애매하다'. 반대로,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못하는 건 아니라서 포기하기도 '애매하다'. 그렇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나아갈까 포기할까 고민만 하다 어물쩍 나이만 먹는 것. 그것이 바로 애매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이 애매한 사람은 내가 속한 부류다.


떡잎부터 애매했다.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땐 선생님한테 '센스가 있어서 곡에 대한 습득 능력이 남다르다'라는 후한 평가를 들었지만, 대회에 나갈 수준은 아니었다. 다년간 다닌 영어 교습소를 그만 다니겠다고 선언했을 땐 원장이 엄마한테 '다현이는 영어를 잘한다. 앞으로도 계속 비중있게 가르치시라'는 조언을 건냈지만, 수능시험에서 영어만 1등급을 받았을 뿐 그 '잘한다'는 영어를 인생에서 활용해 본 기억은 전무하다.


중고등학교 땐 반에서 7~8등, 전교에서 50~60등.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이런 성적을 가지고 '입신양명'할 만큼의 대학교에 들어갈 순 없었다. 그래도 나름 '인서울'엔 골인했지만... 학교 네임밸류마저도 정말이지, 애매하다. 소위 말하는 '지잡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게 쳐주기엔 '애매하다'라는 표현이 딱인. 애매한 내가 입학하기에 제격인 그런 학교.


학교 졸업 후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매일 같이 '애매한' 나의 성취를 마주하고 있다. 인사고과 나쁘지 않고 팀장이나 대표들의 믿음을 살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대체자가 없는 유일무이한 퍼포먼스를 내는 건 아닌,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없으면 큰일 날 정도는 아닌 그런 직원. 맡은 바 주어진 일을 눈에 띄는 흠결 없이 해내지만 그렇다고 베스트는 아닌 애매한 사람.


세상은 90%의 애매한 사람들과 약 1%의 잘하는 사람, 9%의 못하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을테니 (이건 그냥 내 뇌피셜이다) 왜 나만 이렇게 애매할까 자책할 필요는 없다. 세상이 온통 잘하는 사람으로 가득하거나 못하는 사람으로 득실거린다면, 전자는 인간미가 크게 떨어져 지금보다 살기 팍팍할 테고 후자는 엉망진창 와장창 굴러가다 금세 망하겠지 않을까. 그러니까 조금 과장하자면 이 사회가 원활한 순환 체계를 가지고 별 차질 없이 돌아가는 건 나 같은 애매한 사람들이 애매한 일을 하며 중간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기 때문일 거다.

하루종일 애매한 취급을 받으며 애매한 일을 하다 집에 와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애매하지'라는 애매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멀리서 바라보니, 이건 애매우스의 띠다. 가끔은, 당장 일을 그만두어야 할 만큼 실력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좋으니 이 애매한 궤도를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단단하게 애매해서 궤도를 이탈할 수 없고 그래서 계속 애매할 수밖에 없는, 평생 애매의 저주에 갇힌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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